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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행기
런던 - 베르겐 - 오슬로 - 코펜하겐 - 스톡홀름 - 탈린 - 헬싱키 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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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곱째 날 (2010년 6월 11일 - 금)
* 오늘의 일정
오슬로 / 오슬로역 i (오슬로 패스 구입) - 카를 요한 거리 - 오슬로 대성당 - 국회의사당, 그랜드 호텔
- 국립미술관 - 왕궁 - 국립극장 - 오슬로 시청사 - 뷔그되위(민속박물관 - 바이킹 박물관
- 콘티키호 박물관 - FRAM호 박물관) - 비겔란 공원 - 아케르후스 성
* 오슬로 역
아침 5시 50분 쯤 일어났다. 비교적 공간이 넉넉한 침대칸이어서 그런지 잘 잤다. 침대칸과 쿠셋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
꼈다. 몇년 전, 동유럽 여행중에 부다페스트에서 크라쿠프로 이동할 때 이용했던 3인용 침대칸 보다도 훨씬 편안한 느낌
이었다. 간단히 씻고, 짐정리를 하고 내릴 준비를 했다. 지난 밤에 빨래를 일부 해 놓고 잤는데, 히터를 틀어 놓고 잤더니
잘 말랐다.
아침 6시30분, 오슬로 역에 도착했다. 이른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오슬로 역은 오고가는 많은 여행객들도 붐비고 있었다.
야간열차에서 내려서 기차역의 활기찬 아침 분위기를 느끼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야간열차의 잠자리가 조금은 불편
하지만, 여행 도중에 기차역에서 경험하는 이런 느낌이 참 좋다.
오슬로 역은 깔끔했다. 최신식 시설과 적당히 배치된 쇼핑몰의 조화가 유럽에서 최고로 잘 사는 나라인 노르웨이의 수도
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 대합실의 의자에 앉아서 오늘의 계획을 확인하고 아내에게도 알려 주면서 일정을 다시 한
번 점검 했다.
아침식사는 역 내부의 햄버거 매장인 버거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아침 식사 할 만한 곳을 찾
아 보았지만, 아침식사 요금이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바게트가 50 NOK, 커피가 20 NOK의 금액으로 1인당 아침식사
요금이 만 오천원에 가까운 것이다. 다행히도 버거킹에서 저렴한 아침식사 메뉴를 찾아냈다. 치즈버거 17NOK, 커피 5
NOK.
주문을 하면 햄버거는 바로 내 주지만, 커피는 계산을 마친 후에 컵을 받아서 옆에 설치된 기계에서 원하는 커피를 선택
한 후 뽑아서 먹는다. 커피머신 옆에 설탕, 컵뚜껑 등이 비치되어 있다. 금방 걸러낸 커피라서 그런지 향이 좋고 맛도 좋
다. 물가가 비싼 노르웨이에서 5크로네라는 저렴한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슬로 역의 전광판>
<오슬로 역 버거킹에서의 아침식사>
* 오슬로역 관광안내센터
오슬로 역 앞의 광장에는 오슬로에서 제일 규모가 큰 관광안내센터가 있다. 역 밖으로 나오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 앞 광장에서 제일 눈에 띄는 시계탑 아래에 관광안내센터가 있었다. 운영시간은 07:00-20:00. 시설이 생각보다 크고,
깨끗하게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입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상담을 했다. 첫번째 질문인 오슬로 패스 구입은 별도로 준비된 창구에서 구입하
라는 안내를 받았다. 두번째 질문은 오늘밤 숙소로 예약된 호텔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슬로에서 진행되는 큰
행사로 인해서, 시내의 모든 숙박업소가 예약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외곽에 위치한 요양병원 근처의 가족호텔을 예약
한 것이다. 이 호텔은 인터넷에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아서 불안했었는데, 창구의 담당자가 확실하게 호텔의 위치
를 알려줘서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 Gaustad Hotel은 오슬로 역 앞에서 트램 17,18 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
리면 되고, 소요시간은 약 20분 걸리며 트램의 도착지명 표시가 어떻게 되어 있는 것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오슬로 패스는 전용창구에서 구입 했다. 1일권은 230 NOK. 오슬로 패스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거행하는 오슬로 답게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얼굴이 전면에 인쇄되어 있다. 우리가 구입한 오슬로 패스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가 인쇄되
어 있었다. 마침,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오슬로 패스를 이용하면 미술관과 박물관 등 무료
입장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또한, 각종 교통수단(페리, 트램, 버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경제적이고 편리
하다. 창구의 아저씨가 패스를 처음 사용하는 곳에서 개시 스탬프(validation)를 받아야 한다고 주의사항을 알려 준다.
