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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소설
봉 변
------------------------------------김동권
"그건 절도야!"
"그런 놈은 발목에 쇠뭉치를 달아서 강물에……"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 치사하고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D시장 골목어귀에 있는 <뚱보집>에 들어서자, 솟구치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비수처럼 내게로 날아왔다. 구석진 빈자리에 앉아서 흥분하는 사연을 들어보니, 해도 너무한 지나친 일로 아주 푸짐한 안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뚱보집은 술을 좋아하는 일용노동자들이 그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쯤 들르는 20제곱미터 공간의 작은 목로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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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년 전 A기업 홍보과장으로 있다가 기업대표가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줄행랑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실직한 두 남매의 가장으로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노동판에 투신한 처지인데, 나도 이제 막노동 관록이 붙게 되어 혼자 또는 같이 일한 사람들과 어울려 그 목로집을 찾아가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술집의 버젓한 간판은 없지만 그 집을 애용하는 술꾼들이 붙인 이름인데 주모의 여걸다운 풍채로 볼 때 주모와 궁합이 맞는 이름이었다.
시골 운동장 같은 넓은 가슴이며 솥뚜껑 만한 손이며 이러한 넉넉한 풍채는 왕년의 유명한 여배우 백금녀를 연상시키고도 남았다.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눈이 커졌다 작아졌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던 주모는 신문 띠지처럼 생긴 기다란 용지를 내게 쑥 내밀며 흥분하고 있었다.
건네준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아보니 30만원이나 되었고 일본으로 통화한 것이 한 두 번도 아니고 자그마치 10여 차례나 되었다.
언젠가 일본에서 사업하는 친구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전화를 건 파렴치범이, 심증만 가지고 분명히 나를 꼽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강력한 명령 같은 전화요금 고지서를 다시 주모에게 건네주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네?"
"김씨, 이래도 되는 거냐구요?"
아예 나를 점찍고 있는 주모는 집어삼킬 듯이 그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
"쥐꼬리만한 양심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양심? 양심이란 말이 주모의 입에서 쉽게 튀어나왔다. 양심이란 무엇인가?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 아닌가. 이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총칼이나 권력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양심이라는데.
나는 내 양심을 생각해 보며 가슴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심장은 손바닥을 살금살금 밀어내고 있었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선가, 아마 리더스 다이제스트일 것이다. 거기에서 읽은 이탈리아 격언이 내 뇌리로 살며시 다가왔다.
‘양심은 간지러움과 같아서 타는 사람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라는. 그리고 저녁에 배달된 문화일보 1면에 예쁘게 실린 <오늘의 명언>이 떠올랐다.
‘옷은 세탁할 수 있지만 양심은 세탁할 수 없다.’라는 페르시아 격언이었다.
나는 간지럼을 잘 타는 사람인데 주모는 나를 무감각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대포 한 잔 주소."
속으로 삭이며 주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정이 가을 들녘처럼 풍요롭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엄마요 누나요 벗이었던 50대 중반에 접어든 주모의 얼굴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잠바 안주머니 속에 꼭꼭 숨어있는 베이지 색 작은 수첩을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술상 밑에서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 보았다. 한 잔 걸친 기분에 일본 친구놈 한테 주인의 양해도 없이 몰래 시내 전화를 거는 척하며 도둑 국제전화를 할 수 있을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그 고지서에 또박또박 찍힌 일본 수신자 전화번호는 내 마음을 푹 안심시켰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나는 가져 온 막걸리를 잔에 가득히 채웠다. 그리고 반쯤을 단숨에 마셨다.
"그래 어떻게 할 거요?"
가슴 명치 쯤에 박쥐문신이 새겨진 벽돌공 오씨의 예리한 시선이 주모를 향해 꽂히고 있었다.
"당장, 밝혀야지요!"
주모는 손잡이가 투박한 칼을 잡더니 안주를 만들기 위해 네모진 똑 똑 두부를 자르고 있었다.
"심증이 가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이 있죠! 이 자리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어요"
"어느 놈인가 알려 주시오. 내가 그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가지고 천장에 달아 놓을 테니까!"
스물 두 살 젊은 시절,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 폭행치사로 20여 년 간을 그늘에 묻어버린 것이 큰 자랑이나 되는 듯이 술만 한 잔 걸치면 훈장처럼 내비치는 미장이 이씨가 입에 칼을 품으며 말했다.
나와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로, 주모의 말투가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자 술청의 손님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했다.
"혀엉씨 술 한 잔 합시다!"
