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해가 저물었다.
그런데 오늘 내 하루의 인생 성적표는 오십 점도 안 되는 낙제점수이다.
공연히 우울해진다.
‘아! 인생 뭐 있어?
그냥 구경하며 사는 거지‘
하다가도 사는 것이 신이 나지가 않으니 또 본병이 도져서 우울 모드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무수히 반복연습 했음에도 생각이 안 난다.
문득 이백의 시가 떠오른다.
월하독작 3부의 일부분을 읽어보면
궁핍한 근심 천만 갈래이니
맛있는 술 3백 잔을 들 것이라.
근심은 많고 술이 비록 적지만
술을 기울이니 근심이 오지 않네.
술을 성인에 비유함을 아는 바이라
술이 거나해지자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네...
매실주 한 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청주가 성인이요 탁주가 현인이라 했는데, 내가 만든 이 매실주는 어디다 비길까.
옥상의 의자에 앉아서 희미한 열이레 달을 쳐다본다.
내 술친구 해 줄래?
술 한 잔 부어 달 보며 건배를 올리고 마시고는 오징어 다리를 씹는다.
말 없는 저 달아 이태백이 놀던 그 달이 맞는 거냐?
울 엄마 베틀 노래 부르던 그 달이 맞는 거냐?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달은 표정이 없다.
석 잔을 부었더니 도저히 안 넘어간다.
이래서야 원, 물에 빠진 달 건지러 간 이백의 흉내라도 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머리가 아프고 배도 살살 아프니 취하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취하면 근심이 없어진다는 이백의 말은 말짱 헛소리라. 수만 생각이 근심이 되어
취한 내 몸을 잡아먹자고 달려든다.
취해서 시가 나오는 게 아니라 돼먹지 않은 헛소리가 나온다.
아! 이놈의 인생 그냥 콱!
그래도 어쩔 거냐.
헛소리라도 질러보는 수밖에...
월하독작
달 아래 홀로앉아 술을 마신다
친구도 없이 마시는 술
술맛이 쓰다.
이백 친구 저 달은
내 술 친구 할 생각이 없고
옥상바닥에 깔린 어둠만이
내 친구로다.
석 잔 술에 도는커녕 머리만 아프니
이백과 나는 코드가 안 맞네.
이백은 취중 명시를 쓰고
나는 취중 헛소리만 하니
복주원에서 맺은 우리 언약은
없던 일로 하세나
첫댓글 참 멋진 삶입니다. 글을 요로콤 재미있게 쓰시니 이른아침에 어이 마음 남기지 않으리오.♥
재밌습니다. 술 한잔 할 수 있어야 인생이 풍요로울텐데 술과 친하지 못해 요즘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소주 2잔? 좋은 자리에서.
이은정선생님, <글>은 술 삼백잔보다 힘이 있습니다.
다음달 월례회 때, 술 한잔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진정 글꾼입니다. 복주원 언약을 독자인 제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샘 어찌 늦술을 배울라 캅니꺼?
고마 하시던데로 사입시더, 술- 캬
이은정 시인께서는 이백이캉 촌수가 어찌 됩니꺼
이은정의 월하독작이 한 수 윕니더
허리병이 다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