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24,3-8
그 무렵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9,11-15
형제 여러분, 11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14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2-16.22-26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443년 지금부터 581년 전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습니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표현하기 쉽고,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문자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 이미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배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아들 수양대군에게 한글로 된 책을 만들게 했습니다. 1447년 아들 수양대군이 만든 책의 제목은 ‘석보상절(釋譜詳節)’입니다. 책의 내용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중요한 것은 자세하게, 그렇지 않은 것은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유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인 조선시대에 불교의 부처님을 주제로 책을 쓴 것은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은 이미 1000년 동안 불교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수양대군의 석보상절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아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1447년에 발표하였습니다. 월인천강지곡은 부처님의 자비와 덕이 하도 커서 마치 달이 천개의 강에 비춘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한글의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사용한 작품으로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게 감사드립니다. 세종대왕 역시 한글이 널리 보급되어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식사를 ‘최후의 만찬(Ultima Cena)'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체성사’가 되었습니다.
미사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할 때,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은덕이 천개의 강에 비추는 것처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 성체를 받아 모시면 우리의 몸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지난 5월 5일에 본당에서는 ‘첫 영성체’가 있었습니다. 18명의 어린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이렇게 매일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십니다.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의 가장 큰 의미는 ‘내어줌’입니다. 사제는 미사 때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공평하지 않게 만드신 것은 ‘흐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강약, 고저, 장단’이 있습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공기도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구름도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사람의 피도 끊임없이 흘러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야 하고, 그렇게 흐르는 세상은 공평해지는 것입니다. 돈도 흘러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한 나라의 것들이 강한 나라로, 가난한 사람들의 것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흐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긴 곳에서 짧은 곳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은 공평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은 예수님이 꿈꾸던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있는 나라,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있는 나라, 사막에도 샘이 흘러 꽃이 피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공부해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출세해서 자기만 잘살고, 잘 먹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세해서 세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오천 명의 것을 빼앗아 먹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 오천 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오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리시면서 어떻게 해야 공평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잘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잘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예수님께서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잘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또한, 우리도 이웃을 잘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꽃입니다. 꽃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 날려버려요. 그래도 나는 하나도 잃은 것이 없답니다. 가을이 되면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테니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