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탄을 곧이곧대로 직역하면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다. 하지만 ‘효도를 하려해도 부모님이 타계하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는데 이미 유명을 달리하셔서 효행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편 이의 동의어나 유의어는 풍수지탄(風樹之歎), 풍수지감(風樹之感), 풍수지비(風樹之悲), 수용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등이 있다. 아울러 이 성어 출전(出典)은 한영(韓嬰)이 쓴 한시외전(韓詩外傳)*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고어(皐魚)라는 사람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뭔가를 위해 나섰던 유랑 길이었다. 사람의 통행이 뜸해 한적한 구석에서 어떤 이의 슬피 흐느끼는 통곡의 소리가 이상하게도 가슴을 울렸다.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져 다가가 수레에서 내려 궁금한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고어(皐魚)라는 사람으로 허름한 베옷을 입고 한 손엔 낫을 들고 몹시 섧게 울고 있었다. 아무리 행색을 살펴봐도 상(喪)을 당한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슬퍼하는 연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입을 열고 떠듬떠듬 답했다. 제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세 가지의 큰 잘못을 범해 그것이 괴롭고 슬퍼 흘리는 회한의 눈물이랍니다”라며 그 사연을 늘어놨다.
“젊은 날엔 공부를 하거나 제후(諸侯)를 사귄다는 핑계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모시지 못한 게 첫 번째 한이랍니다. 두 번째 잘못은 어쭙잖은 제 뜻이 제일이라는 어리석음에 겸손하지 못해 저를 받아줄 군주를 만나지 못했던 한이지요. 끝으로 세 번째 한은 흉금을 털어놓던 친구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소원해졌던 옹졸함이랍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가슴속에 새겨진 한을 토로하면서 특히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부모님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가득 담은 이런 말을 계속했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也(자욕양이친부대야))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可得見者親也(거이불가득견친야)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모시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흘러가면 쫓아 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며
가시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게 부모라네
위와 같은 말하면서 “저처럼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두루두루 되새겨보기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이른 뒤에 조용히 눈을 감고 이승을 하직했다고 전해진다. 이름 없는 필부의 절절한 얘기에 깊은 공감을 했던 공자가 제자들에게 새겨듣고 깨우치라고 이르면서 꼼꼼하게 적바림해 두라고도 조언을 했다. 또한 이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뉘우치던 바가 컸던 제자 13명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뫼시겠다고 짐을 챙겨 떠났다고 한다. 결국 위의 내용에서 풍수지탄이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결론적으로 풍수지탄은 ‘작고(作故)하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담은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을 함축한다. 따라서 부모 살아생전에 효도를 하라는 무언의 웅변이기도 하다. 그런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뭇사람들은 부모가 베풀어준 은혜만큼 효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게 마련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치를 꿰뚫고 부모에게 받았던 은혜를 대신 자식에게라도 전하며 빚을 갚으라는 맥락에서 ‘치사랑’이 아닌 ‘내리 사랑’ 철학을 우리 뇌리에 심어 준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한판암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