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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누가복음8장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사람만이 은혜받고 변화받고 회복되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왜 나에게는 구원의 믿음과 구원의 은혜가 오지 않는가 의문을 갖습니다. 그것은 아직 내 마음의 밭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체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백배의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좋은 마음의 상태가 아직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마음만 되면 반드시 우리는 은혜받고 믿음을 얻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백 배의 회복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좋은 땅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서만 열매를 많이 수확할 수 있는데 좋은 땅이 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비결을 잘 배워서 성품회복과 목양과 구원의 복을 100배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12) 회복은 말씀을 어떤 마음자세로 받아들일 것인가부터 시작됩니다. 데살로니까 성도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히 받았습니다. 좋은 땅이란 무엇보다 내죄를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이 비유에서 씨를 뿌리는 자는 주의 종,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땅은 바로 우리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신앙이 자라고 인격이 성숙해지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죄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성숙은 교회 각종 예배에 참석한다고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루 세시간한다고 해서 성숙이 오는 것이 더더욱 아닙니다. 성숙은 그 무엇보다도 교만 마귀에게 속지 않아야 임합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가셔서 이사야말씀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이제 오게 되었다고 증거하셨을 때 고향 사람들은 이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목수가 아니냐 하며 인간적으로 생각하여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잘났다는 교만과 헛된 자부심이 사람 속에 들어와 있으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건성으로 들으며 듣고자하는 겸손함이 없고 비판하고 판단하고자만 합니다. 불신하고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이때 교만 마귀가 들어와서 말씀 듣는 중에도 계속 반발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게 하고 거부하게 만들고 빈정거리게 함으로 말씀이 안들립니다.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말씀시간만 되면 졸립고 전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말씀을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딴생각이 들게 하고 잡생각나게 함으로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잡혀 밤새도록 고민하게 합니다. 이렇게 된 분들은 말씀을 듣고자는 마음은 전혀 없고 공격받는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거부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면서 말씀을 듣는데 전혀 듣지 못하고 교회당만 밟고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오늘 말씀 12절을 보면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지 못하게 하고 구원을 못받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4:12절에는 이런 경우에는 결국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마태복음13장에는 이런 경우에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저희에게는 허락되지 아니되었나니“ 하였습니다. 이사야 29:9-14에서는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까?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싫더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고 “내가 어리석어서, 내가 교만해서 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이 모양입니다. 내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집착과 미련이 많아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주인되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며 죄를 인정을 해야 합니다. 작은 죄일지라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복음18:13절 세리의 마음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리새인의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착한 죄인이다. 나는 심각한 죄인은 아니다. 이 정도의 죄는 누구나 지으니 괜챦다” 하며 자신의 죄에 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름 자기를 의롭다고 여깁니다. 죄에 대하여 가책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거듭하게 되면 우리는 영적으로 무감각하고 둔하게 됩니다. 바로 이 상태가 이 세상의 신이 혼미하게 하여 주님의 빛을 받지 못하게 된 상태입니다(고후4:4) 이 상태에서는 누구 말도 안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그후 교만 마귀, 누구 때문이라는 원망마귀도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시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다시 들리고 말씀이 달고 은혜롭게 됩니다.
둘째는 인내해야 합니다.(15) 우리가 은혜 받으려면 강해야 합니다.(15)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 성장은 편안할 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환란이나 시련이 있을 때 더 신앙 성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환란이나 시련앞에서 참으로 강하게 이겨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잘 인내해야 은혜 받습니다. 마음이 약하여 중간에 넘어지면 안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남편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꿋꿋하게 기도하여 남편을 구원하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자면 끈기가 있어야 하고 신앙의지가 강해야 합니다. 혹 남편이나 시댁이 교회를 반대한다할지라도 물러서면 안됩니다. 그럴수록 더 기도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국 남편구원 시키고 자녀들도 영적으로 잘 자라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님은 젊은 시절 아내가 교회나가는 것을 결사반대하였습니다. 종가집 맏며느리가 어디 조상도 모르는 교회에 나가느냐고 야단쳤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고집스럽게 교회를 나가므로 심한 시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회식이 끝나고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또 부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교회로 달려갔는데 마침 그 때 부흥회가 끝나고 통성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컴컴한 가운데도 기도하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알아보았습니다. 순간 화가 나서 부인의 머리채를 끄들고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는데 교회마당에 끌고나와 내동댕이를 치고 보니 이게 왠일입니까? 그게 자기부인이 아니라 자기 직장 상사인 시장부인 이였습니다. 그래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되었고 그때 그 시장부인 권사님은 약속 하나를 하면 용서해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교회 나오기로 그 자리에서 약속하고 그 때서부터 교회에 나와 나중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미움을 받으면서도 기도하였고 이런 환란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가정을 구원하고 남편을 장로로 세우고 자녀들을 신학교에 보내어서 우리한국교회를 부흥성장하게 하였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 감염된다고 교회출석을 반대하는 가족들과 가정평화라는 명분으로 교회나오지 않고 신앙생활하다가 오히려 넘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때 타협보고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신앙초기에는 가정에서 이런 가정불화가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강한 자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에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됩니다. 이럴수록 더 어려움을 이기고 이럴수록 더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련을 잘 이기고 인내해야지 은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시련은 우리의 신앙성장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지마 교회가서 코로나 걸려 우리 회사에 퍼뜨리면 우리 회사는 영업정지를 당해서 엄청난 손해를 입게 돼” 하며 우리를 비난하고 위협했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교회를 나왔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지라도 예배참석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강하게 인내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이런 반대와 비난에도 강하게 인내하며 이겨가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지가 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강하게 인내하는 사람들을 좋은 밭이라 하시며 백배로 축복해주십니다.
