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12월 7일
우주선 아폴로 17호 발사
1972년 NASA 즉 미항공우주국 연구
원들이 우주선 아폴로 17호를 발사하기
위해 발사계획을 최종적으로 검토한다.
1972년 오늘! 아폴로
우주선 가운데 마지막 우주선인
아폴로 17호가 달 탐사를 위해 발사된다.
해리슨 슈미트를 비롯해 세 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7호는 우주선
발사 역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발사됐다.
세 명의 조종사는 75시간동안 달탐사 작업을
성공리에 마치고 12월 9일 무사히 지구 로
귀환했다
▶2009년세계 최초의 상업용 민간
우주 관광선 공개 - 모선 화이트나이트2 와 상용우주선 스페이스십2
영국의 버진갤럭틱 우주항공사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민간
우주 관광선 ‘스페이스 십 2’를 공개했다. 20만 달러(약 2억3000만원)를
내면 누구나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스페이스십2.
▶2008년봉산탈춤 보유자 양소운씨 별세
▶2007년서해 기름 유출 사고
기름 유출 사고 현장 만리포 주변.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 30분께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항해중이던 홍콩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 ‘헤베이 스프리트’ 와 모 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1만1천800t급 부선이 충돌하면서 유조선 왼쪽 오일탱크 3개에 구멍이 나 1만5천t의 원유가 해양으로 유출됐다.
이번 사고로 인한 원유 유출량은 국내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였던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원유와 연료유 5천35t이 유출됐던 것과 비교하면 3배 규모다. 당초 이번 사고는 인천대교 공사작업을 마친 해상크레인을 2척의 바지선을 이용, 경남 거제로 예인하던 중 한 척의 바지선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중심을 잃고 유조선과 충돌,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 파노라마] 서해 기름 유출 사고
▶2000년2차대전때부터 작전에 참가
했던 미국 전함 USS위스콘신호 퇴역
▶2000년2000년 일본군 성 노예전범
국제법정, 일본에서 개막
▶1999년초기백제 유일한 문자기록
풍납토성 토기에서 발굴
‘대부’ 등의 글자가 새겨진
토기 조각이 발굴됐을 당시 모습
▶1999년묘지법 개정안 통과
▶1998년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정
-재계 간담회서 5대 재벌 구조조정 합의
▶1995년수도권신공항고속도로 착공
▶1995년갈릴레오호, 최초로 목성탐사
성공
1995년 12월 7일 목성탐사를
시작한 갈릴레이호의 상상도
▶1994년정부,삼성그룹의 승용차산업
신규진출을 허용키로 발표
▶1994년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현장 사진 [위키피디아]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 애오개역 4번 출구 방향에 있던 도시가스 밸브스테이션에서 공사중 일어난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여 그 주변을 2시간이나 태웠다.
첫 폭발시에는 주변 상가와 집은 불에 타고 있어도 주변 피해가 없었다. 문제는 가스가 계속 누출되면서 불길이 계속 번진 데 있었다. 그 화재로 마포도서관(아현분관)에서 마포경찰서까지 소방차와 구급차로 막혀버리고 당연히 공덕오거리(공덕역)에서 아현삼거리(아현역)까지 교통은 통제 되었다. 대우전자 사옥은 유리창이 전부 파손되어 지나가던 보행자를 덮치고, 그 일대 가스와 전기가 차단되는 등 많은 불편이 있었다.
안전불감증으로 빚어진 이 사고는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를 남겼다. 이 사고로 사망자가 12명, 부상자 101명 등의 인명피해와 건물 145동(전파 75, 부분파손 70), 동산 431건, 영업손실 47점, 차량손실 92대 등의 물적 피해 및 이재민 210세대 555명 등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 사고 당일 부터 3일간은 야간 전기공급이 끊겼으며 가스공급 재개는 10일이 걸렸다. 당시엔 아현~공덕 일대에는 아파트가 없었다지만 달동네 수준의 인구밀집지역이라 인적, 물적피해가 컸다.
이 사고를 계기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전산화가 시급하여 1995년부터 GIS가 탄생하는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1년미국NBC, 소련 러시아
방송국(RTR)과 방송협정 체결
▶1990년소콜로프, 초대
한국주재대사로 부임
▶1989년라디슬라브 아다메치
체코슬로바키아 총리 사임
▶1988년아르메니아 스피타크
대지진으로 2만5천명 사망
▶1987년고르바초프, 1973년이래
소련 지도자로선 첫 미국 공식방문
▶1984년여성산악인 김영자,
안나푸르나봉(해발 8,091m) 정복
안나푸르나1봉 등정에 성공하고
1984년 12월 26일 김포공항에
입국한 등반대장 김영자씨.