오슬로 패스 사용에 대한 안내책도 받았다.
창구에서는 오슬로 시의 교통지도와 호텔위치가 표시된 시 외곽지도 등을 얻고, 자료를 비치한 진열대에서 '뷔그되위'
로 가는 페리 시간표와 오슬로 시내에 대한 안내책자까지 확보했다. 이제는 오슬로 시내를 구경할 모든 준비가 갖춰 졌
다. 오슬로역 ⓘ는 관광객이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얻을 수 있는 관광안내센터 운영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오슬로역 ⓘ에서 알려준 짐보관소를 찾았다. 무인락커로 운영되기 때문에 스스로 락커의 크기를 결정해야 한다. 다행히
짐을 넣어보고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 락커 샘플이 있었다. 우리는 캐리어를 2개 넣을 수 있는 40 NOK 락커를 선택했다.
락커안내 화면에서 다른언어를 선택하면 영어안내가 나온다. 원하는 위치(상,중,하)를 고르고 돈을 넣으면 비어있는 락
커의 번호와 짐을 찾을 때 입력하는 비밀번호가 표시된 영수증이 출력된다. 램프가 깜빡거리는 락커를 찾아가서 짐을 넣
고 램프버튼을 누르자 문이 잠겼다. 다른나라의 무인 락커보다 훨씬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운영 되고 있었다.
<오슬로 역 앞의 시계탑은 관광안내센터>
<오슬로 역 ⓘ의 내부 - 관광안내센터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
<오슬로 패스와 안내책자 - 오슬로 패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인쇄된다. 우리가 산 패스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 카를 요한(Karl Johans) 거리
카를 요한 거리는 오슬로 역에서 시작해서 왕궁까지 가는 오슬로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이다. 카를 요한 거리의 이름은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스웨덴 국왕의 이름에서 따왔다. 스웨덴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을만도 한데, 거리의 이름을 바꾸
지 않은 것은 스웨덴으로부터 평화적인 독립을 하고, 스웨덴과 함께 노벨상을 시상하는 등 북유럽의 동반자로써 공존을
해야 하는 역사적 필요성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9시. 오슬로 역 앞의 카를 요한거리의 입구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구름이 많이 낀 금요일 아침의 카를 요한거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한산했다. 그동안 사진에서 봤던, 사람들로 가득찬 카를 요한 거리의 모습은 아마도 최고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7,8월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 길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다 보니, 붉은색 성당 건물에 카페를 비롯해서 여러형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것이 보
였다. 오슬로 대성당의 부속건물이다. 아내가 대성당에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성당
을 한바퀴 돌아 보았다. 성당 뒷부분과 부속건물 사이에 있는 공간은 야외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큰 나무들의 아
래에 탁자들이 놓여 있는 분위기가 차분해 보여서 좋았다.
성당 건너편의 광장에서는 온갖 종류의 꽃을 팔고 있었다. 몇 가지 이름을 알고 있는 화초가 보여서 반가웠다. 화분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확인해 보았더니, 역시 값이 비쌌다.
<카를 요한 거리의 입구>
<오슬로 대성당>
카를 요한 거리로 돌아와서 길을 따라 걸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서 오래되고 특색이 있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행자 전용거리가 끝나는 부분에서 왼쪽으로 공원이 나타나고 시야가 넓어졌다. 국회의사당과 그랜
드 호텔이 있는 곳이다.
그랜드 호텔은 매년 12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진행되면 수상자가 묵는 숙소로 유명한 호텔이다. 지붕에 노르웨이 국기
가 휘날리고 있고, 국회의사당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 호텔의 중요성을 느낄수 있었다. 호텔 1층에는 입센과
뭉크 등 노르웨이의 문인가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인 그랜드 카페가 있다.
