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무엇인가를 이웃과 나눌수 있다면 행복이다. 그 나눔의 대상이 크던 작던 규모나 사이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누겠다는 마음이리라.
지난 봄 토란 뿌리가 너무 많다보니 다 먹지를 못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이에 대다수의 뿌리에서 싹이 터 텃밭 주변의 울타리를 따라가면 심어 줬었다. 그중에 절반 정도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줘 내 키만큼이나 줄기가 성장을 했고, 추석에 국을 끓여먹을 생각에 몇개를 수확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토란국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 토란이라는 작물 자체도 친구가 목회하는 시골교회를 방문했다가 처음 볼 정도. 그러나 남도 출신인 아내는 어려서부터 토란을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해마다 많던 적던 토란을 심게 된다.
처음에는 이웃에서 농사하는 호남출신 노인을 통해 종자 20여개를 얻어 심은 것이 시효가 된 셈이다. 토란중에는 곡성토란이 가장 종자가 좋다고 알려져있어 2년전 종자로 2킬로를 구입했었다. 토란은 토양이 매우 중요하다. 고구마는 습기가 없어야 열매가 열리지만 반대로 토란은 그늘지면서 습기가 많아야 작물이 성장을 한다.
어쩌면 습기가 많은 우리 밭에는 토란이 적격일수도 있다. 그러나 토란의 뿌리가 고구마나 감자처럼 즐겨먹기는 쉽지가 않다. 중국인들의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에 토란뿌리를 마치 고구마나 감자처럼 쪄서 판매할 정도로 즐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토란 뿌리보다는 건조한 줄기를 이용해 육개장국을 끓여먹는데 이용하게 된다.
1차로 수확한 6개의 뿌리중 집으로 두개를 가져오고 나머지는 이웃들과 나눔을 하기로 하였다. 특히 남쪽 출신들은 어릴때에 추석에 토란국을 끓여먹은 추억이 있어서 반기게 된다.
우리를 늘 못마땅히 여기는 1층집 남자가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한다. 지방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올라온 이후 한번도 인사를 안했었다. 역시 선물의 힘이 강한 모양이다. 값어치로 따진다면 1만원 미만이다. 아마도 자신들에게 주었다는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아내도 처음에는 뭐하러 주느냐고 하다가 나에게 인사를 하더라는 말을 듣고는 "당신이 이겼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살아가면서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 이웃과 나눔을 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라 생각해 본다.
사실 내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복음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복음의 가치를 모른다는 점이다. 가치를 모르는 그들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게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