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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태, 드디어 노예-주인 변증법인가
강 학 순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에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대부분의 지식인은 개인의 자유 억압, 대량 숙청, 폭력적 전제정치로 특징지어지는 스탈린주의에 혐오를 느꼈다. 흐르시쵸프에 의해 본격적으로 스탈린격하운동이 시작된 연후에 서구 공산당은 점차 대중의 지지와 신뢰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마르크시즘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되지 않고는 서구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느끼게 된다.
이에 독일에서는 하버마스를 중심으로 휴머니스트로서의 청년 마르크스가 담겨있는 <경제-철학 수고(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 of 1844)>와, 거기의 특히 소외 개념(*)이 중심적 연구과제로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표적으로 사르트르가 현상학적 실존주의에 기반한 실천(praxis)철학으로 공산주의 혁명에 열렬했다(**).
한편 사회주의국가를 위한 비탄압이론 구성에 희망을 품은 알튀세르는, 호르크하이머와 하버마스가 중심인 프랑크학파와 반대로, 장년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론, 노동가치론, 자본축적론, 상품과 화폐론, 그리고 이들 이론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생산양식론을 중점적으로 쓴 <자본론(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을 징후적으로 독해(***) 해서 (바슐라르가 말하는)인식론적 단절을 발견했고 또한 그래서 사변에 의한 절대관념론인 헤겔주의와 단절한 ‘구조주의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재발견했다. 이 단절과 재발견 과정에서 알튀세르는 “당시 프랑스 지성사에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로부터 도움을 얻게 된다(****).
(*) 소외론에 의하면,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이 세계와 세계 모든
것의 원천이라는(휴머니즘) 의식을 가진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결과로부터
소외되어 그의 인간적 가치가 임금(돈)으로 환원된다. 이것을 루카치는 인간의 사물화(reification)라고
했다.
(**) 이에 관한 내용: 소생의 졸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문화이론과 사상, 122~126, 130~132.
(***) 징후적 독해(symtomatic reading)는 표층적 독해(surface reading)와 더불어 알튀세르의 용어다. 후자는
텍스트에 쓰여 있는 것을 쓰여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전자는 텍스트가 함의하고 있는 참된 의미를
말해주는, 또는 그것을 좌우하는, 또는 그것과 관련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전부를 종합하는 해석이다.
알튀세르는 <자본 읽기>에서 상기 <자본론>을 레비-스트로스 특히 그의 구조 개념, 무의식 개념으로부터
생각을 얻어 징후적으로 독해했다. 표층적 독해로는 마르크스의 많은 저서들을 읽는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점’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 마르크시즘은 그 이전에 선행한 문제설정과 연관된
또는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개념과 언어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 이에 푸코, 알튀세르, 바르트, 라캉을 구조주의 4인방이라고 하는데 레비-스트로스는 그들 모두의 아버지
격이었다. (F. Dosse, 1997, History of Structuralism, Volume I, p. xxi)
알뛰세르 역시 전기 마르크스는 휴머니스트였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마르크스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마르크스는 경험주의, 휴머니즘, (헤겔철학에서 보는)관념론에 기반한 기계론적 역사주의와 단절한 구조주의자로서의 마르크스라고 주장했다.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에서 구조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역점적으로 분석한, 보이지는 않지만 최종심급에서(*) 현실을 절합적으로(**) 조직하는 개념적 구조인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이다: 원시 공산제(무계급) 생산양식 -> 고대 노예제(주인․노예 계급관계) 생산양식 -> 중세 농노제(영주․농노 계급관계) 생산양식 -> 근대 자본주의(자본가․노동자 계급관계) 생산양식 [-> 미래의 공산제(무계급) 생산양식].
(*) 최종심급: ‘알뛰세르의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는 법적 층위, 문화적 층위, 정치적 층위 등 각자 자율적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전체이다. 기능이 상대적으로 다른 각각의 층위가 중층적으로
절합(articulation)해서 하나로 통일을 이룬 사회적 전체로서 기능하는 양식 혹은 효과는 최종심급에서, 즉
최종적으로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에 의하면, 마르크스 이전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이후의 학자들 역시 감각-인식에 의한 즉각적 경험의 명백성에 기초해서 타당성을 확보하는 경험주의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무의식인 생산양식을 의식이나 이데올로기의 층위에 두었다. 이에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라는 단일 원인이(하부구조가) 정치, 법, 종교, 철학 등을(상부구조를) (최종심급에서
절합적으로가 아니라)직접적으로 결정한다고 오해했다. 만약 각각 모든 심급에서 직접적인
‘하부구조결정론’이 타당하다면, 당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생산관계의 모순을 의식한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에 대해 갖는 적대감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국가장치들’ — 즉, 정당, 법원, 교회, 학교,
노동조합, 언론 등 존재물을 가진 제도들 — 에 대해 표출(이를테면 혁명으로 표출)되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현실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가 무너지고 있었다.
