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는 벽을 둘러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은 칠월 첫째 일요일 새벽이었다. 며칠 간 장맛비가 지속 될 거라는 예보라 날씨가 궁금했다. 어둠 속에 베란다 창 밖에는 비는 오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검색하니 새벽 현재 시각 비가 오지 않아도 아침나절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예상되었다. 비가 오면 실내에서 보낼 시간이 갑갑할 듯했다. 비가 그리 많이 오지 않으면 우중 산책이라도 나설 생각이었다.
어둠이 가시길 기다려 아파트 뜰을 나서니 웃비는 오지 않았다. 애초엔 집 앞에서 105번을 타고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려 했다. 날이 밝아오는 즈음 주남저수지 둑을 걸어볼까 싶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하늘에 비구름이 적어 산행을 감행해도 될 듯했다. 하여 집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101번을 탔다. 창원대학 앞을 지나 법원을 거쳐 대방동으로 향했다. 대암고 근처에서 내렸다.
25호 대체 국도 대방동 나들목 등산로 입구 계곡은 밤새 내린 장맛비로 층층 폭포가 쏟아졌다. 평소 그 계곡은 건천이라서 집중호우가 내린 뒤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경관이었다. 화산지형 제주에서 장마철 볼 수 있는 몇몇 폭포와 같았다. 나는 대암산으로 오르지 않고 성주동 아파트단지 뒷길로 돌아갔다. 내보다 더 부지런히 새벽 산책 산행을 끝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아파트단지를 돌아 임도로 들었다. 임도 들머리 정자엔 아침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쉬지를 않았다. 나는 근래 산행을 하면서 텅 빈 정자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벌써 오늘 산행에서 다섯 번째로 남긴다. 그 사연인즉 밀양의 한 지인은 텃밭에 원두막을 세우면서 경비를 좀 들인다고 했다. 나는 그럴 것 없이 장마철 산행객이 드물 때 산에 들면 그 정도 원두막은 여러 개 만난다고 했다.
장맛비가 잠시 주춤한 사이 성주동 일대 사람들은 더러 용제봉으로 향했다. 들머리는 한 곳이라도 산속에 들면 여러 갈래다. 상점령 이정표에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이전 어느 지점에서 수준별 등산을 끝내고 먼저 나가도 누가 간섭할 사람 없다. 갈림길에서 상점령으로 가거나 불모산 숲속 나들이 길로 가도 되고, 아예 멀리감치 불모산을 거쳐 시루봉까지 가도 된다.
아까 평바위를 거쳐 올 때부터 용제봉 일대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가 요란했다. 창원에서 장유로 넘나드는 창원터널 입구가 용제봉에서 흘러내린 계곡이다. 그 계곡물이 모여든 곳이 불모산동저수지다. 지금은 불모산동저수지는 농업용수 기능을 잃고 근린공원 호수정도 구실을 한다. 장맛비 사이에 용제봉 기슭으로 들면 가야산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 못하지 않은 장관이다.
천 삼백년 전 최치원은 저 물소리가 속세에서 옳거니 그러거니 따지는 소리를 막아준다고 했다. 이제와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보니 창원터널로 넘나드는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막아주었다. 산속에 드니 계곡물은 콸콸 넘치도록 흘렀다. 계곡물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렀다. 쏟아지는 물줄기는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해 내달렸다.
임도 갈림길에서 상점으로 향하지 않고 용제봉 기슭으로 올랐다. 일부 산행객은 그즈음서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우거진 숲속에서 골짜기로 더 들어갔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줄기는 계속 이어졌다. 가까이 물소리가 들려오는 쉼터에 잠시 앉았다. 새벽부터 워낙 일찍 나선지라 평소 같으면 이제 출근 시각에 해당했다. 물소리를 들으며 무념무상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등산로를 벗어난 숲속 어디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선 영지가 돋아났다, 뾰족한 자루에 노란 갓을 펼쳐갔다. 아기 손바닥 크기 영지를 하나 캐고 나머지는 더 자라도록 두었다. 인적 드문 숲속을 소요하다가 골짜기를 내려섰다. 그 어디쯤 역시 삭은 참나무 등걸에서 목이버섯이 자랐다. 장마철 고사목에 붙는 목이였다. 목이버섯을 한 줌 뜯었다. 비가 더 내리기 전 하산을 서둘렀다. 1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