건너 자리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내일 모레 50을 바라보는 우락부락한 장년의 사내가 느닷없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박치기하듯이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얼른 두 손을 모으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혀엉 씨 일본에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며?"
사내의 목소리엔 쇳가루가 묻어 있었다.
"대학동창인데 한국에 가끔 오고 가는데 그 때마다 만납니다."
한잔 따르자 잔뜩 술에 취한 사내는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인사나 하고 지내자며 불쑥 거칠은 손을 내밀었다.
"나, 나무를 요리하는 목수 박옥근이오."
"저도 신성한 노동을 합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잡부 김지훈 입니다."
참 이름도 지랄 같은 이름이었다. 하필이면 그 허구 많은 이름 중에 생식기 이름을 떡 하니 존함으로 정했다는 자체가 날 샐 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기, 이성기, 박성기 등 그래도 이 이름은 대체로 부자연스럽지 않은 이름인데 옥근이란 이름은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나 같은 점잖은 사람에게는 듣기가 좀 거북했다.
이왕 튀게 이름을 지으려면 아예 김X지라고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김×랄 이라고 하던지, 신세대다운 이름으로 짓는다면 김페×스 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신선하고 좋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상당히 자극적이네요. 여자들이 들으면 금방 온몸에 전류가 통하겠어요. 그래 발기는 잘 됩니까?"
그의 접근 의도가 심상치 않아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이름을 트집 잡아 다른 데로 돌리며 진한 농담으로 선수를 쳤다. 아니나 다를까, 내 계산은 과녁을 뚫었다. 금방 나타난 반응은 예상 대로였다.
"아직도 옥근의 강도가 차돌입니다. 얼음장도……"
"아, 대단하시네요. 얼음장도 뚫을 수 있을 정도라면……남자로서 축복입니다.”
"그렇지요. 저는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자신감을 갖습니다. 그 오르가슴이라는 것이 남성의 강도나 크기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마음의 자세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방면에 일가견이나 되는 듯이 자신만만했다.
"동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알코올이 전신을 휘감자 박 목수의 처음의 접근 의도는 내 계산대로 바깥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누라가 등을 돌리니 이거 미치고 환장할 일이에요."
"박 목수의 건강을 염려해서 그렇겠지요."
"아닙니다.……징그럽답니다."
"그 징그럽다는 표현은 여자들의 상투적인 용어인데……음탕하면서도 정열적인 성애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에요."
"……"
"박 목수가 아메리카의 젊은이였다면 세금께나 납부할 뻔했습니다. 몇 년 전 클린턴 정부에서 동침세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 한 번 하는데 14달러 정도 내야 한다는 기사였는데……그러면 그게 얼마입니까. 한화로 2만원 이쪽저쪽 아닙니까?"
"세계 최강국인 그 동넨, 좀 엉뚱하면서도 희한한 동네니까요."
"결혼하지 않고 동거중인 커플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벌금(?) 성격이라지만 퍽 흥미있는 얘기죠."
"우리나라도 본받을까 봐 겁이 나는데요."
"동반예의지국에서야 그럴 리가 있겠어요. 미국인들은 섹스를 겁나게 즐기는 사람들이잖아요. 영국의 세계적인 피임기구 제조사인 <런던 인터네셔널 그룹>이 발표한 성생활 조사에 따르면 연간 평균 즐기는 횟수가 1백 35회나 된다는 군요. 그러면 3일에 한 번 꼴 인데 대단한 정력이지만 그것을 되게 좋아하는 민족이에요."
"네 저도 그 기사를 봤습니다. 그 다음이 러시아로, 1백 33회로 기록되었더군요."
"그걸 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되려면 부지런히 따라 잡아야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방면에 좀 둔한 편인지 후진국인 것 같아요. 한국 남자들은 40대만 넘어서면 고개를 숙인다니, 여인들이 지랄 발광(?)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박씨는 아직도 그런…… 축복 받은 인생이네요."
"그런데 마누라가 돈을 요구합니다. 1회에 3만원씩이나."
"네! 돈을 요구해요?"
"그렇다니까요."
"……"
"내 건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행비 마련을 위해서랍니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대패질을 하여야 되겠네요. 많이 벌어야겠어요……"
"글쎄 말입니다."
박 목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엔진 오일(?)을 갈고 오겠다며 일어났다. 3, 4분 뒤에 돌아오더니, 뿜어내니 살 것 같다며 배설의 시원함을 연발했다.
"자, 농익은 얘기는 이제 저 강 건너로 보냅시다."
"좋습니다."
