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경전반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 축하 법문을 하고 한 해 동안 경전반 교실 운영을 위해 봉사해 준 담당자들을 격려했습니다.
작년 가을 경전반에 입학하여 오늘 졸업하는 학생은 총 841명입니다. 그중 647명이 졸업식에 참가했습니다. 졸업식이 열린 충주 호암체육관으로 들어서는 졸업생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먼저 정토회 대표 김은숙 님이 선배이자 도반으로서 애정을 담아 축사를 했습니다.
“2017년 불교대학에 입학한 사람 중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작년 가을 경전반에 입학해서 오늘 졸업하는 사람의 비율은 24%입니다. 100명이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24명 정도만 이 자리에서 졸업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한 분 한 분이 정말 귀하고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졸업은 마음공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저는 지치고 힘들 때 수행 법회를 통해 관점을 잡고 도반과 나누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신나는 자원활동가의 길 위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발원해봅니다. 여러분과 함께 해주신 담당자들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졸업생들은 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불렀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노랫소리가 되어 체육관을 가득 메웠습니다.
다음으로 졸업장을 수여했습니다. 모든 졸업생이 지부 상임 법사님들로부터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스님과 악수를 했습니다. 졸업장을 건네받은 졸업생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6백여 명이 모두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박수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리로 돌아온 졸업생들은 동기들과 함께 졸업장을 안고 함빡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상장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석한 개근상 수상자가 전국에서 10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정근상 수상자는 60여 명이었습니다.
졸업장과 상장 수여식을 마치고 스님이 졸업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졸업을 축하하고 경전반 졸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괴롭히는 인생, 구걸하는 인생에서 졸업하기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에게 못 따라오는 기능이 ‘자각’입니다. 불교의 최고 가르침이 바로 ‘자각’입니다. 그래서 미래 사회로 갈수록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에 대해 공부하는 곳이 바로 정토 경전반입니다.
물론 교리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은 첫째, ‘내가 좀 더 편안해졌는가’입니다. 둘째,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입니다. 자신의 행동거지를 한 번 체크해 보세요. 행사가 끝나고 의자를 바로 놓는 사람에 속하는지, 의자를 통로에 걸쳐놓고 가는 사람에 속하는지, 사람이 지나갈 때 길을 막는 사람에 속하는지, 이렇게 쭈욱 체크를 해보세요. 여러분 밥 먹을 때 돌아다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자리를 깔고 밥을 먹습니까?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길을 비워놓고 자리를 깔아야죠.
‘사람들이 다녀야 하니까 길 옆에 자리를 깔자’
이게 자각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주위를 살피지 않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 자기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실내에서는 밥을 먹지 마세요’라고 공지하면 밖에 나가서 먹어야 하는데, ‘괜찮아’ 하면서 그냥 실내에서 먹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남을 배려하는 것은 수행자의 기본자세입니다.
집에서도 자기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주로 남편이나 아내에게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가족들을 위해 어떤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인지, 어떤 쪽에 속하는지 살펴보세요. 그러면 ‘아, 내가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의 길이 아니라 ‘도와주세요’ 하고 구걸하는 중생의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경전반을 졸업하면서 구걸하는 인생을 졸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어요?”
“네!”
“첫째,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인생을 졸업해야 합니다. 이런 인생을 졸업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졸업입니다. 둘째, 남한테 뭐 해달라고 하는 구걸하는 인생을 졸업해야 합니다. 껌을 하나 주더라도 늘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일결사의 목표 1번에 나와 있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라는 구절입니다. 이웃이라는 말이 꼭 담 넘어 이웃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남편도 돕고, 아내도 도와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도움을 안 받고 살 수는 없어요. 저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할분담을 해서 분업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뭐든지 남의 도움을 받을 것을 좋아하는 태도를 가지면, 결국 구걸하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 내가 행복한가. 괴로움이 없는가. 미움이 없는가. 둘째, 남에게 도와달라고 껄떡거리고 사는가. 내가 조금이라도 남을 돕고 사는가.
이걸 잊지 않고 간직한다면 여러분은 경전반을 졸업할 자격이 있습니다. 금강경의 핵심 사상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의 마음을 내고는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마음을 내라.’ ‘구제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생겨서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걸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뜻입니다.
첫째, 내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어라. 둘째,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셋째, 남을 도울 때 ‘내가 누구를 돕는다’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그러면 내가 괴로워지느니라.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섭섭함이 생깁니다. ‘내가 너를 도와줬는데’ 이렇게 되기 때문에 다시 첫 번째로 말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될 수가 없게 돼요.
그동안 배운 경전의 내용을 그냥 하나의 얘기 거리로만 삼지 말았으면 해요. ‘금강경에 무슨 내용이 있다’, ‘금강경 사구게가 뭐다’ 이런 내용을 외워서 학자들처럼 돈을 벌려고 경전반에 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런 내용을 실제 내 삶 속에서 경험하기 위해서 경전반에 다니는 겁니다.
