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다
이용일
‘선배! 계엄이 뭐야?
나도 몰라, 안 겪어 봐서’
신문 기사를 읽다가 쓴웃음이 난다
나는 안다
하수관에 숨어든 내 머리 위로
시퍼렇게 뛰어가던 백골단의 군홧발 소리를
나는 안다
눈, 코, 입 할 것 없이 파고들던
지랄탄의 미친 광풍을
나는 안다
‘앞에 놈 허리띠 잡아! 대가리 처박아!’
미친 듯이 짖어대던 내 또래 계엄군의 아우성을
나는 안다
지하도 구석에 몰려
풋 가슴을 희롱당하던 그 여학생의
눈물 젖은 손짓을
그 눈빛을
나는 안다
난무하는 박달나무 곤봉에 맞아
피범벅으로 줄줄이 꿰어가던
‘행동하는 양심’의 쓰라린 침묵을
나는 안다
총칼에 찢겨 처참한 주검으로
태극기에 싸인 새파란 청춘들을
자식밖에 모르고 살아온
굴곡진 어머니들의 애끓는 통곡을
나는 안다
반란 수괴에 빌붙어 아첨하는
소위 지식층들의 가증스러운 괴변을
그 음흉한 미소를
나는 안다
반란 수괴의 조폭 같은 거드름을
그 뻔뻔한 변명을
나는 안다
평생을 트라우마에 갇혀 가슴 조이는
'행동하는 양심'의 소리없는 눈물을
아비규환 같던 그날을 덮고, 지우며
그래도 이어가는 묶어 놓은 역사를
카페 게시글
┖문학회원/창작詩
나는 안다/이용일
이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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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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