국회의사당은 독특한 외모가 눈에 띄는 건물이다. 예상과 달리 규모가 작아서 권위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국회의사당 아
래 쪽으로 내리막 길을 따라 국립극장까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 중앙에 설치된 연못과 주변의 나무들이 잘 조화
를 이룬 아름다운 공간이다. 공원을 지나다 보니, 거리의 예술가들이 공원의 천막 밑에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거리
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고, 비까지 와서 오늘 수입에 큰 지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랜드 호텔 - 노벨상평화상 수상자가 묵는 곳>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과 국립극장 사이에 있는 공원)
* 국립 미술관 (Nasjonalgalleriet)
오전 10시. 카를 요한 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국립 미술관으로 향했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와 이름은 같은데, 건물이 의외로 초라해 보였다. 건물 입구 계단에 뭉크의 유명한 그림인 '절규' 포스터가
걸려 있다.
국립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이다. 가방은 무료 보관소에 보관해야 하고, 외투도 맡겨 놓고 들어 갈 수 있는데, 날씨가 추
운 북유럽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미술관 서비스의 한 형태로 생각된다.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초등학생들의 단체 입장이 많은지, 아이들이 입구의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국립미술관 소개자
료를 받고 설명을 들었다. 안내자료는 A4용지에 앞뒤로 복사된 자료 한장 뿐이다. 국립미술관은 노르웨이의 미술과 유
럽의 미술작품을 구분하여 전시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뭉크의 작품만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는 24 전시실과 유럽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37 전시실을 주목해서 관람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24 전시실을 찾았다. 뭉크(Edvard Munch)의 '절규'라는 작품을 보고 싶어서 였다.
그 동안 매스컴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뭉크의 그림들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런데, 의외로 주요
작품에 대한 보안이 허술한 것을 보고 놀라웠다. 이미, 도난을 당한 경험이 있는 작품이 여전히 작품전체를 노출한 상태
로 전시되고 있었다.
마침, 한국인 단체관광객이 전시실에 들어왔다. 단체 관광객 틈에 섞여서 한국인 가이드가 뭉크의 작품들을 해설하는
것을 들었다. 가이드는 뭉크의 불행한 가족관계를 설명했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는 것과, '절규(The Scream)',
'마돈나(Madonna)', 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 등 주요 3작품에 대한 해설을 유창하게 해 주었다. 작품 설명의
수준으로 보아, 가이드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가이드가 뭉크의 주요작품을 설명한 후에 단체관광객들에게 10분간의 자유관람시간 후에 미술관 앞으로 모여
달라는 안내를 하는 것을 들었다. 어렵게 찾아온 오슬로의 국립미술관에서 자유관람이 10분 밖에 허용되지 않는 단체관
광객들을 보면서 단체관광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떠나고 뒤를 이어서 영어권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왔다. 다시한번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 보았으나, 여자
가이드의 설명은 한국인 가이드의 작품설명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이고 형식적이었다.
<국립 미술관>
<국립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 - 뭉크의 절규,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다.>
중앙계단에서는 르느와르의 조각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대를 갖고 찾아 간 곳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37전시실이다. 37전시실에서는 르느와르를 비롯해서 고흐, 고갱,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이어서, 오슬로의 국립미술관에서도 우리 부부에게 친숙한 인상파 화가들
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의 소형 조각도 발견했다. 뭉크의 전시실 못지
않게 37전시실도 비중있는 작품을 전시해 놓아서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수준을 증명하는 곳이었다. 이 전시실을 보지
않았으면 정말로 후회할 뻔 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기념품 점에서 뭉크의 주요 3작품의 그림엽서와 한국어판 노르웨이 안내책자를 구입했다. 뭉크
작품의 그림엽서는 1장에 10 NOK, 노르웨이 안내책자 129 NOK.
