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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이른 봄을 찾아..
그날 아침 어둠속에서 하얗게 밝아오는 새벽은 저만큼 앞서가며
강을 보고 싶어 달리고 있었다
차량 몇대에 나누어 타고 옥정호 맨 윗쪽 입석까지 이동하여 그곳에서 임실군에 속해있는
배를 타고 섬진강 댐까지 가야하는 아침, 새벽은 빠르게 내마음을 나른다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회원 덕분으로 임실군 배를 이용하게 되었지만 이곳은 이배 외에는
유람선같은 배는 아예 없는 곳이었다
배 안은 여느 배 보다도 작았고 우리는 정원을 조금 넘긴 인원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선실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1시간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른 선실로 들어가 앉았다
-흐음 선실밖은 시베리아 일텐데.. 경치를 감상한다고 감기나 들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는데..
전날 지방 소도시까지 내려갈 때 신세를 진 민형군(그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내려갔다)을 불렀다
-민형씨 왜 안 들어와요 거기 서 있으면 추울텐데..
-여기가 좋은데요 뭐 어차피 안은 비좁을꺼고.. 괜찮습니다
허기사 젊은데 뭐 그렇게 밖에 있는 것도 한 번은 해볼만 한 일이지
임실군에서 나오신 선장(?)님은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때부터 내옆에 앉았던
송선생님은 세부지도를 보시고 어디에서 타서 지금 어디를 지나는지 자상하게도 설명을 하신다
작년에 봉암사 기행때 뵙고 처음 뵙는 것인데..그때보다 무척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셔서
한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았다
입담도 좋으셔서 심심할 틈을 안주시고 구수한 이야기로 좌중을 까르르 웃게 만든다
배는 우리 일행을 내려주고 돌아간다
있는대로 머플러를 올리고 머리가 눌릴까봐 언제나 마지막에 쓰게되는 모자를 일찌감치 꺼내 푸욱
뒤집어 쓰고 손이 시려운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셧터를 눌렀다
댐
댐 높이 64 m. 제방길이 344.2 m. 저수용량 4억 6600만 t.
동진강(東津江) 하류지역의 수리불안전답과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호남지방의 전력난(電力難) 해소에 도움을 주고자 1961년 8월 착공하여 1965년 12월 완공한
콘크리트 중력식(重力式) 댐이다.
이 댐의 완공으로 연간 1억 6634만 7000 kWh의 전기와 연간 2억 2500만 m3의 각종 용수를 공급하게
되었으며, 초당 1,400 m3의 홍수조절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섬진강
길이 212.3 km. 유역면적 4,896.5 km2.
전북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八公山)에서 발원하여 진안군 백운면(白雲面)과 마령면(馬靈面)
등에 충적지를 만들고, 임실군 운암면(雲岩面)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곡성읍 북쪽에서 남원시를 지나
흘러드는 요천과 합류한 후 남동으로 흐르다가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과 합류한다.
그 이후 지리산남부의 협곡을 지나 경남 ·전남의 도계(道界)를 이루면서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들어간다.
대체로 강너비가 좁고 강바닥의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항해하는 데는 불편하다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댐을 바로 건너자마자 찍은 사진이다
섬진강 1차답사는 데미샘에서 시작하였고 그 때는 참가를 못 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렇게 섬진강을 걷고 싶었는데...
어머니의 너른 품처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은 봄을 갈아입느라 여기저기 설레이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지나다가 만난 강변의 촌가인데..폐가는 분명 아닌것 같았는데..사람의 손길을 느낄수가 없이
적막함만 감돌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필시 "빈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점심식사를 하게 된 "강산에"라는 식당이다
정면 간판과 명함에 커다랗게 "KBS 2회 방영, 임실군 향토음식 지정업소" 라고 씌여 있다
여기서 나는 아픈 히프때문에 사진 찍을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먹기는 열심히 먹었다
감자볶음, 취나물, 오징어 젓갈, 김치, 겉절이, 그런데다 파김치..
아무튼 다슬기탕을 주문했는데..탕이 나오기도 전에 위의 메인외의 반찬만으로
벌써 수도 없이 소주병이 여기저기 드나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걷기를 하면서 어인 소주를 그리 마시는가 생각했더니 피곤한 다리를 소주로
마비시키는 것이더란 말이지..
