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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게시판 (자유공간) [재잘재잘] 밑에 조선시대에 관한 글이 있어서 그냥 다른 내용 해봅니다.
지나가는 인간 추천 0 조회 396 09.12.14 22:22 댓글 2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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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15 00:53

    첫댓글 화약지식은 일본보다 앞섰지만 당시 조선의 화약기술에는 큰 단점이 존재했습니다. 기동성이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성이나 배 위에서의 포격용이라면 단연 우세했습니다만 기동전에서는 불리했습니다. 개인화기라 할 수 있는 승자총통도 마찬가지여서 임진왜란 중후반에는 총통대신 조총을 쓰게 되지요. 거기다가 조선의 경우 이렇다할 전란이 겪어보지 못한 상태였기에 100여년간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쟁에 익숙해진 일본군에는 밀릴수밖에 없었습니다. 화포기술도 쇠퇴했고 군정은 문란해져있는 상황이어서 단순한 지휘관 계층의 잘못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09.12.15 01:00

    부산진성에서 정발장군은 삼면에서 적을맞아 끝까지싸운걸로아는데요... 고니시가 정명가도를 요구하자 정발장군이 죽기쉬우나 길을비켜주기는 어렵다 하셨자나요. 동래성에서 송상현장군역시 끝까지싸우셨지만 지원온 장군이 도망갔구요. 정발장군들으시면 경을칠글이네요 ㅠㅠ 게다가 제가배운대로는 당시 조선군무기는 세종대왕시절 북방을개척할때의 무기그대로 라고알고있는데요. 일본은 백년넘게이어져온 내란으로 무기나 훈련,경험면에서 조선군을 능가했을꺼고여. 그리구 우리나라는 장궁이아닌 각궁을썻었죠.ㅇㅇ

  • 작성자 09.12.15 16:53

    극소수만 남았잖습니까 극소수 남았다고 그 도망간 모두를 도망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각궁은 활 아닌가요? 장궁보다야 사거리가 떨어지지만 활의 잇점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글에 미처 쓰지 않았군요. 오랜 평화때문에 지휘부가 나태해져 있었다는건 저도 꼬집은 내용입니다. 훈련 경험은 분명 우리가 어찌 할 것이 못됩니다만, 그렇다고 북방지역에서 충돌이 없던건 아닙니다. 평화로운건 남부와 중부였죠. 그나마 전투경험이 있는 장군들중 하나가 신립이었죠. 아 그리고 부탁하건데 이런 진지한 글 쓰실때는 ㅠㅠ같은 이모티콘 좀 빼주시고 격식에 맞춰 써주세요. 애다루는거 같아 기분 나쁩니다.

  • 작성자 09.12.15 16:54

    지난번에 이과 발언 했었을때도 참 다들 논리성이라곤 보이지 않는 태도로 ㅇㅇ ㅋㅋ 이딴식으로 비꼬더군요. 이건 나나놔님께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여기계신 몇몇분 제발 좀 ㅋㅋㅋ 이런거 쓸때 안쓸때 구분좀 했으면 좋겠네요.

  • 09.12.15 19:17

    전모두들 죽기를각오하고 싸웠다고 들었는데요;;

  • 작성자 09.12.15 22:10

    잘못 아시고 계시네요.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고지사수의 이점때문에 그렇게 쉽게 않무너집니다. 조총은 대포가 아닙니다. 성벽에 암만 쏴봤자 아무 효과도 없고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방어자가 위에있으면 방어자가 훨씬 유리합니다. 또 성벽이라는 것이 방어자의 몸을 대부분 가려주기 때문에 조총으로 맞출수도 없고요. 결국 성을 탈환하려면 재래식 전투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러면 당연히 성에 있는 군사들이 유리하죠. 지휘관만 제대로 있었으면 절때 부산에서 뚫릴 이유가 없습니다.

  • 09.12.15 22:33

    지휘관은 제대로있었자나요. 이건확실한데 정발장군은 그곳에서 유명한말남기시고 전사하셨어요. 그리고 숫적열세에다가 사다리나 충차같은 공성무기도 있고 훈련이나 경험면에서 월등한데 죽기로싸워도 이기기힘들지않을까요?

  • 작성자 09.12.15 23:03

    그 넓은 남해안 지방에 성이 하날까요? 몇몇 기록에 남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다 도망갔습니다. 정발장군은 유명한 말 남기시고 전사하셨죠. 남해안은 고려시대 그 이전부터 일본이 해적질하러 자주 쳐들어오던 곳인데, 설마 군사 요충지와 방어기지인 성이 하나고 지휘관이 정발 장군 하나갔을까요? 수적열세가 있어도 성으로 보호받는 방어측은 유리합니다. 그렇게 수로만 따지면 역사속에서 방어측은 항상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방어측이 구지 나와서 싸우지 않고 성문을 걸어잠그면 그걸로 방어 잇점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다리요? 사다리대고 올라올동안 위에선 멍하니 있진 않습니다. 창의 장점은 여기서 발휘되는 겁니다.