(**) 절합(articulation)은 구조-기능주의 인류학자 레드클리프-브라운의 용어이다.
그에 의하면, 사회의 구조는 유기체(생명체)의 절합節合구조와 흡사하다.
절합이란 한 체계 내에 있는 모든 체계구성요소는 각각[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체계
전체로 볼 때는 그것들이 상호 유기적 기능으로 결합 되어있다[合]는 의미이다. 레드클리프-브라운에
의하면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 고유한 기능을 가진 제반 영역의 제도들 — 치안영역의 제도,
정치영역의 제도, 교육영역의 제도, 경제영역의 제도, 혼인 및 가족영역의 제도 등 — 이 유기적인 전체적
통합성을 지향해 상호 절합기능을 해서 그 사회를 존속시킨다.
부연하면, 인간생존의 기반인 물질생산은 자연과 생산력의 결합에 의해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 자연에 노동자의 기술-노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임금과 생산수단(공장, 기계, 도구)이다. 이에 몸 하나 가진 노동자와, 그에게 임금을 주고 생산수단을 마련해 주는 돈을 가진 자본가 간에 생산을 위한 사회적 관계가 맺어진다. 이것이, 서로 이해가 상반될 수도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 간에 이루어진 생산관계의 성립이다. 따라서 생산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합’이라는 양식, 한마디로, 생산양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의식적 실천과 무관한 생산양식이, 시간의 흐름 곧 역사 속에서 생산력이 증대함에 따라 생산관계의 모순 갈등이 생겨 증대됨으로 인해, 변증법적으로 전환된다. 역사 속에서 생산양식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해서 결국은 공산제 생산양식이 된다는 주장 또는 믿음 곧 유물변증법적 사관이다. 이 유물변증법적 사관에 있어서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불변의 개념적 구조가 바로 생산양식이다: 원시 공산제 생산양식 -> 고대 노예제 생산양식 -> 중세 농노제 생산양식 -> 근대 자본주의제 생산양식 -> 미래의 공산제 생산양식.
헤겔은 인간의 ‘자기의식 형성과정’을 노예-주인 변증법으로 설명했다. 특히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한 마르크스는 헤겔의 그 설명을 원용해 노예를 노동자에, 주인을 자본가에 비유해서 지배-의존 변증법을 제시했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생산도구를 마련해줌으로써 외형적으로 노동자를 지배한다; 그러나, 자본가의 그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 생산은 노동자의 기술-노동에 의존한다; 이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의존이 심화됨으로 인해 양자 간의 지배-의존관계가 뒤집어진다.
이 대목에서 와락 걱정이 든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산출한 막대한 영업이익의 배분을 두고 노동자 측과 자본가 측 간의 ‘지배-의존관계’ 역전을 방불케 하는 작금의 사태가 떠올라서이다.
복잡 다난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속효성인 경제지상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역대 정치권력의, 한국 특유의 재벌기업에 대한 암묵적 비호. 이것을 법과 양심을 쓰다듬으면서 어느 정도 양해해 줄 수밖에 없는 사법권력의 고충. 그 비호와 고충 덕분에 노동자 측에 대해 계속 쎄게 나왔던 재벌자본가 측은, 지금 한국사회의 시대적 변화 앞에서 당황함을 감추면서 노동자 측과 심사숙고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또한 이쪽 저쪽 나름의 유불리적 입장이 있어서 상생적 협상을 당부할 뿐이다. 반면에 노동자 측은, 대다수 국민의 우려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칼자루를 쥔 듯 기세가 등등하다. 재벌자본가 측의 소유인 최첨단 생산수단은 오히려 노동자 측의 투쟁용 지렛대가 되었다. 우째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혹시 노동자 측의 극히 일부라도 마르크스의 지배-의존 변증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닌지...... 마침 홀연히 마르크스 형님이 들어오신다. 원래 테스 형님이 오시기로 되어있는데.
마르크스: (빙그레 웃으며) 자네 그런 우려 말게나. 내가, 아시아의 생산양식은 서양의 생산양식으로 설명할 수 없어서 별도로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분석해서 제시했네. 이와 관련해서 그 후로도 계속 동양사상 공부를 한다네.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모든 생각과 일과 실천은 때에 맞아야 한다는 것. 이것을 아는 자네의 그 우려와 걱정이야 말로 비시중적이야. 허허
강학: ... 형님, 그러면 지배-의존 변증법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의미 없다는 뜻인지요?
마르크스: 옳거니, 즉시 알아들었구먼. 소외론에 담겨있는 그 철학과 <자본론>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한 어떤 것들을 종합적으로 잘 이해한 진정 선진적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배-의존 변증법을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지적 유희물로 인식한지 오래 되었네.
