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톰히들스턴의 개
안녕 여시들ㅇㅅㅇ/
지금은 극장에서 다 내렸겠지만8ㅅ8 뒤늦게 영화 <걷기왕> 추천 후기를 들고왔어.
줄거리
버스, 배, 기차 심지어는 소까지. 타기만 하면 멀미를 하는 만복은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4시간을 '걸어'다닌다. 어느날 만복의 사정을 알게된 선생님의 권유로 경보를 시작하게 된 만복. 그 전까지는 관심도 없었던,얼떨결에 시작한 종목이지만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만복은 뿌듯함을 느낀다. 난생 처음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 만복은 급기야 금메달을 목표로 전국체전까지 출전하게 되는데.
사실 크게 기대를 안하고 봤던 작품인데 너무 재밌게 봤어. 영화는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깨알같이 웃긴 요소들을 넣어놔서 나올 때마다 엄청 웃으면서 봤어. 요즘 젊은 사람들 감성이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되게 재미없다고 하셨어ㅇㅅㅠ...
재미도 있었지만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어. 단군 이래 이런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우리 세대 모두 노력! 의지! 열정! 이런 단어들에 들들 볶이다가 이제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잖아.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 본 여시들, 혹은 노력하다가 뒤로 나자빠진 여시들, 방향도 뭣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여시들에게 굉장히 공감 가는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 추천추천!
하지만 영화가 어떤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아. 그래서 감동이라던지, 사이다 같은 결말 혹은 성취! 이런걸 원하는 여시들은 마지막에 김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을 받을지도 몰라...영화를 보고나서 아, 이렇게 해야겠다! 보다는 그냥 보면서 깔깔 웃고 고개 끄덕이고 작지만 위로도 받고 끝나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가볍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라구 생각해.
밑에는 스포 있는 리뷰 첨부했어. 스포 싫은 여시들은 주의!!!
리뷰 (스포 ㅇ)
여기, 노력공화국이 있다. 이곳에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노력'으로 이뤄낸 레파토리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죄악시되며, 열정이 없다는 말은 모욕같은 씁쓸한 기분을 남긴다. 피아노를 치면 손에 피가 나게 쳐야하고, 공부를 하면 코피가 날 때까지 해야한다. 뭘 하든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여야만, 그리고 어디가 좀 아파야지만 뭔가 좀 한 것 같은 이곳의 젊은이들에게 '실패한다'는 것은 황새와 뱁새의 다리 길이 같이 선천적인 차이보다는 의지의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그런 노력공화국에서 방황하는 만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걷기왕>은 한마디로 귀여운 영화였다. 사실 영화는 조금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노력해야한다는 말 만큼이나 영화의 감성은 교과서적이고 몇몇 장면은 클리셰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만화책 같은 효과들과 영화 속 진지한 순간에 깔리는 미친듯한 삑사리로 범벅이 된 얼토당토 않는 배경음악, 다소 황당한 전개들로 이어지는 영화를 보며 나는 쉴 새 없이 낄낄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등학교 때 면담에서 만복이처럼 담임에게 '넌 다른 애들에 비해 간절함이 없어보여. 열정도 없는 것 같고' 라는 말을 들은 장본인인 나는 심하게 공감하며 '참나, 나에 대해 뭘 그렇게 잘 아신다고.' 약 n년은 늦게 코웃음치며 봤다는 사실. 그리고 웃긴건 상담에 임하는 나는 당시에 엄청 열의에 차있었다는 사실이다. 참나.
주인공인 만복은 '선천적'으로 모든 탈 것에 멀미를 하지만 만복의 아버지는 언제나 만복이 의지가 없다고 타박한다. 9급 공무원을 꿈꾸는 만복의 짝에게 '소녀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은 귀에 쥐똥만큼도 들어오지 않는다. 열정 전도사인 담임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보라고 조언하지만, 단편적인 모습만을 잡아낸 깃털처럼 가벼운 조언은 그저 오지랖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태평한 것 같던 만복의 가슴 속에도 빼꼼 고개를 내민 불안감은 들불처럼 빠르게 퍼져나간다. 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거 같은데, 나 정말 이대로 살아도 괜찮으려나? 내가 도대체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딱히 하고싶은게 있는 것도 아니고....남들은 다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은 비단 만복의 것만은 아니다. 경보시합에서 치고 나가는 만복이 때문에 결국 제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무리하게 되는 다른 선수들처럼, 서로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서 뒤쳐져 있다는 불안감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갉아먹게 만든다.
경보를 시작한 만복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선배인 수지는 그런 만복을 미련하다고 타박하지만, 처음은 간절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지금도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게 아니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만복의 심정이 개인적으로 정말 아프게 와닿았다. 그거라도 붙잡고 있어야지 내가 아주 한심한 인간은 아닌거 같으니까. 그래도 뭐라도 하는 것 같으니까. 노력과 미련 사이, 그 적절한 균형에 대해 영화는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어보이지만 뒤로갈 수록 명확해지는 영화의 메시지는 마지막 경보시합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나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되겠니?"
결승점을 코 앞에 두고서 포기해버리는 만복을 두고 크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으나 그것마저 '만복이답다'고 느꼈다. 아마 만복은 만족했을 것이다.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고, 또 의지도 없는 것 같던 자신이 치열하게 노력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는건 그냥 자신과 맞지 않다는 걸 아니까. 누군가는 만복이 절박함도, 의지도 없다며 혀를 찰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1등 할 수 있는걸 아깝게 놓쳤다고. 그런 타박에 그니까 왜 절박해야되는데요? 글쎄 저는 노력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아마 만복은 그렇게 말하고 웃을 것이다.
마지막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심은경이 부르는 귀여운 엔딩송과 함께 영화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만복의 주변인물들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해주지만 정작 주인공인 만복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궁금했지만, 동시에 궁금하지 않았다. 빠르든 느리든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이 결국 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나 이거 상영중일 때 봤는데 소소하게 좋았어 ㅋㅋㅋ특히 꿈이랑 열정에대해 말하는 여자담임쌤이랑 체육선생이나 여주 아빠가 대사할 때 진심 화나서 존나 궁시렁댐 ㅋㅋㅋ 그치만 같이 걷는 여자선배도 멋있고 주변에서 뭐라해도 흔들리지 않고 제갈길 가는 여주태도가 난 좋더라.
나도 이영화 진짜 좋았어. 하반기에 본 영화중 제일 좋았다고 꼽을 수 있을정도야. 그리고 결말이 너무 맘에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