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우리들의 집 ‘예술곳간 몽유’에서 보면 섬진강 건너 하동읍내 십 리 불빛이 보인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를 보고 백운산 광양에서 지리산 하동을 바라본다. 날마다 3분 거리의 도경계를 넘나들며 섬진강을 들여다보고 지리산을 올려다본다.
매실 밭 건너 가로등에 안개가 내리면 섬진교 건너 하동은 더 짙은 안개 속으로 숨는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렇게 때가 무르익어 가로등 불빛이 흐려지면 후다닥 카메라를 챙긴 뒤 더 짙은 안개와 구름 속의 산정에 오른다.
운무 속의 야생화를 만나고 안개와 구름 속에서 문득 흰 손을 내미는 지난날들의 사람과 수많은 추억들을 만나고 운무 속에 반쯤 지워지는 삼세三世의 나를 만난다.
모처럼 만난 산정의 털중나리도 해발 1,100m의 구름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최근 자서전을 낸 황모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대장부는 풍경에 현혹되지 않는다.
사람에게 현혹될 뿐’이라고 했다. 소설가다운 말이지만 넙죽 수긍할 수 없다.
자연에 깃들어 살면 소인배인가.
오히려 사람에 혹하면 소인배가 되고 자연에 혹하면 그 헛배 부른 대장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겸허함이라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중심일지 모르지만 아직도 대장부 운운하는 마초들, 대장부인 척 속정 얄팍한 소인배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일지도 모른다.
남녀불문 유명할수록 나서지 못해 안달을 하고 그 허세 또한 만만찮아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너무 분명하고 명쾌한 사람보다 차라리 좀 어리바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이른 아침 안개군단 찾으려 산으로 강으로…
오래전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낭만적인 시가 눈길을 끌었다.
이른 아침 안개군단 찾으려 산으로 강으로…
오래전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낭만적인 시가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개가 있었다.
어느 날은 선명하게 잘 보였다가 어느 날은 또 막막해지는 안개. 낮밤 기온차가 큰 봄가을이면 안개가 짙은 만큼 더 청청한 얼굴의 하늘을 볼 수 있다.
잘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리무중의 짙은 안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슬 한 방울 자취도 없이 투명해진 안개, 아침저녁 호시침침 범람하는 안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날마다 다른 농도의 안개가 포진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도사린 안개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곡해도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안개 한 줌 없다면 잠시 몸과 마음을 숨길 곳도 없어 늘 발가벗은 사람처럼 곤혹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의 안개군단을 찾아 산으로 강으로 쏘다녔다.
그리하여 이른 아침의 안개군단을 찾아 산으로 강으로 쏘다녔다.
아주 오랫동안 안개 속에 얼굴을 가린 것들을 사모했다.
구례 쪽에서 안개가 섬진강을 타고 내려오면 평사리 들판으로 달려갔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평사리 무딤이 들녘의 부부소나무를 바라보았다.
자운영이 필 무렵부터 모내기철이 시작될 때까지, 그리고 다시 볏잎 푸른 여름과 황금빛 가을, 갈까마귀 떼들이 찾아오는 겨울까지 낮밤 없이 수시로 찾아갔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부부송 위로 떠오르는 선명한 은하수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부부송 위로 떠오르는 선명한 은하수를 기다렸다.
동남쪽의 악양면과 하동읍내, 산 너머 광양공단의 빛공해光害가 만만치 않지만 4월 말부터 밤 11시 넘어 찾아오는 은하수를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적량면의 이팝나무학교를 3년 만에 졸업했듯이 이제는 평사리 부부송의 은하수도 졸업할 때가 됐다.
지난 3년 동안의 사진들을 살펴보니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었지만 수천 장을 찍어 겨우 4장 정도가 남았다.
지난 3년 동안의 사진들을 살펴보니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었지만 수천 장을 찍어 겨우 4장 정도가 남았다.
공사 중인 19번국도 확포장 공사가 완공돼 평사리 공원 입구에 가로등이 설치되면 빛 공해는 평사리를 다 에워싸게 될 것이다.
갈수록 창공의 은하수만 좀더 흐리게 고립되는 셈이다.
예전에는 부부소나무 별궤적 사진을 찍는 이만 가끔 보였다.
예전에는 부부소나무 별궤적 사진을 찍는 이만 가끔 보였다.
그런데 3년 전 나의 부부송 은하수 사진이 몇 장 공개된 뒤부터 모내기철이 시작되면 카메라를 든 ‘별사냥꾼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한밤중에 발가벗고 보리밭이며 논둑길에서 스스로 모델이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아예 대절버스를 타고 몰려오니 밤마다 무논의 개구리처럼 와글와글 소란해졌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아예 대절버스를 타고 몰려오니 밤마다 무논의 개구리처럼 와글와글 소란해졌다.
