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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敎育의 힘
이룻:李貞姙
며칠 전 히말라야의 한 高原 마을을 소개하는 TV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 중 내 눈길을 끈 것은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風景이나 그곳의 생소한 文化가 아니라 그 곳 初等學校의 수업 장면이었다.
外部에서 보면 도저히 學校라고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한 건물, 교실은 모두 상급생 언니 오빠들에게 내어주고, 복도 바닥에 앉아 공부하는 저학년 꼬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敎卓 넓이만한 칠판, 연필 대신 진흙 잉크, 공책 대신 나무판이 전부였지만 열심히 指導하고 있는 선생님과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눈빛은 生動感이 넘쳤고, 그들의 밝은 來日을 豫見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문득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의 시골 學校 모습을 보는 듯 했으며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6․25 事變 避難 시절 天幕 교실에서 언니 오빠들과 함께 復式 수업을 받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戰爭의 잿더미 속에서 헐벗고 가난과 싸우면서 生存을 부르짖던 그 시절 極東의 分斷國 大韓民國이 상기되었다.
이제는 世界人이 눈을 비비며 새롭게 바라보는 코리아로 등장하고 있음이 새삼 꿈만 같이 느껴진다.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힘들지만 그동안 세계 제1 强大國 美國과 貿易戰爭을 일으키고, 先進國도 감히 엄두를 못내는 올림픽을 멋있게 치렀으며 民主主義 대열에 동참하여 先進國을 향한 발돋움을 한 국가이다.
이처럼 급속한 成長과 發展의 비결은 무엇이었던가? 우리에겐 크고 광활한 땅덩어리도 없다. 풍부한 地下資源도 없다. 또한 35년 간의 日本의 隸屬化로 축적된 기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戰爭의 잿더미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일어서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 점을 궁금해 하는 많은 外國人들이 세계 각처에서 몰려와 한국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쏟으며 硏究해 본 결과 그들은 입을 모아 아래와 같은 結論을 내리고 갔다고 한다.
첫째로 그 힘은 韓國 父母들의 자녀교육을 위한 뜨거운 敎育熱이라는 것이다
굳게 닫힌 학교 정문 쇠창살 사이에서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자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애처롭게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過熱 課外를 제지하고 있는 당국의 교육 정책도 아랑곳없이 그룹 그룹 배우기 위해 學院으로 몰려가는 학생들의 모습, 높은 進學率, 그로 인한 고급 인력들…. 국민교육 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이 국가 발전의 原動力이 되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 힘은 학생들의 뜨거운 向學熱과 讀書熱이라는 것이다 2020년 현재는 코로나 비상으로 서점이 썰렁하지만 그동안 종로의 대형 서점에 줄지은 학생들의 구매 행렬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중학생 정도 되면 世界文學全集을 모두 책장에 꽂아놓고 탐독할 줄 아는 한국 학생들의 그 자신감과 활기찬 모습….
이런 모든 것들을 지켜 본 한 프랑스 記者는 우리나라의 발전의 원동력이 학생들의 向學熱, 讀書熱임을 실감하고 자신의 조국을 크게 엄려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록 음악과 비디오에 시간을 뺏기며 일시적 快樂 위주로 인생을 狂的으로 살고자 하는 그들 나라의 청소년들이 염려되었으리라. 痲藥과 吸煙으로 멍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조국의 장래를 맡겨야 된다고 생각됐을 때 그 記者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교육은 내일이 있는 사람에게 거의 절대적 希望이며 학교는 저마다 품고 있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비옥한 땅이다. 그러기에 敎育에 힘쓰는 국가나 개인의 미래는 밝은 것이다. 국가가 심혈을 기울여 교육정책에 임하고 부모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犧牲해가며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도 미래를 교육의 힘에 걸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유대인의 교육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敎育熱은 일본이나 유대인보다 높다고 한다.
光復 후 混亂期와 戰亂의 극심한 궁핍을 겪으면서도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 학교 보내는 일에는 躊躇하지 않았다. 남루한 옷, 배고픈 설움도 자식을 위해서는 참을 수 있었고, 모든 삶의 보람을 공부하는 자식에게서만 찾지 않았던가. 또한 부모님들에겐 그 희생이 큰 자랑이거도 했다. 더불어 자식들은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최상이라 생각하며 배움에 진력하였던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얼마나 敎育을 중시하는 지는 모 방송국에서 선정한 장한 어머니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식 공부를 위해 온갖 고생을 이겨낸 强靭하고 忍耐心 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그 분들이 겪은 어려움에 눈물을 같이 흘리며 모두가 장한 어머니가 되어 살 길을 스스로 택했던 것이다.
