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강기영
어떤 무덤은
후손보다도 늦게 죽는다
매일 지나치면서도 확인이 필요한 길
무덤은 이정표가 되었다
묘비도 없이 하물며 핑계도 없을 것 같은 저 무덤만큼
확실한 이정표가 또 있을까
어둠 속에서 곤히 잠든 무덤들은
질문이 없는 궁금증처럼 보인다거나
어느 날 불쑥 솟아오른 묘지는
어디론가 날아가려는 모자 같다거나
미스터리 써클처럼,
분명한 일들이 불분명 속으로 사라진 증거들 같다
아주 오래전의 죽음이
우리들의 뒤를 바짝 쫓아오듯
제멋대로인 미래의 길이가 견인해가는 매일매일의 핑계들과
감긴 밧줄이 가득 들어있을 것 같은 무덤,
모든 표시에는 이유와 핑계가 있겠지만
죽음은 저 혼자 미궁 속으로 사라지기도 해서
저렇게 둥근 모양을 하는 것일 뿐
문패가 없는 둥근 집,
북향의 툇마루도 없는 집
정량처럼 궁금함을 채우고 살던 일생이
아무런 의문이 없는 곳까지 와서 뭉쳐져 있다
이유와 의문 중 어느 쪽으로든 길을 내주고
지나쳐 가는 소리를 묵묵히 듣는다
여러 갈래가 모였다 다시 여러 갈래가 되는 것을 본다
세상의 무덤들, 저의 핑계를 몽땅 데리고
땅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 북천(北天)으로 조금씩 날아간다
계간 『시와 사람』 가을호발표
강기영 시인
2024년 제8회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