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래의 人香萬里 ➐ 살벌한 정치, 유머와 위트로 녹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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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서거 60주년에 되돌아보는 소통의 정치
오늘날 정치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막말과 저급한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여권과 야권이 진영을 이뤄 극단적으로 충돌하며 살벌하게 맞서는 현실 속에서 과연 파국을 막아낼 해법은 없는 걸까.
마침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중 한 명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서거 60주년을 맞는 해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히틀러의 광기를 꺾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 때문만은 아니다.
촌철살인의 유머와 위트로 척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정치판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신뢰를 쌓으며
새로운 국면을 여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이 더 큰 이유다.
사실 처칠의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정치의 품격을 높이고 성숙한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도구였다.
그는 전쟁의 전략가이자 언어의 연금술사였고, 상황을 연출하는 무대의 명배우였다.
그가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재치있는 정치인의 본보기는 처칠만이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위기의 순간마다 유머로 치유와 희망을 선사했다.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 역시 인간미 넘치는 재치로 분단된 독일 국민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이들 지도자가 남긴 명언과 해학의 순간들은 오늘날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지침서가 될 수도 있다.
유머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처칠
처칠은 유머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상대를 제압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긴장을 해소하는데 능수능란했다.
그의 유머는 위기를 기회로, 적대감을 호감으로 바꾸는 힘을 발휘하며 정치와 일상 생활에서 빛을 발했다.
야당 후보가 “늦잠꾸러기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냐”고 비판하자,
처칠은 “예쁜 아내 덕에 늦잠을 잡니다. 못생긴 아내였다면 새벽 4시에 일어났겠지요”라고 응수해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루즈벨트 대통령과 만났을 때, 목욕 후 맨몸을 감씬 수건이 풀리는 난감한 상황에서도
“우리 대영제국은 미국과 대통령께 숨길 것이 하나도 없소이다”라며 분위기를 전환했고,
“내가 당신 아내였다면 독약을 넣었을 것”이라는 한 여성의 독설에는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기꺼이 마셨을 거요”라고 받아쳤다.
화장실에서 손을 벽에 붙인 채 볼 일을 보던 처칠에게 그 이유를 묻자
“의사가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라고 했소”라고 답해 폭소를 유발했다.
처칠이 의원 후보였을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느냐”는 청중의 야유를 받고
"그건 질문인가요, 아니면 초청인가요?"라고 재치있는 말로 상대방을 제압했고,
미술 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때 자신의 역량을 비판한 화가에게
“계란을 낳아 본 적은 없지만, 상한 계란은 금방 알아볼 수 있소”라며 일침을 가했다.
유명한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가 연극 초대장을 보내면서
“티켓 한 장은 당신 것, 다른 한 장은 아직도 친구가 남아 있다면 그를 위한 거요”라며
처칠의 외톨이 신세를 비꼬자 “만약 연극이 하루만에 막을 내리지 않는다면 참석하겠소”라고 품격있게 응수했다.
“위대한 소통가” 로널드 레이건
레이건은 뛰어난 언변과 유머감각으로 국민과 소통해 “위대한 소통가(the Great Communicator)”라는 별명을 얻었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답게 대중 앞에서 늘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신뢰를 구축했다.
대표적으로 1981년 총격사건 당시 생사의 기로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수술실로 들어가며 의료진에게 “여러분도 (나와 같은) 공화당원이길 바래요”라고 농담해 긴장을 풀었고,
간호사들이 지혈을 하며 몸을 만지자 "낸시(부인)한테 허락을 받았나요"라고 농을 던졌다.
총격사건 두 달 뒤 베를린에서 연설중 풍선터지는 소리가 크게 나자 “빗나갔군요(Missed me)”라고 말해 좌중을 뒤집어 놓았다.
위기에도 침착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사례였다.
대통령이 된 비결을 묻자
“첫째는 탁월한 기억력이고, 둘째는 음...뭐더라”라며 좌중을 웃겼고,
포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자신의 방문을 반대한 보좌관 때문에 동전던지기까지 했다면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내 뜻대로 동전이 나오기까지 무려 14번이나 던졌지요“라며 폭소를 자아냈다.
자신이 기자들을 ‘SOB’(Son of a Bitch)라고 욕설했다는 논란이 일자
“SOB는 ‘예산 절약(Saving of Budget)’이라는 뜻”이라고 답해 논란을 일축한 일화도 유명하다.
백악관 일상에서도 재치있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난 뒤, 아내 낸시가 실수로 넘어지자
"여보, 분위기가 썰렁해서 박수나 웃음이 필요할 때 넘어지기로 하지 않았소"라고 말하며 어색한 순간을 웃음으로 바꿨다.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도 유머를 활용했다.
옛소련의 계획 경제를 풍자하며
“닭을 훔치면 감옥에 가고, 닭을 키우면 세금으로 다 빼앗길 것”이라며 공산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처럼 레이건의 유머는 청중의 호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논쟁을 무마하고 난제를 풀어가는 도구로 활용하며 그를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도자 중 하나로 부각시켰다.
공화당 대선 경선 때마다 후보들이 단골메뉴로 레이건을 거론하는 이유다.
독일의 통일 이끈 콜 총리의 해학
콜은 유머를 통해 사람들을 웃기고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한 번은 정원을 정리하던 중 수류탄 세 개를 발견해 아내와 함께 경찰서로 가져가기로 했다.
이때 아내가 "여보,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라고 걱정하자,
콜은 "그럼 경찰에게 두 개만 주웠다고 하면 되니까 걱정 마"라며 유머로 아내를 안심시켰다.
또 다른 일화로, 천둥과 번개가 치던 날 갑자기 크게 웃는 콜을 보고 친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 줄 알았지"라고 능청스럽게 답했다고 한다.
이 유머는 카메라 세례를 자주받는 유명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웃음을 선사한 사례로 회자된다.
막말 난무하는 정치 이젠 멈추고, 희망의 정치로 가야
요즘 정치권은 민망하기 짝이 없는 저급한 언어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정치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칠과 레이건 같은 지도자들이 보여준 품격있는 유머와 소통의 기술이다.
이들 지도자는 재치있는 유머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때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들의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강력한 도구였던 셈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이제는 저열한 막말의 돌팔매질을 멈추고, 품격있는 언어와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국민과 마주해야 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나 모욕을 주는 막말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품위있는 언어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너진 정치의 품격을 다시 곧추세워야 한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를 맞아 희망의 정치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출처 : 맑은뉴스(https://www.cc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