하기사 하루에 20km를 걷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상훈씨와 송선생님 허기자 이기자 나 윤선생님 이렇게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상훈씨는 나를 보고 대학로에서 볼 때랑 여기서 볼 때랑 기분이 많이 다르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며 연신 소주잔을 비우라고 따라 주었다 ^^
너무 많이 마시면 가볍게 걸으려던 것이 도리어 너무 가벼워져(?) 버리면 큰일이 날터이니
딱 넉잔을 마시고 나니 다슬기탕이 나오는데..
커다란 돌솥에다 뽀오얀 국물이 우러난 다슬기탕에 경상도에서 정구지라고 하고 전라도에서는
솔이라고 하는 부추를 잘게 썰어 넣었는지 둥둥 떠있고 거기에 이미 안에서 뜯어 넣은
밀가루 반죽이 하얀 색 수제비로 변해 둥둥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기만 해도 침이 돌았다
그 수제비를 국물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아~ 눈물이 핑 돈다 그런 걸 바로 "감동"이라고 하지 않는가 ^^
우리는 음식이 어떻게 없어지는 지도 모르게 열심히 먹었다 다슬기도 아주 작은 것이
섬진강 다슬기가 확실하였다
하나 더 파김치 정말 곰삭지도 않고 날 것도 아닌 것이 어찌 그리 맛나는지
-파김치 먹으면 냄새나는데 그렇다고 안 먹을수도 없는 것을
웃으면서 파김치를 밥위에다 처억 걸쳤더니 옆에 있던 허기자가 하는 말
-냄새 날테니까 전 옆에 안갈래요~
허기자는 애교를 부린다고 하는 얘기인가보다
-크읍 맘대로 하셔요 허기자 내가 그런다고 안 먹겠습니까 양취하면 될것을 무얼
걱정을 하고 이렇게 귀한 "맛"을 놓친다는 말씀입니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 몰라요?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나가면 말도 많은지 조용히 먹고 싶은 사람만 먹으면 될 것을..
전라도 지방에서 다슬기국을 이렇게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먹어보기는 처음이라
도저히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럴때는 반드시 누군가가 감동을 해 주어야만 하거든..
먹는 것에 무지하게 목숨 거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해야 하나
수제비 한 그릇, 샐러드 하나를 먹어도 맛있는 곳을 골라서 찾아 다닌다
그 후에는 모든 오감을 동원해서 반드시 만들어 먹는 것이 바로 내 맛기행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지나다가 보니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나무도 잘 모르지만 잎이 다 떨어진 후에는
더욱 모를 일이다 이런 것을 아는 사람들은 분명코 이런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렇게 낮은 것은 배나무 같기도 하고 복숭아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모르겠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군데 군데 땅을 파서 뒤집어 놓고 나무가지를 손질을 한 것인지 여기저기 뭉터기로 몰려
눕혀 있었다 우선 파릇파릇한 잔디에 눈이 멈춰서는 다른 곳으로 이동이 안된다
파란 잔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거기 드러눕고 싶어진다니까..
완만한 능선과 노랗게 죽어 겨우내 강가를 지키던 들풀들..
큰 녀석은 엄마 흑염소이고 작은 녀석들은 아기 흑염소인데.. 서로 장난을 치며 하여간 엄마 왼쪽에
있는 녀석이 유별나게 장난이 심해서 엄마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 것이다
데끼 녀석 까불기는 너 그럼 나한테 맞는당께
김용택 시인의 집에 들어서자 신선생님은 "용택이~, 용택이~ " 하며 불렀지만
출타중이어서 집에는 아무도 안 계신듯 하였다
키 큰 "사모님"이 계신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더니
마을회관에 가셨단다 ㅋ
재미있게 얘기하시는 것일텐데 싶어 부르지 않기로 하고 그냥 마당에서 사진을 찍고 나왔다
아담하고 깨끗한 집이었다
"섬진강"을 제목으로 한 글을 20편이나 쓰신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회원들은 다리도 아프니 얼른 가서 쉬고 싶은 눈치였지만 김용택 시인의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다렸다가라도 한 번 뵙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늘 혼자 여행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섬진강변에 살며 아름다운 "시"를 무수히 일구어 내는 시인을
만나본다는 것은 요즈음의 내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 들텐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다시 꼭 오리라 다짐하며 바삐 발길을 돌렸다
나처럼 키가 훌쩍 큰 것이 눈에 띄는 나무였는데..무슨 나무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김용택 시인 앞마당 키 큰 나무옆의 다른 나무.. 요건 무슨 나무일까?
