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분별하는 마음을 부수어야 又
示諭에 初機가 得少靜坐해도 工夫亦自佳라하고 又 云하되 不敢妄作靜見이라하니 黃面老子의 所謂 譬如有人이 自塞其耳하고 高聲大叫하여 求人不聞이라 하듯 真是自作障難耳이로다. 若生死心을 未破하면 日用二六時中 冥冥蒙蒙地하되 如魂不散底死人으로 一般이라. 更討甚閑工夫하여 理會靜 理會鬧耶리오.
편지에서 그대가 “처음 배우는 이가 잠깐만 고요히 앉아 있어도 공부가 저절로 좋아진다.”라고 하고, 또 “감히 고요하다는 견해를 허망하게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부처님께서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자기 귀를 스스로 막고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자신이 스스로 공부에 대한 걸림돌을 만드는 격입니다.
아직 분별로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없애지 못했다면 날마다 주어진 삶 속의 스물네 시간 삶이 어둡고 멍청한 것이 마치 넋만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부질없이 무슨 공부를 찾아 그 공부가 고요한지 시끄러운지를 이치로 알 수 있겠습니까.
涅槃會上에 廣額屠兒가 放下屠刀하고 便成佛하니 豈是做靜中工夫來며 渠豈不是初機리오. 左右見此하고 定以為不然이라하여 須差排하되 渠作古佛示現으로서 今人은 無此力量이라. 若如是見이면 乃不信自殊勝하고 甘為下劣人也리라. 我此門中은 不論初機晚學하고 亦不問久參先達이라. 若要真箇靜이면 須是生死心을 破하라. 不着做工夫하여도 生死心이 破則 自靜也리라. 先聖의 所說 寂靜方便이 正為此也인데 自是末世邪師輩가 不會先聖方便語耳니라.
열반회상에서 백정 광액이 짐승 잡는 칼을 놓고 바로 부처가 되니 어찌 이 사람이 고요한 가운데 공부를 했겠습니까. 그가 어찌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이를 보고 기어이 그렇지 않다는 마음을 냅니다. 백정 광액은 예전 부처님이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서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이런 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이처럼 생각하면 자신의 뛰어남을 믿지 않고 스스로 천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공부하는 우리 문중은 처음배우는 이나 늦게 공부하는 이를 따지지 않고 또한 오래 공부한 사람이 먼저 환히 통해야 한다는 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진정 고요한 마음이려면 모름지기 분별로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부수어야 합니다. 애써 공부하지 않아도 분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마음을 부수면 저절로 경계는 고요해집니다. 옛 성인께서 설한 적정방편이 바로 이것인데, 원래 말세의 삿된 무리들이 옛인께서 방편으로 하신 말씀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출처: 禪 스승의 편지,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첫댓글 수요일에 집안 일이 있어서 일찍 올립니다.
고요할 때 공부가 잘 되는구나하고 좋아하기 쉬운데 그것도 분별심이라니~
수없이 일어나는 분별심을 분별심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했을 때 진정한 공부라고 이해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