장노출의 사진을 찍는 일인데 함부로 랜턴을 이리저리 켜는 데다 예의마저 잘 지키지 않는다.
인솔자의 지도로 같은 풍경 똑같은 사진들을 찍는다.
소위 풍경사진을 가리켜 ‘달력사진’이라며 너무 비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 고민 없이 상투적으로 풍경을 복제하는 것 또한 이래저래 비판 받을 소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수가 잘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은하수를 보려고, 찍으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와 꼬박 밤을 지새우는 이들을 어찌 탓할 수만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수가 잘 보이지 않는 나라에서 은하수를 보려고, 찍으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와 꼬박 밤을 지새우는 이들을 어찌 탓할 수만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평사리 부부송의 은하수를 찍은 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어도비 등의 포토샵으로 후보정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노이즈도 심하고 채도나 색조가 거의 떡칠 수준인 경우가 많다.
차라리 원판 사진이 훨씬 더 좋은 경우가 많아 보인다. 별 사진 공부도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밤을 새며 수동조작으로 찍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자연스러운 후보정은 더 어렵다.
화장하는 여인들의 고민을 이해할 것도 같다.
다시 은하수가 떠오르는데 어린 벼는 더 자라 무논의 소나무 반영이 아쉬워지고, 밤의 논둑길에 앉아 홀로 적막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다시 은하수가 떠오르는데 어린 벼는 더 자라 무논의 소나무 반영이 아쉬워지고, 밤의 논둑길에 앉아 홀로 적막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이제 평사리 부부송의 은하수도 졸업이다.
또 한 3년 동안 입학해야 할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열흘 피는 꽃보다 수시로 꽃 피는 사람이 더 행복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구와 경주를 다녀왔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구와 경주를 다녀왔다.
나의 애마 모터사이클을 타고 대구 달성군 화원면 본리2리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에 강연을 하러 갔다.
‘쏜살보다 빨리 달려야 하는 말’의 슬픈 전설이 깃든 이 마을에 나 또한 기마족의 후예답게 바이크를 타고 날 듯이 달려갔다. 새마을운동이 비켜간 덕에 다행히 돌담이 잘 남아 있는 도심의 오지마을, 이곳에서 주민들과 만나고 방문객들과 어울려 마당 정자에서 강연을 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는 청도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다행히 막개발의 광풍을 비껴나는 바람에 이 마을은 돌담과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는 청도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다행히 막개발의 광풍을 비껴나는 바람에 이 마을은 돌담과 옛집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재도 화백이 홀로 그렸다는 벽화 또한 실물과 그림의 경계를 허물어 마을과 한 몸이 되었다.
여느 벽화마을보다 훨씬 더 정겨웠다.
마을공동체를 더 잘 가꾸어보려는 대구인문사회연구소 일꾼들의 열정도 돋보였다.
대도시와 아주 가까운 곳에 이런 오지마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마비정 벽화마을 바로 아랫마을인 남평 문씨 세거지 또한 유명한 곳이다.
마비정 벽화마을 바로 아랫마을인 남평 문씨 세거지 또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초여름 능소화와 기와지붕, 황톳빛 돌담이 어우러져 사진가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하지만 올해는 초여름의 심한 가뭄 탓에 꽃빛이 약했다.
대충 인증 샷을 찍으며 나의 졸시 ‘능소화’를 떠올렸다.
대전의 싱어송라이터 정진채씨가 나의 졸시 ‘능소화’에 멋진 곡을 붙여 노래를 했는데, 그 리듬에 중독성이 있어 나도 모르게 자꾸 흥얼거렸다.
마비정벽화마을에서 촌두부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바이크 시동을 걸었다.
마비정벽화마을에서 촌두부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바이크 시동을 걸었다.
대구 도심을 피해 경남 고령-창녕 등 밤의 왕릉들을 들러보았다.
가야의 혼이 깃든 별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지만 한밤중에 쏟아지는 소낙비에 홀딱 젖어도 좋았다.
다음날은 경주 보문단지의 대명리조트로 달려가 대구가정법원 관계자들에게 강연을 했다.
틈틈이 경주 곳곳을 둘러보았지만 날도 흐린 데다 주변 광해가 심해 첨성대 아래 세 시간을 쪼그려 앉아 있어도 제대로 별을 볼 수 없었다.
밤 11시에 주변 조명이 꺼졌지만 마찬가지였다.
