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고향(故鄕)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작품해설
이 시는 1941년 9월 연희전문학교 졸업반 때 쓴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에 바탕을
둔 내면세계와 탈(脫)현실의 단면을 띤 또 다른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고향마저
도 실재하는 현실적 고향과 스스로 그려서 이룩해 낸 탈현실의 고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시는 현실적 자아가 누워 있는 ‘고향’(만주 용정)과 이상적 자아가 도달하고자 하는 ‘또 다른
고향’(정신적 안식처)을 두 축으로 설정하여 그것들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빚어지는 고뇌와
불안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고향’과 ‘또 다른 고향’이 한 대응 체계를 이루고
있는 한편, ‘백골’과 ‘나’와 ‘아름다운 혼’으로 빚어진 또 하나의 대응 체계가 있다. ‘나’는 개
인적 자아 · 본래적 자아요, ‘백골’은 사회적 자아 · 유한적 자아로 이 둘은 모두 현실적 자아
를 의미하고, ‘아름다운 혼’은 종교적 자아·영원한 자아로 이상적 자아를 뜻한다.
현실적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백골’이라는 피압박의 자의식이 ‘나’를 따라와 함께 눕는다.
‘어둔 방’으로 표현된 불안과 고독의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본래적 자아인 ‘나’와 사회적 자아인
‘백골’과 이상적 자아인 ‘아름다운 혼’으로 분열된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어, ‘백골을
들여다보며 / 눈물짓는’ 자아 성찰의 몸부림을 한다. 그러나 ‘나’는 ‘고향’과 ‘백골’을 벗어나
‘또 다른 고향’과 ‘아름다운 혼’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향’과 ‘또 다른 고향’,
그리고 ‘백골’과 ‘아름다운 혼’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끝끝내 대립을 이루게 된다.
‘고향’의 어두운 방에 ‘백골’로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그 때, ‘나’를 ‘또 다른 고향’인 ‘우주’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한다고 했음)로 승화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름다운 혼’을 지향하는 지조(민족정기) 높은 그
‘개’는 ‘백골’과 등가(等價)를 이루은 ‘어둠’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밤을 새워 짖는다. (‘백골’
은 ‘소리처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풍화작용을 하여 소멸하는 것이고, ‘어둠’은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개’의 울음소리로 점차 사라지는 것이기에 이 두 사물은 등가를 이룬다.)
결국 이 작품은 현실적 공간을 뛰어넘어 밝고 넓은 초현실의 공간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영
원한 삶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 몸부림을 더욱 자극시키고 채찍질하는 것이
바로 소리처럼 느껴지는 ‘바람’과 ‘지조 높은 개’가 밤새워 우는 ‘울음’인 것이다.
[작가소개]
윤동주(尹東柱)
1917년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1925년 명동소학교 입학
1929년 송몽규(宋夢奎) 등과 문예지 『새 명동』발간
1932년 용정(龍井)의 은진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
1936년 숭실중학 폐교 후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1942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 입학, 가을에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전학
1943년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
1945년 2월 16일 큐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유고시집, 1948), 『별을 헤는 밤』(1977),
『윤동주 시집』(1984), 『윤동주자필시고전집』(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