  • 작성자 09.12.15 22:59

    그리고 훨씬 이전에도 나나놔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중국의 공성무기 기술자가 있었죠. 결과는 어땠냐고요? 허리띠를 성곽으로 하고 나무 조각들로 새로운 공성무기 삼아 시뮬레이션 전투를 해서 중국의 공성무기 기술자가 제대로 관광당했습니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개활지가 아니면 수의 어드벤티지도 크게 작용하지 않고 또 갖춰진 방어기지인 성을 뺏고 통과하는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도 도망간 인간이 많았기에 남은 사람들이 아주 유명한 영웅으로 부각된 것이라곤 생각해 보셨나요? 그많은 남부지방 방위사령관 중에 왜 유독 정발장군만 기록에도 남고 기억에 남을정도로 유명하냔 말입니까

  • 작성자 09.12.15 23:00

    그리고 충차라 하면 충돌에너지를 이용해 성문을 부수는 공성무기일텐데 이놈이 한번 가져다대서 부서지는 것도 아니고, 그만한 충격력을 내려면 무거워져야 하기 때문에 끌고 성문까지 오려면 당연히 시간도 걸립니다. 그걸 성위에서 조선군이 멍하니 볼까요? 저같으면 최소한 무거운 돌덩이들이라도 떨어뜨려 충차를 파괴하겠네요. 아니면 성문앞에 떨어뜨려 최소한 진로방해라도 하겠지요. 성곽 위에서 돌덩이를 던지면 그에 대한 충격력은 장난이 아니라는건 아주 기본적인 과학지식이 있으면 알테니까요.

  • 작성자 09.12.15 23:05

    뉴스에 고등학교 중퇴에 변변한 기술도 없는 사람이 자신만의 가게를 차려서 성공해서 기사에 대서특필 되었습니다. 그럼 그것을 보고 "아 학교 않다녀도 성공하는구나. 나도 때려쳐야지." 학교 중퇴해서 성공하기 쉬우면 기사에서 뭣하러 대서특필합니까. 또 반대로, SKY나와서 성공한사람 대서특필 하던가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죠. 네 지금 나나놔님이 말씀하시고 계신게 이것과 하등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 도망가고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엇기에 그들은 정말 영웅대접을 받고 기록에도 남았지요. 그것을 보고 "아 조선 장군들은 다 용감했구나" 하는것과 똑같죠

  • 09.12.15 01:10

    그리고 신립장군이 진건 장창외에도 더많은 이유가있겠죠.
    유성룡 : 전에는 왜병이 짧은 창, 칼 등만을 믿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총과 같은 신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오.

    신 립 : 조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어찌 쏘는 대로 다 맞겠습니까?

    - 유성룡. <징비록>
    이는 신립장군이 출정전에 유성룡대감과 나눈대화입니다. 즉 신립장군이 상대한 여진족은 재래식화승총이었습니다. 조총과 재래식화승총의 차이는 방아쇠의 유무인데요 재래식화승총은 심지에 불을부치고 기다리는거죠. 그러니 발사시간도길고 그만큼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 09.12.15 01:29

    조선도 그당시 승자총통이라는 재래식화승총이있었고 사거리도 조총에 세배라고는하나 위와같은이유로 공성전외에는 큰활약을못하죠. 조총과 활을비교하자면 조총의 단점은 사거리,연사력,정확도,공격력모두 떨어진다는겁니다. 하지만 장점은 숙련하는데 활과다르게 시간이 별필요없고 대기병전에서 매우유리하단점입니다. 전국을 통일한 오다는 이런조총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다른누구보다 빠르게 조총을 도입했습니다. 이걸만들어두면 사수들은 원하는만큼만들수있겠구나.. 그리고 3단철포사격법도 개발하여 정확도와 장전시간의 단점또한 어느정도 보완했습니다. 즉 신립장군은 북쪽야인들이 쓰던 화승총과 착각하는 큰실수를 저지른거죠.

