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힘으로 너를 새긴다 외 1편
김평엽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새기는 것이라고
까치는 부리로 쇠를 찍으며 말한다
죽음의 무게와 수직의 힘으로
골치 아픈 것 후르륵 털며
눈도 빼고 힘줄, 혀까지 뽑아
오롯이 공空을 꺼내는 게 쓰는 일임을
도끼가 겨울 강 찍으며 말한다
쿵쿵 얼어붙은 심장을 파내는 일
소 도축장 울음도 꺼내어
발굽과 뿔로 외롭게 뚫고 들어가는 것
죽음을 갈아 눌러쓰는 게 글이라고,
세상 살면서 절실한 게
송곳 아니면 펜이라는 걸
뼈에 먹줄을 퉁기며 듣는다
한 뼘 더 깊숙이 그리움을 파내는 것
그 흔적이 최초의 문자이었음을
먹먹한 갱지를 타자기에 물리며 본다
파닥거리는 자음과 모음을 탈곡하던 역사와
철필로 세상을 겨냥하던 몸짓조차
절규 이상의 비명이었음을,
너의 젖은 편지로 시작하는 밤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어둠이 피 한 사발 내민다
또각또각 네가 왔다
김평엽
미사를 마치고 나온 소녀와 화단에 앉았다
갸름하다 싶은 얼굴
도도한 입술에 묻은 향기
소녀가 봄이 되어 도서관으로 간 뒤
정처 없이 기다림이 나부꼈다
꽃이 피고 있었음을,
시집을 제자리에 꽂고 나오자
우수수 활자가 떨어져 가을이 왔고
더는 꽃을 보지 못하겠지 했을 때
겨울이 왔다
어쩔 줄 모르게 창틀로 번지는 눈물
성호경 하얗게 소녀가 피고 있다
김평엽 약력:
2003년 애지 등단, 임화문학상(2007), 교원문학상 수상(2009)
시집: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 『노을 속에 집을 짓다』, 『박쥐우산을 든 남자』외
이메일: kimpy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