국립미술관을 나오면서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에게 뭉크의 작품 중에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절규'와 뭉크미술관에 전시
된 작품에 대해서 비교 설명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뭉크는 '절규'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국립미술관의
'절규'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있으며, 뭉크미술관의 '절규'도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는 설명을 했다. 두
곳의 작품 모두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어떤 작품이 진품일까, 어느 한쪽은 모사품이 아닐까 생각했던 의문이 풀려서 다행이다. 그러나, 나중에 오슬로 시청사
ⓘ에서 발견한 뭉크미술관의 '절규' 포스터에서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서, 국립미술관의 '절규' 그림엽서
를 꺼내놓고 비교를 해 보았다. 뭉크미술관의 '절규'에서 조금 더 제목과 어울리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붉은색 톤이
훨씬 강렬해서, 작품 속의 주인공이 절규를 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미술관 기념품점>
<뭉크의 '절규' - 국립미술관에서 구입한 그림엽서(왼쪽)와 뭉크미술관 포스터의 비교>
* 노르웨이 왕궁
국립미술관에서 오슬로 대학을 통과해서 왕궁 쪽으로 갔다. 오슬로 대학 건물 앞의 벤치에 앉아서 쿠키와 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ㄷ' 모양으로 배치된 건물 앞 광장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특이해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작은 언덕위에 있는 왕궁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하게 12시 였다. 왕궁에 도착하자 마자 근위병 교대식이 시작 되었는데,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본 근위병 교대식 중에 가장 소박한 교대식이었다. 불과 6명의 근위병이 교대를 하고 있었지만 그
들의 진지함과 기백은 어느 다른나라의 근위병에 뒤지지 않았다. 노르웨이 왕궁의 근위병 복장은 모자 왼쪽에 있는 검정
색 깃털이 특징이다. 근위병 옆에서 사진을 찍은 후에 고맙다고 했더니 눈을 찡끗하면서 답례를 해 준다. 무척 인간적이
다. 근위병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서 교대식을 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왕궁을 돌아보고 나오다가 왕궁 앞 동상 주변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맛있게 점심을 먹는 모
습을 보았다. 간간이 내리는 비 속에서도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예쁘다.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부모들이 이
런 모습을 부모가 보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하고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노르웨이의 교육현
장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슬로 대학 - DOMUS ACADEMICA>
<소박한 노르웨이 왕궁>
<왕궁 근위병 교대식 - 북유럽의 왕궁 근위병 교대식 중에 가장 소규모...>
<왕궁에 소풍나온 아이들...>
<왕궁에서 내려다 본 거리>
왕궁을 등지고 언덕을 내려오면 오른쪽에 국립극장이 있다. 국립극장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멋지지만, 극장 옆 정원에
설치된 예술가의 조각들이 분위기를 더욱 예술적으로 만든다.
<국립극장의 정면>
<국립극장 옆의 정원에 설치된 조각들>
* 오슬로 시청사(Oslo Radhuset)
국립극장에서 길을 건너 바닷가 쪽으로 가면 오슬로 시청사가 나타난다. 1950년,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시청사는 매년 12월 10일에 거행되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으로 더욱 유명하다. 책에서 본 오슬로 시청사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규모가 조금 큰 평범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본 시청사 건물은 전체적인 분위기 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 특징 있는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되면 맑게 울려 퍼지는 종탑의 종소리로 인해서 시청사가 더
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입장료는 무료.
'ㄷ'자 모양으로 구성된 시청사 입구의 회랑 양쪽에는 각종 주제를 가지고 목조부조가 설치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시청사 건물 정면에 설치된 시계는 별자리까지 표시하는 멋진 천문 시계이다. 시청사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노벨평화
상 시상식이 열리는 메인홀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정면에 그려진 대형 벽화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홀을 살펴
보면 4면의 벽에 벽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오슬로 시청사의 앞 모습>
<시청사의 메인 홀의 정면>
<시청사의 메인 홀의 옆 모습과 뒷 모습>
계단을 따라서 2층에 올라서서 첫번째로 만나는 방에서는 뭉크의 그림 '인생'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다. 2층은 메인홀
을 중심으로 사방에 방들이 배치되어 있다. 홀의 남쪽, 바닷가를 향해서 설치된 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간단한 가구
가 놓여져 있다. 그러나, 이방의 진 면목은 창가에서 내려다 보는 오슬로 항의 광경이다. 창 밖으로 펼쳐진 구름낀 오슬로
항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의 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의 인공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미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메인 홀의 동쪽방은 왕실의 초상화가 설치되어 있다. 이 방은 소박한 왕실의 분위기와 맞게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실의 권위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뭉크의 '인생'이 설치되어 있는 방>
<메인 홀의 남쪽에 있는 방 - 창 밖으로 오슬로 항을 조망할 수 있다.>
<시청사 2층의 남쪽 방에서 내려다 본 오슬로 항>
<노르웨이 왕실의 초상화가 있는 홀>
왕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홀을 지나서 북쪽의 방으로 들어가면 사방의 벽과 천정까지 각종 벽화가 그려진 방에 들어선
다. 벽화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노르웨이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벽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메인 홀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오슬로 시의회를 구경하고, 오슬로 시청사를 나섰다. 한국에서 이런 형태
의 시청사 건물을 지으면 '호화청사' 논란이 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의외로 오슬로 시청사의 모습은 뒷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다. 각종 책자에 소개된 사진을 보면 거의 대부분 뒷 모습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메인 홀과 사무실이 배치된 양쪽 타워의 모습이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북쪽의 방 - 각종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오슬로 시의회>
<오슬로 시청사의 뒷 모습>
* 뷔그되위(Bygdoy) 박물관 지구
오슬로 시청사 바로 뒤에 있는 항구로 가 보았다. 부둣가에 정박한 어선들에서 생선과 새우를 파는 모습이 신기하다.