  • 09.12.15 01:34

    게다가 1천의로 10만을 대적할수있는 문경에서 적을 맞이해야한다는 김여물의 건의마저 자신의 군사는 기병이 주력이기때문에 평지에서 싸워야하다는 이유로 묵살합니다. 그리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치고 적을 맞이하는데 강가이다보니 땅이질척질척해서 기병의 장점인 기동성이 발휘를 못합니다. 말들이 우왕좌왕할때 일본군이 조총을 쏘자 말들은 미쳐날뜁니다. 위에말했듯이 조총은 대기병전에강한데 이유는 그엄청난 소음과 화약냄새때문이죠. 말이날뛰자 타고있던 기수들은 무용지물이되고 그때 장창가지고 푹~ 신립장군의 패배는 장창병뿐만아니라 잘못된지형선택과 병사들간의 상성을 파악하지못한 잘못도있습니다.

  • 작성자 09.12.15 16:48

    조총역시도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그리고 기병을 매복하는게 더 바보같은 짓 아닌가요. 물론 습지에서의 기동력 마이너스는 분명 마이너스지만 기병을 계곡에 매복한다는게 더 앞뒤가 않맞네요. 그리고 일본군의 주력은 조총병이 아니라 장창병입니다. 주력도 아닌 부대를 신경쓰면 주력부대에게 밀릴수 있죠. 그리고 기병은 대 보병 부대입니다. 머스켓부대가 기병한테 강하단 얘긴 첨 듣네요. 그럼 뭣하러 창병이랑 같이다닙니까. 기병이 일자로 몰려온다면 모를까, 그런 개활지에서 조총병이 기병상대로 싸우면 답이 없습니다. 게틀링건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요. 지형만 더 좋았다면 충분히 기병으로 상대가 가능했습니다. (지형에 대한건

  • 작성자 09.12.15 16:51

    미처 파악을 못했네요. 제 불찰이죠 뭐...) 기병이 본격적으로 퇴출 된 것은 그만큼 소총의 발달때문이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병은 대보병, 특히 원거리 공격병이 자신들을 공격하기 힘들게 하는 기동성으로 밀고 들어와 진영을 뒤집어놓는 역할을 합니다. 화약냄새때문에 말이 날뛸정도로 가까이 왔다는건 조총만 있으면 위험한 상황이란 의미군요. 착검을 하고 대기하고 있다면 또 모를까요. 초기 머스켓들이 화약냄새가 심하긴 했지만 기체분자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공간을 차지하는 분자간 거리가 넓어지고 그만큼 계 내에서 밀도가 작아져 냄새가 약해지기 때문에 냄새때문에 날뛸 정도라는 건 어느정도 거리가 좁혀졋단 의미입니다

  • 09.12.16 16:06

    일본의 조총부대는 이미 기마부대를 이겨본 전적이 있습니다.오다노부나가가 다케다신켄의 기마부대를 물리친 예가 그것이죠. 지나가는 인간님께서 조총부대 운용방법으로 2개조 사격을 얘기하셨는데, 일본의 경우 오다노부나가가 창안한 3개조 사격이 보편적이었습니다. 1조가 사격을 하면 2조 대기, 3조 사격 준비. 이런식으로 조총이 가지는 단점-장전시간-을 다소나마 극복하게 됩니다. 신립이 일본의 조총부대에 대해 무지했던 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신립은 확실하게 육전에서는 최고의 장수였습니다만, 일본군을 기만했다는 점이 패인입니다.

  • 09.12.16 16:08

    거기에 기병의 운용에 적합하지 않은 개활지를 선택한 점이 더해졌죠. 그 점에서 신립이 새재를 버린 것에 대해 비난 받는 것입니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병사, 혹은 전쟁에 미숙한 병사를 이끌고 하는 전투라면, 평지에서의 야전보다는 산성에서의 수성전 혹은 게릴라 전이 훨씩 이득이라는 것은 이후의 전투-행주대첩과 같은-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 09.12.16 22:13

    글쓴이의 닉네임처럼 지나가다 몇글자 적어봅니다.
    첫번째, 지리상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했다면 길은 부산포입니다. 부산포의 서쪽 그러니까 전라도쪽으로 가면 섬이 많아 배가 나아갈 길은 많아도 배가 정박할 곳은 마땅치가 않죠.. 16만대군이라는 병력을 내릴려면 지금의 목포로 가야 하는데, 남해안을 가로질러 영산강 끝자락까지 갈 일이 전무하죠.
    두번째 쓰시마섬과 가깝고 병력을 내릴만한 거대 항이 있는 부산포로 진격을 했으면, 첫번째 타겟은 부산포 뒷자락을 끼고 있는 부산 진성입니다. 이 곳은 정발장군이 16만 왜군을 맞아 이틀이나 방어한 곳이죠..