셋째는 세상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향락(이기심)을 극복해야 좋은 밭이 됩니다.(14)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4절 말씀에 보면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신앙이 막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염려가 참으로 많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 자식에 대한 염려, 장래에 대한 염려가 참 많습니다. 이생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이렇게 순종하다가는 나중에 집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것저것 생활에 대한 염려 때문에 밤잠을 잘 못잡니다. 이런 염려가 신앙보다 더 빨리 자라나 우리 신앙의 기운을 막습니다. 또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모으고자 욕심에 집착합니다. 십일조는 드리고자 하면 이상하게 아깝고 손해보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너무 어렵게 벌은 돈인데 하나님께 드리기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요, 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이 기운이 막혀 자라나지 못합니다. 또한 향락 즉 세상 잔재미에 마음이 빼앗깁니다. PC게임, 노래방, 음란물등이 가시로 자라나서 신앙의 기운을 막습니다. 주말에 펜션, 피서등 다니다보니 신앙이 자라날 수가 업습니다. 특히 향락은 이기심, 즉 나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시말해, 나의 외모, 나의 영광, 나의 자식사랑, 나의 세상사랑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이 어느 정도는 자라나다가 그 이상은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깝더라도 걱정되더라도, 나를 너무도 추구하고 싶을지라도 우리는 이를 부인하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넷째는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좋은 마음이란 굳뉴스바이블에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는 자에게 깨달아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야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도(8) 귀있는 자들은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언제 제대로 깨달아집니까? 그것은 순종할 때 깨달아집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다면 원수를 사랑해고자 애쓰다보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나는 정말 말씀을 지킬수 없는 연약한 죄인이구나가 깨달아집니다. 말씀은 이론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순종할 때 깨달아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있게 여겨야 합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고 여기며 어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죄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돌려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기도를 전혀 존중해 주시지 않으십니다.(잠언28:9) 그의 삶을 보호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이상하게 문제가 자꾸 커집니다. 자식이 삐뚤어지고 반항적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종들을 우습게 알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알기를 우습게 여깁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불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 이상 보호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는 악신이 들어왔고 각종 시기심, 분노,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 패하여 비참하게 죽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경외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모리아산으로 삼일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외아들을 주셔놓고 이제 와서 그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니 .. 이것은 좀 순종하기 곤란합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리아산에 도착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단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찌르고자 할 때 하늘에서 급히 소리가 났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22:17에서는 크게 축복해주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 하였음이니라” 이후로부터 아브라함을 삶의 고난이 없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듣는둥 마는둥 합니다. 예배시간에 좁니다. 순종하고 싶지 않으면 귀를 막아 버립니다. 책망하는 내용에는 반발합니다. 이런 성도는 교회를 와도 주님못만나고 마당만 밟고 갑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아멘 잘하고 마음에 잘 간직하고 순종하는 분들은 좋은 밭이 되어서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에 깊이 박히게 되고 뿌리가 나고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아브라함처럼 내게 주일을 바치라 하면 주일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내게 십의 일을 바치라하면 십의 일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내게 너의 젊음을 바치라 하면 아멘하고 바치시기 바랍니다. 15절 말씀처럼 어렵더라도 인내하며 드리시고, “아이들 학원비 못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께 드립니다” 하면 여호와이레 하나님께서 놀랍게 예비해 주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한 하나님의 명령이든지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심으로 백배의 결실을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은혜받고 구원받고 축복받고 싶으십니까?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강하게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잘듣고 삶가운데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고자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백배의 축복을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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