우리는 이 징검다리로 건너지 않아도 되는 것을..앗~ 저기 저 아가씨는 봄바람에 바람 난 처녀라
했던가 수연씨는 건너겠다고.. 꼭 건너겠다고 하더니만 결국은 물에 빠져서 다른 회원 양말이랑
신발이랑 빌려서 신고 걸어야만 했다
구여븐 아가씨같으니라고 헴~
어찌나 차량의 행렬이 줄을 지어 가는지 도로를 걷는것이 참 힘들었는데..
도로외에 걸을만 한 길만 발견이 되면 아무리 험(?)한 가시밭길이라도 불사하며
도로가 아닌 길을 택하여 걸어 다녔다
이 매화는 도로변에 가로수 목적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로변에 어린 매화를 쭈욱
심어 놓았다 그런데 매화를 가로수로 하던가....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장소다
무쮜하게 커다란 나무들이 쭈욱 늘어서 있고..
골짜기에는 올망졸망한 산촌이 펼쳐져 있어 아기자기 하다
겨우내 찬 바람 몸으로 막아내던 나뭇가지들에도 곧 생명력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겨우내 밭에서 자손번식에 애(?)를 썼던 벌레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아마도
밭에 불을 놓아 태워버려서 한쪽은 까맣게 흔적이 남아 있고 저쪽으로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르러질 듯하게 파릇파릇 돋아나 있는 저것들은 다 무엇일까욤??
걸어 본다는 것.. 인간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중에 걷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다 걸어다니는 것을 혼자서 별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걸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여행(연수)을 갔다가 다쳐서 수술을 하고 완쾌가 되어서도 1년 넘게 걷지 못하고 살아본 나로서는
걷는것 만큼 인간에게 좋은 것도 없고 행복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전부터 산책을 한다거나 걷는 것을 각별히 좋아해 여행을 가서 걷는다는 것에
특별히 거부감을 갖을리도 없었고 어느정도의 거리는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모임에서 다녔던 여행이라는 것은 거의 걷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했고..
섬진강을 걷기전에 내가 걸어 본 가장 긴 구간이 아마 15km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선지 이번 섬진강 걷기도 자신감이 충만한 것은 아니지만 걸을 수는 있겠지 하며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첫날부터 이상한 조짐으로 나를 조금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날 6km 정도를 걸었는데 오른쪽 엉덩이 중간쯤이 결리기 시작했다
-엉? 이상하네 여기가 왜 이렇게 결리고 힘이 들지..
하며 한동안 걷지 않다가 걸어서 그런가 하며 사진을 찍느라고 매번 뒤쪽으로 쳐지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일행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엉덩이가 아파왔다
-선배 지금 걷는데 좀 불편하지 않으세요? 다리를 "八"자로 해서 걷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팔자걸음이라고 하잖아요 "八"자를 易으로 하고 걷는다 생각하고 걸어보세요
-그러면 아프지 않을겁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한 번 걸어보세요
상훈씨가 열심히 옆에서 다리를 벌리고 양반걸음이라는 걸음을 걸어 보이며 알려준다
-아 그런거야 허~ 참 내가 그동안 이렇게 앞으로 모으고 걸었었나?