부둣가의 한쪽에서는 어느 지역의 조합같은 곳에서 판촉행사를 하는 임시 천막이 있었다. 고래고기를 비롯해서 홍합요
리, 연어구이 등을 팔고 있었다. 훈제 고래고기를 시식해 보니 조금 짜지만 먹을 만 했다. 이 곳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점
심식사를 했다. 이 곳에도 영국의 전통음식인 Fish and Chips가 있었다. 피시 앤 칩스- 50 NOK, 연어구이 샌드위치-
40 NOK.
<오슬로 항에 정박한 어선들>
<점심 - Fish and Chips와 연어구이 샌드위치>
뷔그되위 박물관 지구는 오슬로 피오르드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반도이다. 이 곳은 노르웨이 민속박물관과 바이킹
박물관을 비롯해서 프람호 박물관, 콘티키 박물관, 해양 박물관 등이 있는 박물관 지역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노르웨이
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방문하는 곳이다. 뷔그되위는 시청사에서 배를 타고 가거나 시내에서 30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오슬로 패스를 구입하면, 각종 교통수단은 물론 이 지역의 모든 박물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편
리하다.
시청사에서 뷔그되위로 가는 배는 성수기를 기준으로 20분 마다 출발한다. 우리는 오후 2시 25분에 출발하는 배를 탔다.
배의 직원이 우리가 갖고 있는 오슬로 패스를 개시하는 스탬프를 찍어 줬다.
배가 출발하자, 바다에서 보는 시청사의 모습이 더욱 멋지다. 배의 왼쪽으로는 아케르후스 요새와 함께 대형 크루즈가
자리를 잡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부둣가에 수 많은 종류의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배가 조금 멀리 나가자 바다 위를 신나게
질주하는 요트들이 나타난다. 바이킹의 후손 답게 각 종 배들이 오슬로 항의 앞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뷔그되위로 가는 배>
<오슬로 항의 아름다운 요트들>
배는 10분 뒤에 첫번째 선착장인 드로닝겐(Dronningen)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배를 내리면 바이킹 박물관과 민속박
물관에 갈 수 있다.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카페가 눈길을 잡아 끈다. 바이킹 배의 멋진 모습을 형상화 해서 카페를 꾸
몄다.
< 드로닝겐 선착장>
<바닷가 카페의 멋진 모습 - 바이킹 배의 문양을 잘 표현했다.>
*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Norsk Folkemuseum)
선착장에서 바이킹 박물관으로 향하다가, 민속박물관에 있다는 12세기 목조 교회에 대한 사진이 기억나서 목적지를 민
속박물관으로 바꿨다. 민속박물관은 노르웨이의 옛날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관심은 많이 있었지만, 면적이
너무 넓어서 관람여부를 고민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 곳을 보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계
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입구 왼쪽에 멋지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안내소에 들어가서 오슬로 패스를 보여주니까 입장권과 안내자료를 준다.
출입구의 바코드 판독기가 입장권의 바코드를 판독하면 출입구가 작동되서 민속박물관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실내 전시관은 포기하고 야외 전시관 위주로 보기로 했다.