부처님을 추앙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분이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수많은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했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수행자로서도, 아무리 못해도 괴로움이 줄어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뚝이처럼 흔들리더라도 늘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없는 게 숫제 나은 사람이 되면 안 되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자기를 점검하면서 살아간다면 경전반을 졸업했다고 할 만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모두 박수)
이렇게 오전 행사를 모두 마친 후 점심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반 졸업생들은 체육관 외부에서 동기들과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누어먹었습니다. 오전에 들었던 스님의 법문이 마음에 남았던지 졸업생들은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자리를 잡았습니다. 날씨도 화창하고, 사람들의 표정도 맑았습니다.
오후 행사는 졸업생들의 자축 공연으로 흥겹게 시작했습니다. 먼저 대전 정토회 대전 법당에서 채정안의 ‘편지’에 맞춰 신나는 춤을 선보였습니다. 노랫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다 보니 식곤증으로 나른해지던 몸이 깨어났습니다.
안양 정토회 지역 법당들이 함께 모여 준비한 ‘한 해를 돌아보며’라는 촌극도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짧은 촌극 속에 지난 경전반 1년을 재미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졸업생들은 공감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몸을 푼 후 스님에게 경전반을 졸업하면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법문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수행자로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어서 졸업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7명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우울증이 있는 자식의 상태에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는 엄마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제 마음도 괴로워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이야기는 자꾸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내가 바라는 기대만 갖고 이야기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항상 사실에 입각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결혼해서 아기 놓고 살 때 경제적으로 좀 쪼들린다고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함으로 해서 아이의 정신 형성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 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아이를 팽개치고 남편에게 악심을 품었던 것으로 인해 우리 아이가 지금 어려움을 갖게 되었구나’ 이렇게 지금 알게 된 거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죄인이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사실에 기반을 두는 게 아니고 또다시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겁니다.
내가 잘했든 잘못했든, 이런 일이 생겼든 저런 일이 생겼든, 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든, 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졌든, 이게 핵심이 아니에요.
‘현재 아이가 다쳤다’
이게 핵심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는 겁니다. 지금 아이가 어떻게 해서 이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인가, 이건 의사가 분석할 일이고, 질문자는 지금 아이가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을 하는 게 중요해요.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지금 질문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현실에 기초를 둬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병은 금방 낫지 않아요. 느긋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빨리 완치가 되면 좋겠지만, 이런 병은 완치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요.
‘현재 이 상태에서도 우리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눈이 안 보여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귀가 안 들려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말을 못 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팔이 없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다리가 없어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겁니다.
자꾸 건강한 아이를 기준에 두고 ‘우리 아이가 빨리 나았으면’ 이렇게 자꾸 생각하면, 이것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는 것과 똑같아요.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부자가 되면 행복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조건부 행복밖에 누릴 수 없어요. 부자가 되면 행복하고, 부자가 안 되면 행복할 수 없게 되니까요. 우리 아이는 건강한 아이에 비해서는 부족한 게 맞지만, 눈이 안 보이는 아이와 비교하면 그보다는 나아요. 말 못 하는 아이와 비교하면 그보다는 나아요. 지체부자유 아이와 비교하면 우리 아이는 월등하게 괜찮은 겁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이 아이를 둔 나도 지금 바로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 아이가 빨리 정상적인 아이가 되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그건 환자가 일으키는 하나의 증상에 불과한 거예요. 아이가 난동을 피운다고 보지 말고 ‘발병을 했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발병의 정도가 약하면 내가 가서 가라앉혀주는 역할을 하면 되고, 발병의 정도가 심해서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때는 병원에 전화해서 ‘아이가 발작을 심하게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면 돼요. 아이가 발병을 했다고 놀랄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의 모든 괴로움은 현실을 현실대로 안 받아들이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지 아이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성질을 버럭버럭 내는 것도 그게 남편의 현실입니다. ‘남편이 버럭버럭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망상이지 현실이 아니에요. 망상을 계속하면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화를 버럭버럭 내는 남편의 모습을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지 말고, 그냥 사실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면 ‘또 발작을 하는구나’ 이렇게 보면 돼요.