만일 손발이 닳도록 고생하며 자식을 교육시킨 부모들이 없었다면 (뜨거운 敎育熱),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책상 앞에 앉았던 학생들이 없었다면 (뜨거운 向學熱)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겠느냐고 스스로 물어본다. 물론 아니다.
오늘의 繁榮과 安定은 역시 교육의 힘에서 근원을 찾아야 옳다고 본다. 고무신 공장에서 첨단 컴퓨터 산업에 이르는 과학기술,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상품을 파는 질 좋은 제품 수준과 그에 못지않은 商術, 끊이지 않는 국제 대회의 쾌보, 성숙되어가는 민주주의,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 환경…. 이 모든 것이 교육의 밑거름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前近代的인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이 지배계급의 專有物이었고 실생활과 遊離된 학문이 주류를 이뤘지만 현대의 교육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기에 先進工業國, 開發途上國을 막론하고 교육 개발과 개혁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진력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교육은 국가의 百年大計라 했고 흥망의 열쇠를 교육이 쥐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선각자, 교육자들이 舊韓末 列强의 도전과 일제 침략기에 국가의 존망이 교육에 달려있다 생각하고 國權回復과 民族保全의 길을 찾기 위해 앞을 다투어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했던 것도 교육의 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島山 安昌鎬 선생은 우리 민족은 경제적, 지식적, 도덕적 破産에 직면해 있다고 하며 민족의 자립과 번영을 쟁취하려면 먼저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하고, 이것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라나는 청년들을 중히 여겼으며 청년교육의 성패가 민족의 장래를 좌우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 滿洲나 沿海주로 망명한 獨立運動家들이 조선인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학교를 세우고 反日意識과 獨立精神을 고취시켰으며 또한 농촌으로 파고들어 文盲退治와 농촌 개발 운동을 위해 夜學을 열었던 일 등은 교육의 힘을 통해 民族 更生의 길을 열고 民族을 復興시키고자 한 조상들의 투철한 사상이며 노력이었던 것이다.
교육의 힘이 국가의 흥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미국의 폴 케네디 교수는 세계 제1 經濟大國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는 美國 경제의 원인 중 하나로 교육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21세기를 大西洋時代가 아닌 太平洋時代로 보고 교육적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極東의 여러 나라를 주역으로 꼽고 있다. 당연한 논리가 아닌가?
히말라야 高原의 초라한 학교에서 보여주었던 배움의 초롱초롱한 눈빛의 미래와 삐꺽거리는 건물의 한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靑少年들의 눈빛의 미래는 같은 빛일 수는 없다.
敎育은 흘린 땀만큼 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敎育의 힘은 개인에게도 중요하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더 크게 쓰여 져야 할 것이다. 근대 교육자 白樂濬 선생은 사회에 有利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제1 目標라고 했다. 그 다음으로 배운 사람의 目的은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社會福利, 크게는 인간 幸福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제2 目標라고 말하여 교육의 목적과 교육에 임하는 자세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利己的이고 個人的인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一類大學, 一類職場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략해서는 결코 교육의 힘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지 않는가?
우리는 일제 암흑기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가며 논밭을 팔아서라도 자식만큼은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교육에 쏟았던 先覺者들의 피땀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교사들은 현장에서 한 글자라도 더 배우고자 눈을 반짝이는 어린 학생들을 소중히 여기며 정성으로 가꾸어야 한다. 이 모두가 교육의 힘을 이루는 귀한 인재들이기 때문이다.
敎育의 힘은 곧 개인의 힘이고, 국가의 힘이요, 미래의 든든한 약속이다.
敎育을 위해 우리가 있는 한 未來는 계속 밝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이 나라의 未來를 책임 질 새싹들에게 가슴 가득 愛情을 담아서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敎育의 힘을 불어 넣어주어야 한다. 敎育하는 敎師가 있는 한 미래의 세계 중심지는 극동지역 우리나라가 될 것임을 우리 모두 기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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