자세가 나쁘다는 말이렸다 그럼 언능 고쳐 걸어야지
그때부터 나는 "걸음걸이"를 새로 시작하느라 사진도 못 찍고 걷기에만 몰두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를 보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빛을 등에 지고
우리는 강을 건너야만 했다
아무리 보아도 내 발의 상태로는(18km정도를 걸어 발바닥이 화끈거림) 띄엄띄엄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도저히 건널 자신이 없었다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건널 방법을 찾느라 두리번 두리번 거렸지만 마땅치 않았다
-선배 분명히 건널 수 있으니 양말 벗지 마세요
이때 상훈씨가 말을 건넸다
-상훈씨 무슨 말인줄 알겠는데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이 화끈거려 도저히 제대로 건널 자신이 없는데 어쩌지
-에이 왜 그러셔요 잘 하시면서.. 자 이리 손 주세요 손 잡고 여기다 왼 발을 디디면 됩니다
-가만 있어봐 나 좀 잡아줘 어머 어떻게 해 미끄러지겠어
호들갑을 떨면서 상훈씨 손을 잡고 계속해서 징검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해는 점점 기울어 가고 덕치리 갤러리 민박에 모두 들어가서 여장을 풀고 식당방으로 모였다
막 겨울을 벗어난 때라 이 산골짜기까지 찾아드는 손님이 있을리 만무하니 방들은 모두 썰렁했다
모두들 식당방으로 건너가고 다리가 죽기살기로 아픈 나는 찬 방에 이불을 몇 겹으로
깔고 다리를 좀 쉬게 하는데..쪼르르 혜리가 오더니
-왜 추운데 여기서 누워서 그래 불 넣었으니 식사하고 오면 따뜻해질테니 저리로 같이 가자구
아픈 다리를 절룩 거리며 들어가 수다 떠는 소리를 들으며 한쪽에 기대여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아니어서 도무지 식사는 오늘밤이 새기전에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오랜 각고의 시간끝에 밥상이 차려지는데 겨울 김장김치 맛이 환상이었다
조미료 일체 넣지 않은 김장김치가 너무 맛이 있어서 매운탕도 찬밥 신세가 될 지경이었으니 말야
지영선생님은 아플때는 소주가 조금 들어가야 얼얼한게 잠들기 좋은거야
하시면서 소주에다 솔잎을 넣어 만든 술을 조금씩 따라 계속 내게 권해 주었다
저쪽에서 상훈씨는 나때문에 힘든 여행이라고 넉살을 떨기에 가서 한 잔 따라 주었다
아무튼 다정하고 다감한 사람들이다
이 모임에서 걷기 시작한 것도 꽤 세월이 흘렀다
맛난 저녁후에 구관이 명관이라며 발바닥에 잡힌 커다란 물집에 실을 꿰어두어야 한다며
기어이 내 발을 잡아끄는 김선생님앞에서 엄살을 부리면서...
섬진강 기슭 덕치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다음날 답사는 남원대강에서 걷기를 끝내고 아침에 차를 주차시켰던 적성이라는 곳으로
모였다 거기서 늦게 합류한 사람들이 흩어져 가고 모두 저녁식사를 하러 떠나는데..
섭섭하지만 나는 거기서 일행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서부터 같이 내려온 혜리도
-아니 발도 아픈데 어딜 혼자 다니겠다고 그러는데 그냥 같이 서울로 올라가는게 어때?
하며 내가 일행과 헤어져 가는 것을 만류하는 눈치였지만 마음 먹은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바로 이런 순간에 갑자기 혼자 쓸쓸해 질 것을 두려워하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내가 누누히 얘기하지 않았던가..
혼자가 되는 것이 뭐가 두렵단 말인가 어차피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조금 얌전하다 싶은 여선생이 걱정을 하는듯이 물어왔다
-오늘밤 어디서 숙박을 하시려고요?
-숙박이요? 그건 하동으로 갈테니까 하동에 가 모텔을 찾아 봐야지요~
-아유 그런데 어떻게 여자가 혼자 들어가서 자려구 그러세요 잘 수 있어요?
아니 그런데라니?
모텔이라는 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이란 말인가?
잠을 자는 곳이란 말인데..모텔에서 잠을 자는것이 무에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인지
그럼 지방을 여행하는데 모텔가서 잠을 안자면 어디가서 잔단말이야
얌전한 요조숙녀는 그런데서 잠을 잔다는 일은 상상도 안해보았다나 뭐라나
누가 자기보고 모텔가서 잠을 자랬나
허억, 나의 행동거지가 무언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는가보다
하긴 저런식으로 자아를 은근히 부각시키며 나와 자신을 비교하자는 심산인가 ㅎ ㅎ
저런 사람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사람들이기 십상인데..
