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훈의 강범누각도
이사훈은 당의 황실이다. 측춘무후가 집권하자 이사훈은 관직을 사직하고 은신하였다. 무후가 물러가자 복권되어서 좌우림대장군이 되었다. 이로서 권력의 중심세력으로 복귀했다.
화가로서는, 아들 이소도와 더불어 청록산수를 완수했다고 한다. 이사훈을 청록산수화가의 최고봉으로 꼽는다. 그러나 오늘에는 그의 잔작은 거의 전해오지 않는다. 그나마 강범누각도와 명황행촉도를 그의 작품이라 하였으나, 지금은 명황행촉도는 그의 아들 작품이랄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산수화가로서 이사훈의 이름은 많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그 시대에는 유명한 화가였다는 것을 말한다.
산수화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준법은 아직 보이지 않으나, 준법의 아주 초기 양상을 띈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준법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요약하면, 청록산수화는 이사훈에 이르러서 최고봉의 점을 찍었다. 이후로는 수묵화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청록산수화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이조 중기 화가 조속이 그린 금궤도도 청록 산수화이다.
첫댓글 말만 듣던 시사훈의 작품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