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예능을 점령한 아빠 코드가 이제 극장가로 옮겨간 모양입니다.
핵가족 시대에 위축된 가장의 존재감, 직장과 주류 사회를 떠나 은퇴를 앞둔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떠올려지는 일련의 작품들에는 가슴 찡한 부성애와
함께 아버지의 자존감 세우기가 엿보입니다. 사실, 외로워서 영화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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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경구는 아들이 있고, 어머니가 있는 가장이었는데 극단에서 무명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린 친구들한테 계속 배역을 뺏기고 후배랑 같이 포스터
벽보나 붙이고 다니는 꼴이 우습습니다. 주인공의 직장인 극단에서는 “리어왕“을
하는데 배우 하나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제게도 배역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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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는 이해준 감독의 작품인데 겉보기에는 이념문제를 다루는 시대극이거나
가족 영화 같지만 어쩌면 “가족에게 권력을 이양한 리어왕이 그 뒤 측근들의
음모에 따른 처절한 배신감을 겪다가 반 치매 상태에 빠져 죽는 내용을 프레임으로
전체 플롯을 전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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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맥베스, 햄릿, 오셀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립니다.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 왕은 나이가
들자 세 딸에게 효심 고백 대결을 시켜 왕국을 나눠주고 자신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합니다. 가장 멋진 고백을 할 것이라 예상했던 막내 딸 코델리아는 아무 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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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의 기대를 져 벼렸고, 가장 감동적으로 효심 고백을 한 두 딸인 고너릴과 리건은
아버지를 배신하게 되는데요. 그 충격으로 리어왕은 왕의 권위와 자녀 등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매몰차게 내쫓았던 막내딸
코델리아와 재회 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지만, 이내 막내딸의 주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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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하며 리어왕 역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비극을
이야기한 작품입니다. 영화 나의 독재자는 “연극배우”, “독재자”, “아버지”라는 주제를
통해 개인의 문제부터 가정, 국가, 이념과 이데올로기 문제 등 인문학 전반을 통찰하게
만듭니다. 남북공동성명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정상의 리허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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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명의 연극배우 아빠가 가상의 김일성을 맡게 되면서 고문과 폭압을 견뎌내며
목숨을 내건 가장 위대한 연극을 펼칩니다. 자신의 꿈과 편안함을 뒤로 하고 경제개발과
고속 성장에 헌신했던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헌사처럼 다가오고 아버지 세대에
작은 위로를 전하고 있는데, 아버지를 통해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태식(박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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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에 쫓겨 분당 신도시 재개발로 알 박기 자리에 놓인 옛집을 팔아 치우기 위해
그를 해바라기 하는 여정(류 혜영)과 함께 20년 간 박제화 된 김일성으로 살아 온
아버지 성근(설 경구)을 요양원에서 모셔오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려냅니다.
연극 '리어왕' 무대를 등장시키며 연기에 대한 진정성에 질문을 던지는 아버지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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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은 깊은 울림을 전하고, 20년이란 시간 사이로 무대 트라우마를 극복기해 나가는
아버지의 연기 인생에서 광기의 독백을 소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면 따스한
가족애와 가슴 절절한 부성애가 느껴집니다. 극중 몸을 불리기 위해 짜장면을 먹는
신이나 완벽히 김일성으로 거듭난 배우 설경구의 메소드 연기는 가히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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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경구 주연의 영화 “실미도”의 배경과 “나의 아버지“의 7.4 공동 성명의 배경이
비슷합니다. 김일성 역의 설 경구나 오 실장 역의 윤제문은 김윤식 못지않은 악동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서 제가 좋아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아!, 존재감 너로 인해 우는 가슴을 부등켜 안고서.
2014.11.3.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