민속박물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잔디와 흙을 이용해서 지붕을 만든 목조 건물이다. 중세 노르웨이의 전통가
옥은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조건물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지붕은 한결같이 같은 형태이다. 모습
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 들이 사는 집들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소설 반지의 제왕이
북유럽의 전설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과연 소설의 내용을 보면 노르웨이의 전설이나 자연환경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민속 박물관>
<민속박물관 입장권과 안내자료>
<중세 노르웨이의 전통가옥>
낮은 언덕위에 서 있는 목조교회를 발견했다. 이 교회는 1200년에 골(Gol)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이
런 교회처럼 널판(stave)로 만들어진 교회를 'Stave Church' 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각 지역마다 유사한 형태의 오래된
목조교회들이 많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베르겐과 보스에서 이런 목조교회를 본 적이 있다.
이 교회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문화해설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교회내부의 제단에는 '최후의 만찬'과 비슷한 분위기의
성화가 목판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이 신기하다. 제단에 '룬' 문자가 있다고 해설사가 설명을 해 준다. 이상하게도 목조교
회 내부를 살펴보니 동양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목조건물이 이렇게 오랜기간동안 잘 보존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민속박물관의 한쪽에는 근대 노르웨이의 가옥들과 거리의 모습들도 재현이 되어 있다. 초창기 주유소의 모습이나 상
점들의 배치되어 있는 거리가 흥미롭다. 민속박물관이 너무 넓어서 몇가지 주요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지만, 노르웨이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12세기 목조교회(Stave Church)>
<노르웨이 근대의 집들이 재현된 거리>
* 바이킹 박물관 (Vikingskipshuset)
바이킹 박물관은 9세기에 활약했던 바이킹의 배 3척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이 배들은 지배자의 장례의식에서 함께 매
장되었다가 20세기 초에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배와 함께 발견된 유물들은 가치도 높고 바이킹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
다고 한다.
민속박물관에서 바이킹 박물관까지는 조금만 걸아가면 된다. 바이킹 박물관은 한눈에 봐도 뷔그되위 박물관 지구에서 가
장 인기 있는 박물관임을 알 수 있었다. 주차장도 넓고 박물관 내부에도 관람객들이 많이 있었다. 오슬로 패스를 보여주고 받은 입장권은 바이킹 배의 앞부분의 모양을 잘 표현한 멋진 디자인이다. 바이킹 배의 앞부분을 표현한 디자인은 북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으로써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이킹의 배는 1척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배의 앞부분은 뱀의 머리를 형상화 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데, 뒷
부분은 뱀의 꼬리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것을 흥미있게 보았다.
8세기에 시작된 바이킹의 약탈은 11세기까지 계속되어 유럽전역을 공포에 몰아 넜었다. 그 피해지역은 영국과 아일랜드,
지중해와 동유럽 뿐만 아니라 러시아 지역까지 포함되어 있다. 바이킹 시대를 통해서 북유럽 사람들은 유럽전체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바이킹 박물관>
<독특한 디자인의 박물관 입장권>
<바이킹 배의 앞부분에 설치된 문양>
<바이킹 배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비교>
* 콘티키 박물관 (Kon-tiki Museet)
바이킹 박물관에서 콘티키 박물관과 프람호 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어서 30번 버스를 탔다. 마침
다리가 아파서 고민을 했었는데, 무료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오슬로 패스가 한 몫을 했다.
콘티키 박물관은 노르웨이 탐험가가 잉카인과 이집트인들이 나무와 갈대를 이용해서 배를 만든 방법 그대로 3척의 배
를 만들어서 각각 남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항해한 배의 모형을 전시한 곳이다. 이 중에 콘티키 호는 남태평양을 탐
험한 배이다.
갈대로 만든 배와 뗏목들이 전시되어 있는 콘티키 박물관은 큰 흥미를 끄는 박물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허술한 배를
타고서 대양을 탐험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이킹의 후예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콘티키 박물관>
<콘티키 호>
* 프람호 박물관 (Fram Museet)
프람호 박물관은 콘티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FRAM 호는 난센, 아문센 등이 극지 탐험을 할때 사용했던 배이다. 난센
은 이 배를 타고 북극으로 항해를 하면서 북극에 대한 연구를 했으며, 프람호를 인계받은 아문센은 이 배를 타고 남극으로
항해를 하여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한 탐험가가 되었다.