  • 09.12.16 21:43

    그리고 거점의 이점을 너무 강조하시는데, 그 당시 송상현장군이 방어하던 읍성(동래성)의 성벽 크기를 보자면, 4m남짓 입니다. 이것도 영조 7년, 고종 7년 두번의 증축이 된 것을 현대에 와서 복원한 것이지요.. 남부지방의 성곽은 왜구를 막기 위해 해안가에 세우며 그 크기도 마치 수원성을 보는 듯 크게 세우지 않습니다. 아군의 어드벤티지?! 당장 다수의 왜군이 성곽아래 조총이던 활이던 쏘아 올린다면, 가리개를 보호삼아 활을 쏜다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현대에서도 아무리 참호를 파서 그 것을 엄폐물삼아 정조준하여 총을 쏜다 하더라도 화력이 난무하기 시작하면 난사전밖에 없습니다. 현대의 소총도 그리한데, 소총보다 큰 액션

  • 09.12.16 21:34

    이 필요한 활은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렇다고 그 시대 공용화기가 있어 고지대를 끼고 화력을 집중 투하하는 일도 없었구요.
    조총도 평가절하된 점이 있는데 왜란당시 조총보다 나게야리(장창)에 피해가 많았다라는 것은 조총이 쓸모 없다라기 보단, 운용을 어떻게 했냐에 따라 갈라질 겁니다. 왜란당시 조총은 왜군 전체을 통틀어 30%도 못미치는 양이었고, 그것마져 화약제조에 어려움을 느끼곤 사용되는 경우가 적었죠..(화약의 주요 재료중 초석은 일본에서 생산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이나 명의 수입에 의존헀지요) 왜란 당시 양국 국력의 큰 차이점은 시대상황과 무기차이 머릿수였습니다.

  • 09.12.16 21:52

    조총의 이점이라 함은 경제성과 편리성입니다. 당장의 화력과 효율은 활이 좋을 진 몰라도 공정(?)만 갖춰진다면 물쏘뿔을 수입해 만들어야 하는 활보단 싸고 질의 차이 없이 만들 수 있고, 화약만 갖춰진다면, 어느정도 숙련된 사람만이 쏠 수 있는 활과 달리 누구라도 쏠 수 있으니깐요.
    다음으로 기병과 머스켓티어 관계는 운용하는 데에 차이가 있을뿐 누가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 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닌거 같습니다. 기동성있고 파괴력있는 기병도 당장 말이 조총에 맞기라도 하면 기병으로써의 전투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고, 화약무기로 치장하고 있는 머스켓티어도 적이 근접하면 위태로울 수 있죠.

  • 09.12.16 21:54

    초반 연전연패는 훈련부족과 지휘부의 무능력때문입니다... 병사들이 화약터지는 소리에 놀랄정도로 화약무기 사용은 생각보다 흔한 경우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활은 활일뿐 너무 큰 기대는 곤란합니다... 어차피 사람의 팔힘에 의존하는 무기라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유럽의 활의 나라인 영국도 재빨리 화승총으로 넘어갑니다... 여담으로 당시 불랑기, 홍이포 모두 유럽에서 전래된 대폽니다... 이미 명나라 중기때 화약무기 성능은 역전되어버립니다...

  • 09.12.16 22:04

    결국 따지고 보면 병종의 우열을 가리는 것 보단 지휘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례로 보자면, 율율율님께서 말씀하신 나가시노전투가 있을 수 있겠고, 또 하나로 워털루 전투 입니다. 보병의 화력전에서 밀리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자랑거리이자 주축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근위기병대를 돌진 시킵니다. 이예 영국군은 대포를 중심으로 밀집대형을 꾸려 마치 바둑판 같은 대열을 만듭니다. 돌진했던 근위기병대는 그 바둑판같은 대형사이를 지나다 우왕좌왕하게 되고 결국 큰 피해를 입고 후퇴, 그로인해 나폴레옹은 크게 지고 말죠..

  • 09.12.16 22:12

    이 두가지 전투 모두 소총무기 시대를 일궈낸 무연화약과 강선(강선은 총의 몸체에서 총구까지 이어지는 관이 아니고 총열 안쪽 면에 새겨진 나선형 무늬를 말합니다. 이 나선형 무늬때문에 총알은 회전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파괴력과 명중율이 높아집니다.)이 등장하기 전입니다. (워털루 전투에선 강선이 새겨진 라이플로 프랑스 병사를 저격했다라는 내용이 있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전투상에서 활약이 아닌 전장의 거점에서 행해지는 것이었음으로 제외합니다.)

  • 작성자 09.12.17 13:02

    강선에 관한건 그냥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결국 강선은 그부분에 무늬가 새겨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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