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개 안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심씨입니다. 심씨 소리질러~~~~~~~~~!!!!!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역임했다. 그의 생몰연대나 사적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어 알 수가 없다.
흔한 성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찾기 힘들 정도의 성씨는 아니다. 주로 수도권과 경기도에 많이 살고 있다.
심씨는 중국에서 기원한 성씨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영향이 많이 약하였으나 고려 말기에 줄을 잘 잡아서 조선조 중기까지 세도가문으로서 역사에 자주 거론이 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비 3명, 상신 13명, 문형 2명, 청백리 2명, 호당 2명, 공신 8명, 장신 1명, 문과 급제자 194명을 배출했는데 인구를 감안하면 놀라운 강세다.
4세손인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쳤고, 공민왕 때에는 중흥 9공신으로 충근양절익찬좌명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문하시중(忠勤亮節翊贊佐命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中)이 되기도 하였다. 우왕 때에는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올랐으며, 이성계를 도와 1392년 조선 건국 때 공을 세우고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청성충의백(靑城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면서 조선의 세도가문이 되었다. (이렇게 조선건국에 이바지 했어도 결국 태종이 멸문직전에 까지 이르게 한다.)
반면에 심덕부(沈德符)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여러관직을 거쳐 전리판사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으며,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다. (한마디로 전조에 충절을 지킨거다.)
청송심씨는 신천강씨와 반남박씨와는 혼인관계를 맺지 않는 다고 한다.
태종이 조선의 왕이 되었을 때 외척들을 누명이나 트집을 잡아 다 죽였는데, 그 외척의 범주에는 당시 세자였던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 심씨의 가문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 때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沈溫)은 태종에 의해 사사당했다.
이 때 청송심씨는 거의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는데, 심온의 아들 심회(沈澮)는 그의 유모가 아직 젖먹이었던 그를 업고 경상도 선산까지 도망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유모는 인삼밭에서 잠을 청했는데, 그 때 삼밭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 강거민(康居敏)이라는 사람이 달려와 이들을 거두었다. 강거민 슬하에서 자란 심회는 세종 말기에 아버지 심온의 억울함이 밝혀져 신원되자 도성으로 올라가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라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나중에 강거민과 그 부인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선산으로 내려가 6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이에 자신들의 선조를 보살펴준 은혜를 생각해 청송 심씨는 지금도 신천 강씨(信川 康氏)와는 혼사를 맺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이 둘은 서로 같은 혈족이나 다름없게 여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반남박씨는 은인의 가문이 아니라 원수의 가문으로서 혼인을 금하였다.
세종께서 새로이 즉위하셨을 때 태종께서는 상왕의 자리에 있었다. 박은(朴訔)이 총애를 받아 태종 곁에서 일을 맡고 있었는데, 심온(沈溫)이 세종의 장인인 것을 시기하여 마침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간 틈을 타 백방으로 근거 없는 비방을 퍼뜨리고는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상왕(태종)은 심온이 돌아오는대로 압록강에서 그를 잡아 사사시키도록 명하였는데, 세종과 소헌후께서도 막을 수 없었다. 박은은 사사로이 자신의 병사를 내어 심온의 집을 포위하고 그 자손들을 남김 없이 잡아 죽였다.
(중략)
심온이 이를 갈며 말하기를, "내 자손 가운데 혹 살아 남는 이가 있어 다행히 내 말을 전해 듣거든, 앞으로 영원히 박은의 집안과는 혼사를 맺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위의 이야기는 청송 심씨 집안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반대로 반남 박씨의 집안에는 이런 이야기는 한 조각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위의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는 확실지 않다.
파평윤씨와도 악연이 있는데, 그 이유는 파평윤씨의 중시조 윤관의 묘 때문이다.
조선 중기인 1614년 청송 심씨의 수장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이 윤관 장군 묘 바로 위에 부친 묘를 조성한 뒤 일대 땅을 하사받아 문중 묘역을 조성하면서 비롯됐다.
그러나 심지원이 1614년 윤관 장군의 묘를 파헤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조상의 묘를 조성한 사건이 원인이 되어, 2006년까지 파평 윤씨와 무려 392년 동안이나 두 가문이 싸웠다. (이건 정말 욕먹어도 할 말이 없다.)
사실 양 문중은 모두 조선시대 왕비를 3~4명씩 배출한 대표적인 외척 가문으로 당시 임금이던 영조가 고민 끝에 두개의 묘를 그대로 받들도록 해 화해를 구했으나 파평 윤씨 일가가 이에 불복해 심지원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매를 맞아 죽는 형을 당하는 등 원한 만 깊어졌다.
첫 산송이 있은지 무려 392년 만인 2006년 원래 묘지로부터 120m 떨어진 장소의 땅을 파평 윤씨 집안의 재산으로 장만하여 청송 심씨 집안에 넘기고 심지원과 일가의 묘를 그 쪽으로 이장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청송 심씨 집안에서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두 가문의 살벌한 산송 다툼은 막을 내렸다.
청송심씨의 인구는 대략 24만명 쯤 된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하다.
유명인으로는 드래곤볼 마인부우의 성우 심규혁, 가수 심규선, 안무가 심재원등이 있다.
첫댓글 숙청왕 ㄷㄷ
선산 김씨도 찾아보 주실수있나요?
일단 종문있는 가문이 끝나면 그 이후에 따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구폴 감사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찾아봐서 이후에 댓글 추가로
남기겠습니다.
청도 김씨에 대해서도 찾아봐주실수 있을까요?
나름 저희 가문도 재밌는이야기를 쓸만한데..
종문이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일단 종문있는 가문을 끝내고 나면 나머지 가문들도 몰아서 한번 해보겟습니다.
사륜안? 우리 조상님들 취향이ㅋㅋ 그래서 내가 덕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