프람호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배가 생각보다 컸다. 배의 내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어서 19세
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탐험가들이 배에서 생활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대와 비교해서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북극
과 남극을 탐험하고 개척한 노르웨이인의 기상을 느끼게 한다. 오슬로 안내책자의 표지가 프람호 박물관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노르웨이 사람들이 얼마나 프람호를 자랑스러워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뷔그되위의 박물관들을 돌아보면서 근현대를 살아간 노르웨이인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인들은 그들
의 조상인 바이킹의 놀라운 항해술과 탐험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의 노르웨이
는 해운강국으로 노르웨이의 배들은 전세계에서 운항 중이다.
<프람호 박물관>
<프람호>
<노르웨이의 탐험가 - 난센과 아문센>
오후 5시 25분, 뷔그되위에서 오슬로 시청사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마침, 대형 크루즈 선들이 오슬로 항을 떠나는 장관
을 연출하고 있었다. 오슬로에서는 덴마크와 독일, 스웨덴으로 가는 크루즈가 매일 오후에 출발한다. 오슬로 항을 떠나는
크루즈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일주일 후에 발트해를 누비는 크루즈를 탄 우리부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슬로 항을 떠나는 크루즈>
* 비겐란 공원 (Vigeland Parken og Museet)
오슬로 시청사에서 12번 트램을 타고 비겔란 공원으로 갔다. 트램은 불과 10분 만에 우리를 비겔란 공원 입구에 데려다
주었다. 비겔란 공원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공원은 24시간 개방을
하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오후 6시가 넘은 비겔란 공원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관람객도 거의 없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공원 입구에 서 있는
비겔란 동상과 안내판을 보고 비겔란 공원으로 들어 섰다.
<비겐란 공원으로 가는 12번 트램>
<비겔란 공원 입구>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의 동상>
비겔란의 조각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화난아이' 동상은 인공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리
위에 설치된 조각들은 인간의 역동적인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소녀 2명이 어느 조각의 특이
한 모습을 흉내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도 밝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소녀들을 보니까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화난 아이 동상>
<조각의 역동적인 동작을 흉내내는 소녀들>
<기상천외한 동작을 연출하고 있는 조각상>
분수대 조각상을 지나면서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옷이 많이 젖어서 체온도 떨어지고 몸살기운이 오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서는 비겔란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모노리트(Monolith)를 충분히 감상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날씨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조각들도 비에 젖어서 인간의 다양한 형상을 묘사했다는 조각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여건
이 되지 않았다.
악천후 속에서도 모노리트의 주변을 돌아 보면서 다양한 조각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여행을 준비하던 책자에서 재
미있는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모노리트 주변의 조각 중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녀 아이들의 조각 앞에서 아이들이
밝게 웃으면서 흉내를 내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조각들을 발견하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노리트
로 올라가는 입구의 철문에 표현된 남녀의 모습이 특이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 비겔란 공원에 온다면 조각들의 다양한 모습을 따라하는 놀이를 하면서 더욱 재미있게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으로 비겔란 공원을 떠났다.
<분수 조각상>
<비겔란 공원의 하이라이트 - 모노리트>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들의 조각>
<모노리트 주변의 모습 - 철문에 표현된 남녀의 동작들이 재미있다.>
* 아케르후스 성 (Akershus Slott)
트램을 타고 오슬로 시청사로 다시 돌아 왔다. 다음 목적지는 오늘의 마직막 일정인 아케르후스 성인데, 조금 고민이 되
었다. 옷이 너무 많이 젖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상의를 한 끝에 아케르후스 성을 간단히 보고 호텔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13세기에 왕궁으로 건축되었다는 아케르후스 성은 지금도 왕실의 공식행사로 사용되는 곳이다. 성의 주요건물 관람은
가이드 투어를 해야 하지만, 성의 내부는 밤 9시까지 주출입구를 통해서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있다.
부둣가에서 아케르후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느라고 조금 고생을 했다. 안내 책자에는 오슬로 시민들로 항상 붐빈
다고 설명이 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성의 요새에 올라가서 오슬로 항구
를 내려다 보았다. 요새가 높은 곳에 있어서 시야가 넓고 경치가 좋았다.
