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형.
가을입니다,
라고 또 다시 싱겁게 인사를 합니다.
‘싱겁게 인사를 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성의 없음의 다른 표현이거나,
아니면 형께 글재주 딸림을 달리 눙칠 방법이 없어
이렇게 어정쩡하게 대충 때우려 함을 이미 눈치 채셨겠지요.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리겠습니다만.)
하지만 어쩝니까?
도저히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것 같지가 않은,
먼셀 넘버 N7.5 정도의 색감을 지니고 그렇게 잿빛으로 흐려 있는 하늘은
그것만 올려다봐가지고선 도저히 계절감을 느끼게 만들질 않던데요, 뭘.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X형.
가수 김광석이를 좋아하세요?
참, 앞에 ‘요절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나요?
저 흐린 하늘을 보며 가을이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도리질할 때
문득 생각났던 가숩니다. 그리고 그의 이 노래도요.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런가요?
비록 가을은 아직 가슴에 오지 않고 괜스레 ‘가을’만 타고 있다지만
저 흐린 하늘이 있어 가을인가요.
저 흐린 하늘에 편지를 쓸 수 있어, 그래서 가을일는지요.
하여 나는
고작 여기 이 네모 상자에 글을 써 넣고 있을 뿐이면서도
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는지요.
X형.
얼마 전 영화 채널에서 <쇼생크 탈출>을 보았습니다.
(식사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편식증세을 보이는 내게 있어
몇 번째 보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정도의 흡인력을
이 영화는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흡인력이란 게
내가 흑인 죄수로 나오는 모간 프리만의 準팬이기도 하지만
법정/수사극과 탈출 드라마를 즐기는,
바뀌지 않는 내 ‘영화에 대한 식성’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시다시피 수사와 탈출은 서로 대립되는 이분법 구조입니다.
잡아 넣는 자와 잡혔다가 도망치는 자.
법을 집행하는 자와 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자.
정의를 구현하는 자와 정의의 틀을 깨는 자.
이 양쪽 중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이 다 즐기는 내 식성에 맞게
자알 차려진 밥상입니다, 이 영화는요.
레드로 나오는 모간 프리만이 말합니다.
“여기선 어느 듯 인생은 사라지고 없고
인생에 대해 생각할 시간만 남게 되는 거지.“
그렇습니까?
인생을 감옥이라는 이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도 대충은 통용될 수 있는
그런 말이겠습니까?
새삼 세월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계절에 대해서도요.
레드의 말에 약간은 귀를 기울일 만 한 그런 세월이고 그런 계절이지요.
하지만,
인생은 나그네길... 개똥 철학자 폼새 잡으며 ‘멜랑꼬리’해져 있기엔
이 세월이, 그리고 이 가을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 거 같던데요?
위의 ‘인생’을 ‘사랑’으로 도치시키면 또 어떻구요, X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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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저들이 거부하든 말든, 그리고 나 같은 이야 인정하든 말든
가을은 이미 우리 앞에 범선의 돛처럼 그렇게 활짝 펼쳐져 있습니다.
‘月出現郞 달 뜨자 님 오고
葉洛酌酎 잎 떨어지니 진한 술 따르네‘
(漢詩 패러디)
창을 한 번 열어 보시지요, X형.
어떻습니까?
달은 떴습니까?
진한 술 한 잔은 앞에 따뤄져 있나요?
그리고,
님은..낙엽 사각이며 형께 오고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