우선 하동을 가기 위해서는 남원을 향해 적성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혼자 떨어졌을 때부터의 일정표
오후
적성(17:30)-->남원(17:55)-->하동(19:30)
이튿날 아침
하동(11:00)-->광양 다압면(11:10)-->하동(12:10)
하동(12:25)-->진교(12:50)-->남해(13:40)
남해(14;20)-->미조(15:00)-->물건리(16;30)
물건리(17:50)에 택시로 남해(18:15)도착
남해(18:30) 우등버스로 서울 남부터미널 도착
헤어져 간 사람이 어떻게 여자가 모텔같은데서 잠을 자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퀴퀴한 냄새도 없고 화장실도 깨끗한 섬진강 자락 하동의 모텔방에서 지칠대로 지치고
여기저기 물집에다 형편없이 망가져 버린 두 발을 그나마 편하게 쉬게 할 수 있었으니
참 나는 일도 잘 풀리는구나 천만다행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샤워를 간단히 하고 발바닥을 보니 물집에 물은 더이상 잡히지 않고
그만해 있어 안심하고 맥주 한 캔을 마시고 금방 잠이 들었나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7시가 넘어 있었다
자~아 오늘은 나 혼자서 돌아다녀 보는거야 히 힛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신바람이 나서 하나 둘씩 그러나 무리하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며
배낭을 챙겨 메고 밖으로 나왔더니 저기 빨간 차앞에 웬 강아지 녀석이 게으른 동작으로
아침부터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데..아침부터 시장어귀가 조용하게 시끌벅적하다
조용하게 시끄럽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정말 조용하게 시끌시끌하였다
그래서 잠시 시장을 전체 검문하기로 하고 휘익 둘러 보았다
초입에 들어서는데 어느 야채집도 아니고 건채집 같은데서 아주머니 한 분이 산마를 앞에 놓고
주인 아주머니 같은 사람에게 열심히 물어 보았다
-이 마를 갈아서는 계란도 넣고 참기름도 넣고 우유도 넣어서
먹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주인 아주머니는 그렇게 드시면 된다고 몇 번 말해줘도 물어보신다고 핀잔이다
마를 앞에 놓고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강판에 갈아서 먹을 때 계란을 노른자만 넣어 간장을 조금 넣고 잘 저어서 먹으면 좋다고
우유에 갈때는 아무래도 강판에는 힘들테니 믹서에 갈아 보시라고 그런데
그렇게 마셔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그렇게 갈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 아주머니로 보이는 그 사람이 나를 째려 보고 있었다 ㅎ
떡을 떼어다가 버스 터미널에 놓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 모습..
젊으셨을 때는 참으로 고왔을 할머니 얼굴에 잡혀있는 주름은 고단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 연륜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어디 떡을 만들 힘이 있어 보이는가..
그다지 맛이 있지는 않았지만 삼천원어치를 달라고 하였더니 비닐봉지에 두번이나
담아서 손에 들려 주시면서 하나 더 입에 넣으라고 주신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많이 파시고 건강하세요
버스표는 샀는데 밥을 먹지 않았으니 우선 요기를 하고 발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으려거든
얼른 소염제와 항생제를 먹어야만 했다
바로 옆에서 포장마차처럼 가두에서 재첩국을 파는데..요즘은 거의 중국산이라는
말을 들은 터라 건너편 평범한 백반집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김밥같은 것을 먹기도 그래서 아무래도 평소에 좋아하는
된장찌게백반으로 시켰더니 이렇게 한 상을 차려다 주시는데 우선 밥이 쌀은 별로였는데
금방 한 밥인지 너무 맛이 있었고 통도라지 무친것과 코다리 조림이 뛰어났고
콩자반도 서울에서 보는 속파랭이 검은콩이 아니고 대두의 알이 작은 종류로
저렇게 노르스름하게 볶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맛있었다 힉~
배도 고팠겠다 언능 한숟가락 입에 넣어 허겁지겁 먹다가 앗뿔사
사진 사진 사진 울 조블 식구들...
