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태어났다.
필립보 사도가 이끌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타나엘과 같은 인물로 본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필립보가 인도한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신앙 고백을 한다.
나타나엘은 진리를 탐구하며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던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가 주님을 만나자 신앙을 고백하며 그분의 제자가 된다 (요한 1,45-51).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권고에 나타나엘은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만남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나타나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를 보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진실’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진실한 마음’을 보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보십니다.
나타나엘은 ‘평상시 마음’ 그대로 나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진실보다 소유를 선호합니다.
진실한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더 챙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헤아리시지만,
우리는 물질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고뇌와 번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립보와 나타나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삶 전체를 바꾼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고생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나타나엘은 훗날의 ‘바르톨로메오’ 사도입니다.
진실했기에 주님의 제자가 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하시면서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타나엘이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메시아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성경을 공부하고 토론을 하였습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 이끌려 새로운 삶으로 초대되기 전부터
이미 진리를 갈망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타나엘을 보시고,
그를 진실하고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이웃과 나눔을 하는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타나엘이 메시아를 기다리며
말씀을 공부하던 모습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과 쾌락이 있는 곳으로 몰려갈지라도
신앙인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하고 가치 있는 삶인지를 고민하는
만남의 장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거슬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며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 나눌 때 우리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똑같이 칭찬하실 것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거짓이 없는 신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