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 이제는 미술관입니다
[코로나 시대 주목 받는 전광판 아트]
정상혁 기자
입력 2021.07.14 03:06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서 27일 상영 예정인 미디어아트 ‘폭포-NYC’. 아나몰픽 일루전(anamorphic illusion) 기술을 통해 입체 착시를 유도했다. 위 사진은 가상 이미지로, 1분에 걸쳐 쏟아지는 폭포수 영상을 빨리감기한 것이다. /a’strict
전광판의 목적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고, 이것은 미술계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다.
이번 주부터 미국 타임스스퀘어 대형 옥외 전광판에서 ‘물쇼’가 펼쳐진다. 한국 미디어아트 그룹 에이스트릭트가 선보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먼저 1400㎡ 크기의 매리어트 마퀴즈 호텔 전광판(16~26일)은 파도 치는 거대한 수조로 변신해, 고래가 헤엄치며 광장 쪽으로 물이 쏟아지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작품 ‘고래 #2’를 30분마다 1분간 상영한다.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리는 원타임스스퀘어 높이 102.5m 전광판(27일~8월 2일)에서는 폭포수가 낙하하는 영상 ‘폭포-NYC’가 분출해 뉴욕의 마천루를 초현실적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에이스트릭트 측은 “무더운 여름과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는 시점에서 대중에게 위안을 선사하는 동시에 전 세계 미술계의 큰 주목을 예상한다”고 했다.
타임스스퀘어 한복판 'ㄴ'자 형태의 전광판에서 16일부터 상영되는 미디어아트 '고래 #2'. /a’strict
코로나 시대, 전광판이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내 전시장 접근이 제한되면서, 야외에 노출된 전광판이 탁 트인 거대 상영관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거대한 유동 인구를 발판 삼아, 기술력과 창의력을 자랑하면서 향후 시장 개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홍보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종의 마케팅인 셈이다. 에이스트릭트는 지난해 서울 코엑스 앞 전광판에서 선보인 ‘파도’로 유명해진 디지털 기반 디자인 기업 디스트릭트가 출범한 팀으로, 국내외 입소문을 타고 이름값을 올린 뒤 미술 시장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소더비 홍콩 경매에 작품을 출품해 94만5000홍콩달러(약 1억4000만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성호 대표는 “이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앞으로 증가하게 될 전광판 콘텐츠 수요를 겨냥한 라이선스 사업 수단”이라며 “‘고래 #2′의 경우 미국 측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고 말했다.
일본 신주쿠역 근처 크로스 스페이스 빌딩 전광판에서 18일까지 선보이는 거대 고양이. /유튜브
일본 신주쿠역 근처 옥외 전광판에 등장한 거대 고양이는 또 다른 예다. 거의 실물처럼 생생한 입체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가 하품하다가 전광판 밖으로 굴러떨어질 뻔하는 등의 짧은 영상이 지속 노출되며, 연일 행인과 외신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다. 현지 광고회사 측이 향후 매체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작됐는데, ‘ㄴ’자 평면 전광판으로 특정 각도에서 바라봤을 때 3D처럼 보이도록 하는 아나몰픽 일루전(anamorphic illusion) 기술이 사용됐다. 전광판은 시범 기간을 거쳐 12일부터 18일까지 공식 운영되는데, 인기에 힘입어 트위터 계정 개설 2주 만에 팔로어 2만명이 생겨났다. 한 시민은 미국 CBS 뉴스에 “코로나 탓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고양이 덕에 위로받는다”고 말했다.
런던 피커딜리서커스 광장 전광판에서 상영 중인 독일 작가 안네 임호프의 작품 ‘One’. /CIRCA
이른바 ‘전광판 아트’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에 해당 문화권이 허용할 수 있는 예술성의 수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서울 코엑스 앞 전광판에서는 독일 유명 퍼포먼스 작가 안네 임호프(43)의 10분짜리 영상 작품 ‘One’이 16·24일 오후 8시 10분 상영된다. 영국 공공미술 프로젝트(CIRCA) 일환으로 런던·도쿄·서울에서 동시 상영되지만, 서울에서만 버전이 조금 다르다. 원래는 반라의 여인이 불타는 꽃다발을 들고 선 채 정면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해변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원초적 강렬함을 드러내는 작품이지만, 서울 버전은 여인의 가슴이 노출되지 않도록 따로 편집됐다.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는 별개로, 인간의 신체를 대하는 한국 대중의 보수적 시각을 작가가 감안했기 때문이다.
[출처] 전광판? 이제는 미술관입니다|작성자 풀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