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
파이낸셜뉴스 기사 입력 2007.10.10. 16:27, 수정 2014.11.04. 22:19
■토니와 프랭키(알랭 압시르 지음/현대문학)
런던, 소호의 어느 바. 이스트 앤드의 부랑자 토니는 세계적인 유명화가 프랭키에게 접근한다. 그날 밤 두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토니는 곧 거장 프랭키가 가장 선호하는 모델이 된다. 처음에는 토니도 모델 일을 좋아했지만 프랭키가 그려내는 파괴적인 이미지 때문에 둘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둘의 다툼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만남과 싸움, 이별을 반복하면서 둘의 관계가 애증으로 발전하는 동안 프랭키는 토니가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는 생각을 한다. 프랭키는 토니를 통해 자신이 원했던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과 새로운 세계를 느끼게 되고 마침내 캔버스 위에서 토니의 살가죽까지 단호하게 벗겨버린다.
알랭 압시르가 펴낸 ‘토니와 프랭키’는 불멸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생애를 그린 본격 퀴어 소설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뒤틀린 몸, 괴기스런 표정과 고통에 절규하는 몸부림….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본능과 고통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현하며 20세기 미술계의 거장으로 주목받아온 영국 출신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의 이야기다.(책을 다 읽기도 전에 베이컨의 그림을 찾아보게 만든다.)
그의 실제 동성 애인이었던 모델 조지 다이어의 이야기를 소설화 한 것으로 베이컨의 실제 삶과 작품세계의 이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은 프랭키의 젊은 애인이었던 토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뒤 이를 회상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마치 독백하 듯 전개해 나간다. 토니는 죽음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프랭키의 기억 속에서 그의 삶은 다시 생생하게 복원되고 둘은 상상의 대화를 이어간다.
미술계의 거장이었던 프랭키는 어린시절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려야 했던 토니를 통해 “인간 안에 억압되어 있는 수많은 소재”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자신의 화폭속에 담아내고 싶어한다.
“시간의 고통 속에는 부드러운 면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토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잔잔한 것을 그리려면 인생의 괴기스런 연극무대에도 출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내가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아름다움이 악마같은 존재라고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사랑스런 그의 얼굴을 시커멓게 지워버리지 않고 대학살 장면 속에 다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에게 더 많은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나는 안심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토니뿐이었다.”(63쪽)
하지만 토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괴물처럼 흉측하게 그리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통해 그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
이 소설은 토니의 죽음을 통해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을 생생하게 텍스트로 재현해놓은 듯하다.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를 버릴 수 없었던 두 남자, 사랑때문에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야 했던 이들의 관계는 지금까지 사회적 편견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단순한 동성애의 코드를 넘는다.
사랑과 고통은 샴쌍둥이처럼 한 몸이다. 사랑은 천국이며 또한 지옥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사랑은 악마’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비극으로 치닫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