나는 어디를 가나 이제는 사진을 찍고야 만다 조블땀시
옛날에는 사진 찍는 사람은 찍든지 말든지 그런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나 하고 싶은것만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카메라를 들고 아주 사진이 직업인 사람처럼 행동한다 ㅋ ㅋ
섬진강을 건너 광양 다압면에 있는 매화마을로 들어갔다
작년같았으면 벌써 거반 한 나무에 몇 송이씩은 피었을텐데 올해는 일조량이
적어서 그런지 꽃이 늦다고 축제용 천막을 치고 커피를 파는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축제까지는 닷새정도 남았었는데 벌써 축제용 천막은 다 만들어지고 아저씨들도
남은 마무리 작업에 한참 바쁘게 움직이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 그러고보니 11일이면 내일부터 다압면 매화마을 매화축제가
시작이 되는구먼 허 가고싶당 ^^
그러다가 내일 차타고 휘리리리리릭 매화 보러 갈까보담
세그루 정도에 꽃이 피었는데 이것은 백매화 세송이 핀 것중에서 한 송이다
프로 사진가들인지 커다란 장비를 들고 왔다갔다 하던 아저씨가 내가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니 비켜서면서
-여기서 찍으셔야 잘 찍힙니다 몇 송이 안되니까 사진 찍기가 힘드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좀 피었으려니 하고 왔더니 아직이네요
-저기 오다 보니 홍매가 활짝 피었던데 차 안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저는 슬슬 걸어서 가 봐야겠네요
-걷기는 좀 먼데 이따 제 차 타고 가십시요 저도 가야하니
-아~ 네에 저는 괜찮습니다 매화 찍으러 온 것도 아닌데요 머 많이 찍으세요
청매실 농원쪽으로 걸어올라 먼 곳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광양으로
나누어지는 길다란 강줄기를 내려다 보며 한 컷 찍었다
부탁을 하지 않아도 먼저 차를 태워준다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저런 아저씨들이라도 있으니 나같이 혼자 다니는 사람도 위안 받고 사는것 아닌가?
차는 얻어 타지 않았지만 생긴것도 예술가(?)처럼 느무 멋쮠 아저씨였다
이쪽이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
앞에 흐르는 강은 섬진강 건너편에 넓게 보이는 곳이 하동이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화개장터가 바로 저기저기 보이는 곳이고
그곳에 가면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 글고 최진사댁도 보이지만..
나는 때가 때인지라 바다에나 다녀서 집으로 얌전히 돌아가야지 괜시리 까불다가
어디 아파 죽는다고 하는 일 생길라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는지 서 계신다
버스 정류장 같기는 한데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여기서 버스 기다리세요?
-응 여기 서있으면 이제 버스가 올끼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꺼내신다
부산으로 시집을 가서 친정에 다녀 가신다는데..
-내 어릴때는 여기 천지가 밤나무밖에 없었고 여기는 전부 경사면에 논뿐인기라..
논 쬐끔 있는걸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언캉 가난했는데..
저 위에 김씨 할아버지가 일본 가서 매화 낭구 심는 거를 배와갖고 그 때부터는 전신이
매화 낭구 심어 갖고 그래도 이만큼 먹고 살게 됐다카이
근데 아주머닌가 색씬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없이 어데 혼자 이리 댕기나?
-네 혼자 슬슬 유람하러 다닙니다
-아~이 팔자가 늘어졌네 혼자 다니믄 편치 뭐
나이는 좀 있어보이는데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나 싶어 더 묻지 않는 눈치다
-혼자 다니능게 편한데예
아암~ 혼자 다니는게 편하지 편하구 말구
버스가 저기서 슬렁슬렁 달려온다
아주머니를 먼저 차에 타게 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 오는데 그러고도 뭔가 얘기를 해주고
싶은 눈치인데 사람들이 많으니 그만 입을 꾹 다문다 흐흠 ^^
이제 하동에서 다시 진교로 가 버스를 타고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로 바다로 달렸다
남해에서 버스로 1시간쯤 달려 미조에 도착했다
온도가 상승하니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시계가 흐렸다
어쩐 일인가 나는 바다 용왕님의 자식인가? 왜 그다지 바다가 좋으냐~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아서 몇 날이고 바닷가에 머무르고 싶다
미조항인데 거기서 물건리 가는 버스가 3시 20분과 정각 4시에 있어
4시표를 산 다음에 간단하게 식사라도 할 겸 두리번 거렸다
모르는 동네에 가면 큰 식당보다 작은 식당을 우선 두리번 거리는 이유는..
대부분 그런곳에 토박이 사람들이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 옆에 조그맣게 보이는 해남식당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앗~차 아저씨들이 두명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튼 경상도 사람들 특유의 컬컬하고 목청 좋은 목소리로 여간 떠드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데로 갈까 하다가 아무렴은 어떠랴 식당안에서 혼자 덩그러니 밥을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뭐 하며 자리를 잡아 의자를 빼었더니 아주머니께서 앉으라며 웃는다
아저씨들을 보며 내가 웃자
-괜찮십니더 우리 아저씨 친구라예
고개를 끄덕이며 보니 아저씨들 술자리에 회가 한 접시 놓여 있는데..구미가 땡겼다
-아주머니 저렇게 회를 먹으면 얼마예요?