술김에 박 목수는 국제전화요금 문제로 취한 상태에서 나 한테 접근했다가 얘기가 샛길로 내달리는 바람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나저나 주모 얼굴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고 햇살이 들게 해줄 방법응 없을까요?”
"그 절도범을 잡아야지요. 파출소에 신고를 하던가, 전화국에 조회를 해서 도둑 전화 건 놈이 누군가를 밝혀내서 물게 해 야죠."
박 목수는 라일락을 한 대 피워 물더니 길게 자연을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제 제안인데요. 주모나 손님들이 하나 같이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저는 그런 배짱이 없어요. 올 곧한 양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저는 파리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소심한 놈 이예요. 그리고 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예요. 문인들의 양심은 고래 심줄처럼 질깁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 물을 조금 마셨거든요. 그런데 코딱지 만한 이런 허름한 목로집에서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열 번 이상 도둑 전화를 했다는 것은 강심장 아니고는 못하는 짓이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십자가를 져주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면 의심이 가는 김씨가 내겠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하는 얘기는 아닌데, 내가 요금의 60%를 부담하고 여기 개근하다시피 하는 여러분들이 조금씩 추렴해서 40%를 부담하면 어떨까요."
그 때 어디선가 직선으로 날아온 술잔이 내 머리 위를 스쳤다.
쨍그렁! 순간 내 머리에 텁텁한 알코올이 흐르는가 했더니 정신을 잃었다.
"이, 나뿐 놈! 우째 그렇게 양심이 없노! 뭐, 문인이라고!”
그 사금파리 깨지는 소리가 내 귀청으로 멀어져 가듯 들렸다. 내가 D동에 소재한 대전기독병원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땐, 같이 대화를 나누던 박 목수와 자식에게 손벌리기가 싫어 60고령인데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정씨가 눈 속으로 들어왔다.
"좀 어때요. 정신이 드세요."
박 목수가 내 핏기 잃은 손을 잡으며 걱정을 토해냈다.
"여기가 어디 입니까?"
"충격에 의해 정신을 잃었어요."
"오른쪽 눈 두덩이에 땡감이 하나 열렸겠네요."
나는 애써 태연하며 일어났다.
이튿날 나는 일을 못나가고 쉬다가 저녁 무렵, 술 마시고 한 얘기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전화요금 60%를 부담하기 위해 뚱보집에 들렀다.
"김씨 죄송해요. 제가 나쁜 년이에요. 김씨를 의심한 제가 잘못이에요."
주모는 죽을 죄를 지었다며 사과를 했다.
"전화 건 범인이 밝혀졌습니까?"
"……네."
"누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습니까?"
"제 바로 밑으로 골치 썩이는 남동생이 하나 있거든요. 카바레에서 악사로 일하고 있는 앤 데, 요 근래 몇 번 들락날락 하더니 글쎄 일본 취업문제로 전화를 했다는 군요. 맨맛한 김씨만 의심을 해서, 그런 끔찍한 봉변을 당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 때 막 뚱보와 염문이 있는,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사나이가 친구들과 함께 들어섰다. 어제 술잔을 던진 그 경상도 사내였다.
"김씨 아저씨 죄송합니다. 주모를 비롯해서 손님들 모두가 전화를 건 파렴치범을 김씨 쪽으로 몰아 가길래 그만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히더니 백 배 사죄하고 있었다.
"타이슨이 따로 없더군요. 그런데 그런 핵 주먹을 이런 시골 목로에서 과시하면 됩니까? 그것은 주먹에 대한 모독이에요.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휘황찬란한 라스베이거스 특설 링에서나 휘둘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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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권 약력(이메일/photo718@daum.net)-----------------------------------------------------------------------------
충남 금산출신.한국방송대 국문과. 1965년 대한일보 신춘콩트에 "보복의 편지" 당선.
계간문예지 1989년"문예한국(구>詩와 意識"에 소설 당선 문단 데뷔. 대전시청·충남도청 20여년 재직. 시군 문화공보실장 등 역임.
제9회 독서상, 제1회 방송문학상, 제10회 청백봉사상. 제5회 인터넷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연리지의 戀歌" 중편 "아름다운 슬픔"등 다수. 현재 <호서문학>동인.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충남지역>부회장 역임
*Daum카페[전국문인사진센터]를 운영 /현 인터넷신문[뉴스타운]논설위원.
=핸드폰/010-5453-2587---------------------------------------------------------------/대전시 서구 만년동 거주/
첫댓글 <서예세상>에서 보내주신 <한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금산 배순환 사장이 선생님의 문하생이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의 존함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