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의 3대 굴욕사건
한족들은 이민족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으로 멸시했다.
하지만 311년 서진의 ‘영가의 난’, 1126년 북송의 ‘정강의 변’, 1449년 명나라의 ‘토목의 변’ 등 한족 왕조는 ‘3대 굴욕’을 당했다
'서진'은 사마의의 후손들이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 3국을 통일하고 건설했다.
하지만 서진은 흉노족이 일으킨 ‘영가의 난’으로 30년 만에 멸망하고 중원에서 쫓겨났다
‘영가의 난(永嘉之亂)’은 흉노족 영가가 서진의 황제를 살해하고 낙양과 장안을 함락한 사건이다 한족은 영가의 난으로 오랑캐에게 중원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쫓겨났다. 수나라가 중국을 다시 통일할 때까지 중원은 분열의 시대가 계속됐다
북송(北宋)은 조광윤(趙匡胤)이 후주의 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카이봉(開封)을 도읍으로 건국됐다. 여진족 금나라에 의해 쫓겨나 항저우(杭州)로 천도하기 이전을 ‘북송’이라 하고 이후를 ‘남송’이라 한다.
‘정강의 변(靖康之變)’은 북송 황제 휘종과 흠종이 여진족 금나라에 포로로 사로잡힌 사건이다. 북송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거란족 요나라를 멸망시켰으나 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남송은 몽골족 원나라와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켰으나 원나라에게 멸망당했다.
명나라는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른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朱元璋)이 몽골족 원나라를 몰아내고 건국한 한족 왕조의 나라이다. 명나라는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만주족 청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토목의 변(土木의變)’은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가 몽골족을 다시 통일한 오이라트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포로가 된 사건이다.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야전에서 포로가 된 치욕으로 기록됐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Tonyuquq)의 비문에 새겨진 글귀이다.
하지만 한족은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오랑캐에게 굴욕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