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브에 의하면 천산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托木尔峰棘豆인데, 이것을 줄여서 托木尔峰이라고 한다.
높이는 7,439m. 이 이름이 ‘铁山’을 의미하는 위 구르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托木尔峰棘豆를 (고) 조선 어로 읽으면
‘다 모이 보거두→ 다 모이 보그드→ 다 모이 보겠다’라는 말이 된다.
이 산에, 옛 한국말을 사용하는 어떤 사람들이,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누구의 눈에도 뛰지 않을 곳을 찾아서, 도대체 누가, 모이겠다고 했던가?
이런 의문은 托木尔峰棘豆를 알파벳으로
“Oxytropis chantengriensis”이라고 표기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오시떠노 삐써, 칸 댕그리어시써’
여러분을 위하여 더 자세히 밝히면
‘오시떠노 (라고, 말해) 카며 댕기시었어’라는 말이 되니, 더욱 의문이 증폭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댕그리’라는 말을 모르다 보니까, ‘댕그리’를 자꾸 ‘단군’이라고 보는 이가 있더군요. ‘댕그리’는 ‘댕기리’ 즉 여기저기 다닌다는 말입니다.
지상 최고봉, 그것도 얼음으로 덮혀있던 깊은 산맥 사이를 어떻게 다녔다는 것일까?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나중에 崑崙, 坤命, 이라는 곳도 생겼는데, 喀喇昆仑 산맥이, “객나곤륜” 즉 ‘깨나고유’라는 말이므로 “곤륜, 곤명”이라는 도시 이름도 원래는 ‘(깨나)고유’ ‘(깨나)고며’라는 말을 줄여서 한 이름이라고 본다. 이렇게 백성들을 깨우쳐 가며 지금의 중국 땅에 (고)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비는 托木尔峰棘豆가 우리네 阿思達이라고 본다.
이렇게 은밀하게 오셨으므로 天山이나 铁山이라고 하는 것도, (고) 조선 말로서 ‘처사→ 처시어’ 즉 산을 둘러 처시어 외부의 눈길을 차단했다는 뜻이다.
기원전 6000~ 7000년 경에 이미 stealth 기술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阿思達이란?
‘아사다→ 와시어따→ 오시었다’라는 말이므로 제일 처음, 우리네 선조님이 오셨던곳, 托木尔峰棘豆가 곧 阿思達이라고 본다.
이제사 檀君王儉의 뜻을 물어보면 ‘타구 왕거’ 즉, 무엇인가 ‘타구 온 사람’인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 이런 분을 중국인 따위가 감히, 훼손하다니, 저거가 이 분이 세운 나라를 지우고, 하, 은, 주라는, 그것도 먼저 세웠다고, 주접을 떨고 있으니, 하루빨리 우리 역사를 제자리로 되돌려 놔야겠다.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분이나 저나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더 이상의 증거는 없고, 역사는 증거로 말해야 하니까.
카자흐스탄은 天山과 접하고 있으며 과거, 원나라 징기스칸의 장남, 주치(Juchi ; (다리 밑에서) ‘주었지’라는 말로서, 그는 혼외 자식이었다)가 차지한 킵차크 한국이 있던 곳이다. 그런만큼, 이곳에 단군신화가 전해져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거듭 밝히지만 “Qipchaq(钦察) 汗國”이라는 말은, 꼴보기 싫은 큰 아들 ‘주치’를 ‘흐차’ 즉 멀리 ‘흩어, [주치(가 차지)] 하구’라는 말이다. 결코 나라 이름이 아니다. 나라로 보면 징기스칸이 그의 아들 손자와 동격이 되므로, 징기스칸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아울러 원나라가 우리말을 사용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징기스칸은 成吉思汗 즉, ‘서기사한→ 서깃 카는→ 쓰기 카는→ 쓰기 칸’이라는 말인데, 기록할 일이 있어서 그의 부하를 찾는 말이었다. 이것을 나중에 중국말로 바꾼 것이 징기스칸이다.
사실 우리 역사학계는 아사달이나 단군왕검의 뜻도 모르고 오늘까지 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단군왕검이 왕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成吉思汗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고) 조선 글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라고 지적하고 싶지는 않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스스로를 ‘주스’라고 한다는데, 이 ‘주스’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朝鮮은 ‘조써’라고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씀이다. ‘주스’도 ‘주셨다’는 말씀이다. 결국 ‘조써’나 ‘주써’나 같은 말이다. 결국 이 일대가 (고) 조선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나라가 ‘조선’이라고 칭한다는 말이 된다. 모르고 하는 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이만큼 썼으니 어지간히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