성의 내부에 있는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면서 건물들을 구경하고 정문 쪽으로 나왔다. 주마간산 식으로 아케르후스 성
을 구경했지만, 이 곳 역시 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다.
<바다에서 본 아케르스후스 성>
<아케르후스 요새에서 본 성의 모습>
<아케르후스 요새에서 내려다 보는 오슬로 항의 모습>
아케르후스 성 정문 앞에서 60번 버스를 타고 오슬로 역으로 왔다. 아침 9시에 역을 떠나서 11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날씨와 몸 상태가 좋았다면 카를 요한거리로 돌아가서 저녁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옷이 다 젖어서 추웠고 의욕
도 없어서 포기를 하고 말았다.
* 저녁식사와 호텔
오슬로 역의 인도카레 전문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치킨커리- 59NOK, CHANA MASALA- 59NOK, 난(19NOK)-2개.
난은 인도식 빵으로 제법 맛이 있었다. 작은 바구니에 여러 장의 난이 담겨져서 나오는데 양이 제법 많았다. 2개를 시켰
더니 2 바구니에 난이 가득 담겨 나와서 양이 너무 많았다. 향이 진하고 조금은 느끼한 인도카레에 비해서 난은 담백한
맛이 나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저녁식사 - 인도카레 전문식당>
밤 9시가 넘은 시간, 락카에 가서 짐을 꺼낸 다음 호텔로 들고갈 짐만 골라서 배낭에 넣고 캐리어를 다시 락커에 넜었다.
추가로 40 NOK가 들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호텔까지 가기가 부담 스러웠기 때문이다. 또한 트램
에서 내려 호텔까지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 가늠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됐다.
오슬로 역에서 16번 트램을 타고 20분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뜻 밖에도 트램 종점의 바로 옆에 있었다. 호텔 체
크인을 하면서 카드키를 받았는데, 오슬로로 오면서 탔던 야간열차 침대칸 객실문을 여는 카드키와 같은 타입이었다.
850 크로네라는 거금을 내고 투숙한 호텔은 아침 뷔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아침식사 시간이 8시에 시작 되기 때
문에 7시 30분에 체크아웃을 해야하는 우리는 사용 할 수 없었다. 호텔 직원이 우리를 위해서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고
약속을 했다.
<호텔 - 외곽에 있는 호텔이지만 금액은 비싸다. 850 NOK>
<호텔 리셉션>
<아침 뷔페 식당>
호텔방은 욕실이 달린 더블 베드룸이다. 이번 여행 중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푹신한 더블베드와 욕실이 있는 방에서 잠
을 자게 되었다. 환경이 좋아지니까, 마음도 편안해 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동안 밀린 빨래 때문에 걱정이 된다. 고민 끝
에 오슬로 역의 락커에 보관되어 있는 캐리어를 다시 가지고 오기로 결정했다.
호텔에서 오슬로 역까지 왕복하는데 50분이 걸려서 캐리어를 가지고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앞으로 남은 여행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호텔 리셉션에서 교대 근무자에게 다시한번 아침 도시락 준비를 확인 한 다음, 커피포트를 빌리고, 종이컵도 얻어서 방
으로 돌아왔다. 커피믹스를 2개씩 넣고 진하게 커피를 타서 먹었더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빨래를 해서 호텔방의 라지에이터 위에 널었다. 카메라, 핸드폰 등의 각종 배터리도 충전을 했다. 충전이 되는 배터리를
지켜 보면서 우리부부도 여행 중에 제로 된 휴식을 통해서 에너지를 충전 해야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야간열차에 이
어서 궂은 날씨 속에서도 하루종일 강행군을 했던 몸을 침대에 누이며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 지출 (2010년 6월 11일 - 금)
- 아침, 오슬로 역 버거킹 44 NOK
- 오슬로 역 화장실 20 NOK
- 오슬로 패스, 오슬로 역 i 460 NOK (230x2) *VISA Card
- Locker 40 NOK
- 국립미술관 기념품 159 NOK * VISA Card
- 점심, 오슬로 선착장 90 NOK
- 비겔란 공원 화장실 15 NOK
- 저녁, 오슬로 역 인도카레식당 156 NOK
- 호텔 850 NOK * VISA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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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tal 1,834 NOK (노르웨이 크로네)
<출처 : ★ No.1 유럽여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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