모기 밥만 주고 온 셈이다.
별과 첨성대는 제대로 만날 수 없고 동해 감포의 감은사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별과 첨성대는 제대로 만날 수 없고 동해 감포의 감은사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나 농촌이나 불면증이 너무 깊다. 경주-영천-청도-창녕-의령-합천-산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쉬엄쉬엄 오지마을을 더 살펴보았다.
별밤이 오면 다시 가야 할 곳이 몇 군데 더 생겼다.
지리산에 돌아오자마자 사진가 김홍희 형이 ‘일우’ 제자들과 2박3일 여름수련회를 와있었다.
지리산에 돌아오자마자 사진가 김홍희 형이 ‘일우’ 제자들과 2박3일 여름수련회를 와있었다.
사진 전문가들에게 어설픈 시와 사진에 대한 강의를 하고 술잔을 기울였다.
돌이켜보니 먼 길 다녀오면서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아직도 밀린 숙제가 많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족필足筆의 자세로 텐트를 챙겨 길을 나설 때가 왔다.
먼길을 가다보면 사람에겐 사람의 길이 있고, 물은 물의 길, 바람은 바람의 길, 별에게는 별들의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 한 귀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별들, 그들도 각자 제자리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도 우리가 보든 말든 또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날마다 보는 북극성은 지구에서 약 430광년光年 거리에 있다고 한다.
날마다 보는 북극성은 지구에서 약 430광년光年 거리에 있다고 한다.
1광년, 빛이 1년간 달린 거리는 약 9조4,600억 km라고 하니 지구인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곳이다.
북두칠성 중에 가장 가까운 별이 그 여섯 번째인 개양開陽(미자르)이라는데 이마저 지구에서 78광년이나 떨어져 있고, 가장 멀리 있는 첫 번째 별 천추天樞(두브헤)도 124광년이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 가 닿으려면 빛의 속도로 4.24년이나 가야 한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출발한 북두칠성의 천추성 별빛이 이제야 턱하니 지리산에 도착한 셈이다. 나는 또 그것을 뒤늦게나마 후회막심 카메라로 받아 적고 있는 것이다.
5년 전인가.
5년 전인가.
지리산에서 7번째 살던 집, 화개면 덕은리 중기마을 텃밭의 겨울 가죽나무를 스쳐 지나는 별들의 궤적을 150분 동안 담은 적이 있다.
저마다 다른 크기 다른 빛깔로 흘러가고 있었다.
별 궤적, 먼길 달려온 별빛을 보며 생각했다.
먼저 온 것을 자랑할 것도 없고 늦게 온 것을 후회할 것도 없다.
옛말에 ‘묘이불수자 수이불실자苗而不秀者 秀而不實者’라 했으니 ‘싹을 틔우고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절창이다.
말 그대로 절창이다.
하지만 문제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싹을 틔워야 꽃을 피우고, 꽃을 피워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지사 대충 건너뛸 수 없는 것이다.
사진을 찍고 시를 쓰는 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마다 한 포기 야생화처럼, 나무처럼 제자리에서 혼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직 이 세상에는 부지기수다.
우리 집을 찾아온 시동인 ‘느티나무’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을 찾아온 시동인 ‘느티나무’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경북 상주에서 20년 동안 줄기차게 시 공부를 해온 느티나무 시동인들이 1박2일간 예술곳간 몽유를 다녀갔다.
어느새 <밥은 먹고 댕기나> 등 13권의 동인지를 냈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서로 다르게 빛나는 별들이었다.
모처럼 황구하 시인 등 유쾌한 벗들과 32편의 시를 감상하며 밤새 통음을 했다.
산다는 것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다 의미가 있다.
산다는 것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다 의미가 있다.
오랜 가뭄 끝에 집중 호우가 내리고, 무더운 날들의 연속이지만 아마 천 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빛나고, 섬진강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또 흐른다.
폭우가 내리고 잔뜩 흐린 먹구름 속에서도 한순간 빛이 내리고, 청명한 밤이면 은하수가 찾아온다.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가 순식간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로 바뀐다.
일희일비하다가 생을 다 소비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날이 아무리 흐려도 별은 떠있고 달이 아무리 밝아도 별들은 북극성을 돌고 돈다.
날이 아무리 흐려도 별은 떠있고 달이 아무리 밝아도 별들은 북극성을 돌고 돈다.
눈이 좀 나빠도 별은 보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안 보이는 눈으로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던 내 고향의 문학적 스승인 맹인 김씨, 돌아가신 그 어르신도 밤마다 남몰래 일어나 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난 6월 1일 밤 우리 집에도 은하수가 찾아온 적이 있다.