▶1983년스페인서 두 여객기 충돌,
93명 사망 23명 중상
▶1982년미국 하원 MX미사일
생산계획 부결
▶1980년미국-중국간 민간항로 31년
만에 재개
▶1978년사상 최초로 남빙양에 어로 출항
▶1978년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수상에 당선
▶1976년작곡가 정율성 작고
▶1975년포드 미국대통령
신태평양독트린 발표
▶1971년파키스탄 인도와 단교
▶1970년서독-폴란드,
바르샤바 조약 조인
바르샤바 조약에 조인하고 있는 양국가 대표들
▶1970년청와대에 특별보좌관실 신설
▶1970년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폴란드에 사죄
독일 대통령,총리 사과 유대인 6백만명 추가 개별 보상
https://m.blog.naver.com/saskian/40195635822
http://naver.me/xsFSVu6T
독일 대통령,총리 사과 유대인 6백만명 추가 개별 보상
▶1968년정부, 유엔에서의 한국문제
연례자동상정을 재량상정으로 변경
▶1965년로마교황과 그리스정교회
총주교 911년만에 화해
▶1964년한-독 경제협정 체결
▶1964년박정희 대통령 서독 방문
▶1963년최고회의, 새 정부기구를 확정
(1원13부3처5청, 부총리제 신설)
▶1961년10개 사범학교
교육대학으로 승격
▶1956년유엔총회 한국재건원조
결의안 채택
▶1954년볼리비아 대표 유엔총회서
남북한연방제 구성 제의
▶1953년유엔총회 강제노동폐지에
관한 결의안 가결
▶1950년유엔 정치위,
한국서 중국군철수 결의안 가결
▶1949년자유중국 수도를
성도로부터 대만의 대북으로 이전
▶1949년세계자유노동조합연맹 발족
▶1948년소련, 북한서 완천철수 발표
▶1941년일본, 진주만 기습공격
1941년 11월 26일 오후6시. 일본 북단 미나미치시마 에토로프섬 히토카프만에서 일단의 함대가 하와이를 향해 동진하기 시작했다. 항공모함 6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9척, 잠수함 3척에 전투기 등 비행기 423대로 편성된 최정예 기동부대였다. 한편에선 미일 교섭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국-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의 철수를 요구하며 석유 등 주요물자의 무역 봉쇄를 강행한 미국과, 기득권을 주장하는 일본 사이엔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마침내 일본 어전회의는 12월 1일 미국에 대한 개전을 결정했다. 태평양을 항해하던 기동대는 다음날 저녁 예정대로 12월 8일(일본시간) 미국 태평양함대 본거지인 진주만 공격을 결행하라는 암호를 수신했다.
호놀룰루 시간 7일 오전 6시. 오아후섬 북서 25km지점에 결집해 있던 6척의 일본 항공모함에서 183대의 폭격기 전투기 등이 발진했다. 1시간 15분후엔 다시 167대의 비행기가 남쪽 진주만을 향했다. 오전 7시45분. 일요일 느지막한 잠에 빠져있거나 식사를 하던 미국 병사들은 요란한 폭음에 혼비백산이 됐다. 불과 2시간에 걸친 무차별 폭격으로 정박중이던 8척의 전함과 순양함 8척, 유조함 2척, 비행기 188대 등 주요 장비가 속수무책으로 파손됐다. 일본측 피해는 전투기 29대, 특수잠수정 5척, 전사자 64명에 불과했다. 여세를 몰아 일본은 10일 말레이 해전에서 영국 최강의 전함 웨일스 오브 프린스호를 격침시키고 필리핀 루손섬, 괌을 점령했다.
도라(호랑이) 도라 도라’
1941년 12월7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 도착한 일본 전투기들은 작전성공을 알리는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외치며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평온하던 진주만은 일본의 기습공격에 불바다가 됐다.
대부분의 전함은 뇌격ㆍ폭격당해 격침됐다. 그 안에 있던 수병들은 높은 수압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해 질식사했다. 일본의 기습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울고 싶던 미국의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미국으로서는 2차 세계대전 참전의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의 U보트가 대서양에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군용선뿐 아니라 민간인 선박까지 무차별 공격해 속이 상하던 차였다.
미국은 전쟁에 참여하더라도 사정권 밖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본토에 피해가 갈 가능성도 적었다. 전쟁물자만 열심히 만들어 팔면 됐다.
엄청난 자원과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이 전쟁은 미국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쟁 후에는 전쟁보상금뿐 아니라 연합군에 대준 전쟁물자 대금 회수도 가능하고 독일의 과학자를 데려다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의 침략을 응징하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호소는 미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질렀다. 전쟁통에 군수물자를 만들기 위해 일자리가 많이 생겼고 국내 경제는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방치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한다.
아무튼 일본의 대륙 침략에 따른 미국의 고철과 석유수출 금지 등 대일압박을 풀기 위한 협상에서 기선을 제압하려 감행했던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혹 떼려다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영화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https://tv.kakao.com/v/v391fCZdGCCxTnG87CII8zY@my
▶1928년미국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 출생
미국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 )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에서출생 ~그는 미국의 외교 전략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미국의 힘과 새로운 관료들
(American Powea and the New Mandarins)〉(1969)·
〈인권의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 of Human Rights)〉
(2권, 1979)·〈새로운 냉전을 위하여(Towards a New Cold War)〉(1982), (1996)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경제 문제에 관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많은 책과 글을 썼다.
▶1928년조선공산당 해체
▶1917년러시아 체카(KGB 전신) 설립
▶1889년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 출생
▶1884년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선생 출생
▶1842년영국 소년 이글리,
크리스마스카드 창안
▶1817년‘바운티호’ 의 선장, 윌리엄
블라이 사망43년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 암살
https://youtu.be/MjWiMYr6XDA
https://youtu.be/whubNEBl8xI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