-네 저건 술 좀 자신다 해서 그냥 해드린건데 혼자 드실꺼라 이만원어치만 해 드릴까예?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금방 반찬을 후다닥 채려다 주면서 소주도 한 병 올려 놓는다
얼른 병뚜겅을 열어서 한 잔 따라가지고는 반잔을 꿀떡 넘겼다 카악 꿀맛이었다
아저씨들이 쳐다보신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꼈지만
아무튼 빨리 마시고 먹고 가야해서 무조건 맛나보이는 걸로 먹으면서
회를 기다렸다
그때 밖에서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면서 옆테이블에 합석을 했다
갑자기 나를 보더니 말을 건넨다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싶네예
참 아저씨들끼리 맛나게 드시라고요 이몸은 갈 길이 바쁘다구요 ㅋ ㅋ
대답도 안하고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인지 나오시더니
-느들하고 놀 그런분 아니다 점젆은 분 식사 하는데 와 이리 시끄럽게..
하니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아저씨들 말없이 술만 드신다 ㅎ
멋진 아저씨가 한 마디로 좌중을 평정하고 밖으로 나가신다
그때 아주머니가 매운탕을 가지고 오시는데 시간이 10분도 채 안 남았다
속도를 조금 빠르게 맛나게 후다닥 먹고 돈을 치루고 야단 맞은 아저씨들 뒤로 하고
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아저씨들 내 담에는 꼭 술 한잔 바들끼구만 기다리시소 구여븐 아저씨들 바이바이~
한참을 달리는데 깜박 잠을 잤나보다 갑자기 눈을 뜨고보니
물건마을이 지난건지 아직 안 지난건지 모르겠어서
-아저씨 물건리는 아직 멀었나요?
-허어 조금 전에 지났는데 진즉 말을 해야지 참 쯧쯧
-네에 정말요? 어 어떡하나 클났네
-지나긴 뭐가 지나 요 너머 가면 물건리야 저 아저씨가 장난 하는거라우
흐악 저 아저씨한테 당했당
그런데 가만보니 아저씨가 말로다 표현을 못하겠는데 뎁따 웃기게 생기셨다
평소에도 버스를 타는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장난을 잘 하는가보다 ㅋ
물건마을 앞 버스에서 내리니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밭에 파릇파릇한 것은 전부 마늘이다 남해에서 키워져 서울까지 원정을 오는
유명한 것은 바로 요녀석들 요마늘인기라
바닷가로 내려가려니 양옆에 돌로 쌓은 돌담이 아담해 한 장 찰칵~
물건마을 앞에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면 그대로 마을을 덮쳐 피해가 많았으리라
지금은 저렇게 방파제를 양쪽으로 쌓아놓았고 그 유명한 방조어부림으로 나무가 바다를
마주하고 길게 심어져 있었다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졌지만 제 철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시원할 것만 같았다
방조어부림
물건리 해안가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물미해안도로가 유명한데 차가 없어 돌아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면서..까만 돌이 깔린 해변을 끝까지 걸었다
고깃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물건리 활어 유통쎈타앞에 서있는 홍보물
여기까지 와서 고깃배가 들어와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 보려고 했는데 고기를 내리지 않아
구경하는 것을 그만두고 딱 한 집 있는 수퍼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택시를 불렀다
이미 남해까지 가는 버스는 끊겼기에 택시를 타고 남해로 가 서울행 마지막
버스를 타고 몇 일만에 집으로 가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한 기분이다
갑자기 많이 걸은 것이 상당히 무리가 왔나보다
집에 가서도 고생 좀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미리부터 소염제를 먹기를 잘했다 싶었다
서울행 버스를 타고 내내 콜콜거리며 잠을 잤는데..
나말고 다른 손님 두 사람도 저만큼 뒤에서 계속 자는가보다
이제 겨울에서 나와 봄으로 막 들어섰으니 손님도 없는데다..
주중이었으니 버스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손님이 이렇게 없나 아무리 없어도 한 열명은 되는데..
아저씨는 약간 실망한 듯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는다
완죤 승용차로 서울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하 하 하 하 하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에 물집도 잡혀 절뚝거렸지만 섬진강에서 "나"를 찾은..
어느 봄날, 섬진강이 내게 준 것은 상처만큼이나 가슴 떨린 바로 그것
"새로운 자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