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의 색이 바래듯 / 유점남
책꽂이를 정리하다 책갈피 속에서 나뭇잎 하나를 발견했다. 색은 바래고 잎맥만 남은 마른 잎, 손에 쥐면 바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던가 보다. 감탄을 보내며 책 속에 꽂던 날의 곱던 색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뭇잎이 지나온 시간을 따라가면 아스라이 멀어진 고향 집이 보인다. 식구들이 일을 나가고 혼자 집을 볼 때면 감나무 그늘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머리 위에서는 어린 열매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이면 어김없이 태풍이 왔다.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초록의 열매는 땅에 떨어졌다. 그때마다 이파리는 멍들었다. 몇 차례 태풍을 맞고서야 가을이 왔다. 파란 하늘과 주홍빛 감, 알록달록한 이파리들. 그 선명한 색의 대비에 가을은 깊어 갔다. 그중에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감빛보다 고운 감잎이었다. 제 할 일을 마치고 막 땅에 내려앉은 이파리는 한 장 한 장이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눈에 띄는 것들을 주워 책갈피 속에 끼워 두었다. 차곡차곡 시간을 접듯.
감나무 그림을 즐겨 그리며 화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자라서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소도시로 나가 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결혼하여 이파리가 나무와 이별하듯 나도 감나무를 떠나왔다.
사형제의 맏며느리로 시가와 한집살이를 했다. 식구 수만큼 할 일도 많았다. 딸아이를 낳고 시동생들이 하나둘 분가하고 뒤늦게 아들아이가 태어났다. 온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아이는 부모님에게도 큰 기쁨이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월은 어린 날 감나무를 휩쓸던 태풍처럼 여러 번 나를 할퀴었다.
맨 먼저 바람은 시어머님에게로 왔다. 중풍으로 한쪽 몸이 마비되어 8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시기까지 나는 어머님의 잃어버린 반쪽이 되어야 했다. 그 무렵 알게 된 아들아이의 발달장애는 온 가족의 아픔이자 보이고 싶지 않은 멍이 되었다. 점점 몸집을 불린 성난 비바람은 거침이 없었다.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시아버님에게도 뇌종양이 왔다. 병세는 악화되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병원과 집을 번갈아 오가는 동안 계절이 어떻게 왔다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어쩌다 창밖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감잎을 줍던 시절이 생각나 고향 집을 찾아가 보고도 싶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꼭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다. 비록 어려움 속에 있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남편이 힘이 되었기에 희망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은 사나운 얼굴로 다시 돌아와 기어이 마지막 버팀목이던 남편마저 빼앗아 갔다. 늦가을 어느 날 갑작스레 쓰러져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제 빛깔을 채 완성하지 못한 나뭇잎처럼 젊은 나이였다.
가지에 붙어있는 남은 잎이 소슬바람에 떨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의 날들이었다. 자리보전한 아버님, 재활교육을 받아도 차도가 없는 아들아이, 나는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고 죽어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쉬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는 것만이 위로가 되었다.
걱정만 하시던 아버님도 남편이 떠나고 5년 후에는 세상을 버리셨다. 30여 년 고락을 함께 했던 아버님과의 애잔한 이별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일을 지켜보느라 무척이나 힘들었을 딸아이도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더니 제 짝을 찾아 집을 떠나 버렸다. 식구들로 꽉 차 있던 집안에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아들과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지만, 유예했던 일들은 혼자가 된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책갈피 속에서 찾아낸 마른 잎에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자니 실핏줄 같은 파리한 잎맥 사이로 나뭇잎의 시간이 보인다. 푸르게 살랑대던 날들, 돋을볕에 반짝이던 고운 색들, 비에 젖고 바람에 시달린 상처의 흔적들…. 단순하기만 한 색이 아니다. 여러 빛깔이 숙성되어 흠집마저 품고 있는 연민의 색깔이다. 오랜 비바람을 지나온 노인의 얼굴처럼 평온하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영락없는 마른 나뭇잎 한 장이다. 나도 언제 푸르렀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물들었다 바래버린 마른 잎처럼, 내 싱그러웠던 날들도 풍상의 시간 속에서 윤기 없이 푸석해졌을 터다. 세월은 어리기만 했던 나를 가르치고 다독여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많은 것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지만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루해져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눈은 침침하고 연필 잡은 손은 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자주 떨린다. 그래도 이 시간이 좋다. 창밖으로만 보던 계절을 나는 지금 살고 있다. 살아온 지난날도 내가 그린 그림 아닌가. 지난 상처엔 꼭 같은 크기의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보다. 시련은 스스로 무르익을 기회도 주었다. 아름답고 눈에 띄는 것만 그림이 되는 줄 알았다. 마른 낙엽 한 장이 그림이 되는 줄도 이제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