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이런 것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은 고대인들도 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을 정의의 실현에 있다고 봤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가브리엘 메취는 정의의 모습을 한 점의 그림(‘정의의 승리’·1651∼1653년경·사진)으로 표현했다.
화면 가운데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정의의 여신이 천사들과 함께 등장한다.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었다. 발밑에는 옷이 벗겨진 젊은 남자가 괴로워하며 쓰러져 있다. 가면도 벗겨졌고, 손에는 잣대를 쥐었다. 열린 돈 가방에선 동전들이 쏟아져 나와 있다. 여신이 짓밟고 있는 남자는 탐욕과 속임수를 의인화한 것이다. 돈에 눈이 멀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였는지, 천사가 그에게 서류 같은 걸 내민다. 오른쪽에는 아기를 안은 여인과 소년이 무릎을 꿇고 있다. 머리에 애도의 베일을 쓴 여인은 과부이고, 빨간 옷을 입은 소년은 고아다. 이들은 자신들의 딱한 사정을 여신에게 하소연하는 듯하다. 정의의 여신은 칼로 탐욕을 벌하고, 과부와 소년을 향해 공정의 저울을 들었다. 보호의 제스처다.
사실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메취는 태어나던 해에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에는 부모 한쪽만 없어도 고아였다. 가난한 조산사였던 어머니는 세 자녀를 데리고 재혼했지만, 네 번이나 과부가 됐다. 다행히 당시 과부들은 공공 자선 단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메취는 19세 때부터 전문 화가로 활동했는데, 이 그림을 그린 건 22세 무렵이었다. 가난한 청년 화가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았겠지만, 제목처럼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그림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가의 답이다. 악한 자를 벌하고 선한 자를 보호하는 것,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 그것이 바로 정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플라톤의 시대보다, 17세기 네덜란드보다 더 공정한지 되묻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