지난 6월 1일 밤 우리 집에도 은하수가 찾아온 적이 있다.
섬진강 건너 하동 읍내의 환한 불빛과 산 너머 광양의 밝은 빛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솟대와 토종 매실들을 배경삼아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딱 하룻밤뿐이었다. 방안에 희미한 불 하나만 켜 놓고 마당에 나가 화가 몽피夢彼 선생이 만들어준 솟대와 새집과 더덕덩굴 너머의 은하수를 담았다.
장마가 끝나고 달이 기울면 다시 찾아올 것인가. 강원도며 몽골이며 시베리아 바이칼호수며 굳이 먼 길 나서지 못하는 날들의 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둘러보면 오히려 눈이 좋은 사람들이 더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둘러보면 오히려 눈이 좋은 사람들이 더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제아무리 나쁘게 밝아져도 별은 떠오를 것이고 노안의 눈이 좀 더 나빠져도 별은 더 잘 보일 것이다.
장마철 잘 보내드리고 별빛 밤이슬을 이홉짜리 소주병에 담아 맑디맑은 술이라도 담고 싶다.
그동안 안치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따라 부르며 문득 문득 불편했는데,
1년에 단 열흘 정도 꽃 피우는 것보다는 언제나 수시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더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야 되새긴다.
‘마지막 기마족’ 심정으로 바이크 몰아
여름이 깊어지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나의 ‘적토마’ 모터사이클을 팔았다.
‘마지막 기마족’ 심정으로 바이크 몰아
여름이 깊어지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나의 ‘적토마’ 모터사이클을 팔았다.
20년 된 혼다 아프리카트윈 750을 멀리 강원도 삼척으로 시집을 보냈다.
아마도 누구인가 동해안 구석구석을 달릴 것이다.
지난여름 시승 신차로 내려온 BMW S1000XR을 인수해 1만 km 조금 넘게 타다가 결국은 집수리 빚을 갚느라 팔아버린 뒤 오랜 고민 끝에 정든 적토마까지 먼 곳으로 보냈다.
7년 가까이 이 애마를 타고 야생화와 별 사진을 찍느라 전국을 누볐다.
7년 가까이 이 애마를 타고 야생화와 별 사진을 찍느라 전국을 누볐다.
1980년대 파리 다카르랠리에서 4년 연속 우승한 ‘사막의 영웅’다운 명마 중의 명마였다.
올드 바이크지만 듀얼 바이크답게 온로드와 오프로드 가리지 않고 잘도 달렸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내가 타본 바이크만 해도 35년 동안 무려 19대나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내가 타본 바이크만 해도 35년 동안 무려 19대나 되었다.
어느새 적산거리 100만 km 이상을 돌파한 지 오래됐다.
아마 우리나라 최고의 롱텀 라이딩 기록일 것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지 않고 오직 바이크만 탔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3만 리를 걸은 적도 있지만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마족’이라는 마음으로 달렸다.
지리산에 온 뒤부터는 해마다 지구 한 바퀴 이상의 거리를 달렸다.
지리산에 온 뒤부터는 해마다 지구 한 바퀴 이상의 거리를 달렸다.
안타깝게도 한반도 남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 지방도 국도를 달려 어느새 지구 25바퀴 넘는 거리를 달린 셈이다.
비록 ‘중고 인생’이긴 하지만 바이크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되도록이면 술자리마저 피하며 오직 바이크에만 없는 돈을 털어 넣었다.
강원도 삼척으로 시집을 간 아프리카 트윈 대신에 좀더 작은 바이크를 입양했다.
강원도 삼척으로 시집을 간 아프리카 트윈 대신에 좀더 작은 바이크를 입양했다.
10년 된 전천후 바이크 스즈키 DR 650이다.
어느 선수가 타던 모타드를 가져와 순천의 전남오토바이 정영균 대표의 도움을 받아 반 오프로드로 바꾸었다.
적토마 아프리카 트윈에 비해 덩치는 좀 작지만 당나귀처럼 힘도 좋고 잘도 달린다.
웬만한 임도의 험로는 다 치고 올라갈 수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동거하게 될지 모르지만 계속 롱텀 라이딩 기록을 세우고 있는 6년 된 중고 R1200 GS와 더불어 다시 카메라를 메고 야생화와 별나무를 찾아나서는 최고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문학도 사진도 그렇듯이 바이크를 타기 이전과 이후의 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문학도 사진도 그렇듯이 바이크를 타기 이전과 이후의 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 만큼은 돼야지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 만큼은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