강학: 그러시다면, 형님의 이론에 기반한 러시아 노동자 농민의 10월 혁명 성공은 어떻게 설명되는 것입니까?
마르크스: 바로 시중론이야. 당시 폭정과 굶주림에 지친 그들의 혁명대상은 부패하고 무능한 쨔르체제이고 이에 혁명구호도 “빵, 토지, 자유”였다. 그 성공은, 내 이론과 그에 따른 실천이 딱 ‘시중’에 맞았던 것이야.
강학: 형님 ... (머리를 긁적이며) 실은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제 우려의 핵심은 빵, 돈, 자유 다 충분히 가진 말하자면 귀족노동자들인 그들의 투쟁구호가 ‘더 많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나게 더 많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돈에 눈이 먼 듯한 사태를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시중을 말한다고 해서 과연...
마르크스: 허허 알겠네, 무슨 말 하려는지. 내 말을 먼저 들어 보게. 레닌혁명 이후 무려 110년 세월이 흘렀지 않은가. 그간 세상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한 것을 생각해 보게. 자네가 잘 알던데 징후적 독해. 지금 그들이 “투쟁”이라는 구호를 머리에 두르고 주먹을 치켜 흔들며 외치는 말과 행동을, 단순하게 표층적으로 독해하지 말고, 징후적으로 독해해서 간명하게 함 정리해 봄세.
1. 그들의 지성, 지식의 수준은 110년 전 러시아 노동자 농민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들은 내가 지금 말한 내용을 이미 훤하게 다 알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환경은 그때 짜르체제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 삼척동자도 다 안다.
2.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노동의 질적 우수성이 전자,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 지금 한국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들과 국운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자신들의 기술-노동에 자신들 회사의 성쇠, 나아가 자신들 조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잘 알고 있음이, 자신들에게 맞서는 그 누구, 그 어떤 집단의 힘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3. 그런가 하면,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우수한 기술-노동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환경과 무관하게 그들 각자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된 것이 결코 아님도 잘 알고 있다. 하나의 단편적 예로,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노동이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율적인 원료와 생산수단을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전세계적으로 구득할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4. 설령 그들이 주인-노동자 변증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지배-의존관계가 뒤집어질 때까지 재벌자본가 측이 계속 밀리기만 한다는 것은 한국적 정치경제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마르크스: 어떤가? 자네의 그 우려와 걱정, 비시중적 아닌가. 허허
강학: 역시 형님이십니다! 그들의 저러한 투쟁 태도와 방식은 노사간 협상에서 최대한을 끌어내기 위한 어디까지나 작전입니다요. 본격적 협상 직전에는 최대한 공세를 펴는 것이 에이비씨 정석이니까요...
마르크스: 암, 내 단언컨대 이것저것 훤히 다 알고 있는 그들이 상흥의 길을 두고 상쇠의 길을 택할 리가 없다. 한반도 땅의 복잡 다난한 역사적,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단시일에 세계적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아닌가! 그 축적된 지혜와 능력으로 양측간에 협상이 상흥적으로 잘 될 것이니 심려 말게나. 참, 내 다시 쉬로 들어가기 전에 끝으로 질문 하나 할까?
학순: 아 예 형님, 먼데에?
마르크스: 양측간에 최선의 상흥적 협상이 최대한 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데 외부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노?
학순: ...
마르크스: 내 힌트 하나 주꾸마. 그들이 국가의 미래마저 볼모로 잡은 듯이 기세등등하지만 내심 억수로 신경 쓰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머겠노?
학순: ... ... ... 아! 알겠심더. 우리 국민의 반응입니다.
마르크스: 오케이, 바로 그거야! 그러면 우째 반응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겠노?
학순: 예 인자 대방 알겠심다. 바로 형님의 징후적 독해에 정답이 있심다: 그 독해의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범국민적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찔끔찔끔 간헐적으로 비판 비난 해사면 오히려 그들에게 내성이 생길낌니다. 쎄게 지속적으로 해야 효과가 큽니다.
마르크스: 오케이, 정답 백점이야!
학순: 하지만, 그걸 재벌자본가 측이 좋아라고만 해서는 안되겠심다. 재벌기업이 세계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의 혜택이 우리 국민에게 더 많이, 더 구석구석 돌아갈 수 있도록 철학적으로 깊이 숙고해서 실천해야 된다고 봅니다. 물론 핵심 R&D인재에게는 그들이 케샀는 6억은 물론이고 십억, 수십억씩 지급하능기 마땅항거 아이겠심니까.
마르크스: 암 물론이지. 꼭 그렇게 잘될 것이야. 내가 볼 때 한국 국민의 총체적 애국심과 능력 세계 최고다. Wunderbares Koreaner! Hoch, Korea! 그라고 Haksui do gesok pha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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