그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남편이 발작을 할 때는 살짝 문을 닫고 나가 있다가 다시 들어오면 됩니다. 그러면 자기 풀에 자기가 죽어서 가라앉아 있어요. 좀 더 빨리 가라앉게 하고 싶으면, 남편을 꼭 껴안아주면 돼요. 그런데 건드리니까 발작을 더 한다면, 안 건드리면 돼요. 일어난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렇게 접근하면 됩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지지 마세요. 일단 ‘아이는 정신적으로 아픈 환자이다. 이 병은 쉽게 치유되기는 어렵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해요.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고 해서 절망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는 것을 앎으로 해서 조급함을 없애라는 겁니다. 이 병이 나으면 다행이지만, 낫지 않아도 이 아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가끔 아이가 발작을 하면 ‘이 병은 가끔 발작을 하는 증상이 있구나’ 하고 알고, ‘그럴 때는 내가 이렇게 대응하면 되겠구나’ 하고 그 요령을 숙지하고 있으면 돼요. 조금 심하게 발작을 할 때는 의사의 도움을 받으면 되고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렇게 할 수준이 안 되니까 자꾸 아이의 발작에 말려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해야 해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드린 기도문이 중요한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항상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그래야 질문자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래는 100이 일어나야 하는데, 50밖에 안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좋은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해요. 홍수가 나서 강을 못 건너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가슴까지만 물이 차고 강을 건널 수 있었다면, ‘비가 많이 와서 강에 빠져 죽을 뻔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못 건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건널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사물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자각해 보세요.
‘첫째, 우리 아들은 환자입니다.’
‘둘째,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울먹이며 질문하던 질문자는 눈물기가 마른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포살을 하려고 하면 지난 두 달 동안 있었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으킨 생각도 참회해야 하나요, 행동만 참회하면 되나요?
스님께서는 해외 순회강연도 하고 단식도 하고 주말에도 행사가 많은데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시나요? 피곤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직장 동료들이 험담을 하고 엉뚱한 걸로 트집을 잡고 따돌려요.
경전반 수업 중에 ‘본성을 알아차리라’고 들었는데 ‘본래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씀과 상충하는 것 아닌가요?
병으로 시력을 읽은 시어머니와 치매 초기인 시아버지를 모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면서 시어머니를 근처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어 합니다.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으세요.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마음 편하게 해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에서 전문상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꿈이 중요한데 스님은 꿈에 대해 도외시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워요.
스님은 마지막으로 수행이 무엇인지 강조하며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방금 전에 질문자가 ‘아이가 어릴 때 잘 돌보지 못해서 아이에게 정신질환이 생겼다’라고 질문을 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서 질문자를 치료하려는 건 학문입니다. 수행은 이유가 어떻든 이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이가 환자가 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질문자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아이가 환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계속 괴롭습니다. 아이가 환자라는 사실만 늘 자각할 수 있으면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나는 번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어요.
‘아, 우리 아이는 환자이지. 또 발병했구나. 어떻게 치료하지?’ 하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내가 도울 수 없는 상황이면 의사 선생님한테 연락을 하면 돼요. 이렇게 하면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아이가 왜 환자가 되었는지 연유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수행자는 항상 ‘어, 또 발병하네’, ‘어, 정신을 차려야지’ 이렇게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심리 상담에서는 그 원인을 분석해서 어릴 때로 돌아가서 토닥여주고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알아차림이라는 것은 ‘어, 환자다’, ‘어, 발병했다’ 이렇게 자각하는 거예요.
인생을 살다 보면 온갖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늘 아침에 졸업식에 가려는데 비가 내려요. 여러분이라면 어떡할래요? ‘왜 하필 오늘 비가 내리느냐?’, ‘어제 너는 왜 일기예보를 제대로 안 봤냐?’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미 다 지나간 얘기에 불과합니다. 누가 잘했든 못했든 지금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나중에 따지고, 지금 비가 오고 있다면 일단 우산을 챙겨야 하는 겁니다.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요.
수행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기반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수행은 실천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런 관점만 딱 갖고 있으면, 몸이 좀 힘들 수는 있어도 마음이 괴로울 일은 없어요. 항상 사실에 기반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에 서 있으시길 바랍니다.”
법문을 마치고 서대문정토회 은평법당 황은선 님이 축하공연을 해주었습니다. ‘열정’과 ‘정토해’ 두곡을 불러주었습니다. ‘정토해’는 한잔해라는 곡을 정토행자의 수행에 대한 내용으로 개사해 다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될 때까지 수행하는 정토해!”
열정적인 무대에 이어서 1년간 수고한 경전반 담당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금 전 뜨거웠던 무대보다 더 큰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담당자들이 무대에 오르자 무대 아래에서 경전반 졸업생들이 담당자들을 위해 ‘장미’를 불러주었습니다. 졸업식 프로그램 중에 가장 아름답고 뭉클한 순간입니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한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수고한 담당자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며 격려했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졸업생들이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누르며 담당자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끝으로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부르며 제22기 정토 경전반 졸업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과 법사단 모두 무대로 올라와 집으로 돌아가는 졸업생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친 후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수련원에서는 6시부터 밤늦게까지 결사행자회의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결사행자들과 제10차 천일결사의 사업 방향에 대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내일은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한 수계식 및 졸업식이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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