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튀밥 외 1편
백지
뻥튀기 아저씨는 반달눈 마술사
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벚나무 아래 둘러앉아 배가 볼록한 뻥튀기 기계가 터지기만을 기다려
쉿! 작은 눈은 속임수야 벙글거리는 입속에 주문을 가득 숨기고 있는지도 몰라
우리는 숨을 참고 눈을 크게 떠, 군침은 소리 없이 삼켜야 해
꿀꺽! 들키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
마술사가 천천히 풍로를 돌리기 시작했어
하얀 요술 가루를 살짝 집어넣고 따뜻한 바람도 호호 불어넣고 있어
풍로를 따라 우리 눈도 빙글빙글 돌고,
나는 달콤한 냄새에 취해 어지러워 잠이 들어
뻥이야!
하얀 연기가 요술을 부렸나 하늘에서 꽃가루가 흩날리고 있어
우리는 숨을 크게 쉬고 입을 벌려 튀밥처럼 튕겨 나온 꽃잎을 먹어
나는 향기로움에 취해 꽃길을 걸어
누구라도 고백만 하면 다 받아 줄 타이밍인데
눈 감고 서 있어도 얄미운 바람만 살랑살랑 스쳐 가
좋아! 고백은 내년에 받아줄 게
나는 잔뜩 뻥을 넣은 벚나무 어깨에 기대 내 사랑의 개화 시기를 물어 봐
내년 4월쯤 반달눈 아저씨가 풍로를 돌린다는 소식이야
하얀 거짓말, 거짓말 같은 사랑이 벚나무 가지에서 튀밥처럼 부풀고 있다
봄을 통째로 날릴 뻔한 시시한 이야기
백지
엉덩이가 낡은 소쿠리 같은 뒷집 언니
산에 들에 한창인 봄나물 캐러 가자며
호미 들고 빚쟁이처럼 버티고 섰다
몇천 원이면 마트에 널린 게 나물인데
그 시간에 시 한 줄 더 쓰겠다고
손사래 쳤다
-그깟 시 쓴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막무가내인 뒷집 언니
꽃무늬 장화 야무지게 신고 목소리 높인다
백번 지당한 그 말씀에 기가 죽어
장터에서 산 땡땡이 몸빼바지 주섬주섬 고쳐 입고
꼬리 내린 똥개처럼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지천에 봄이 널렸다
길고양이 삼남매 봄볕 굴리다 엉켜있고
초록 씀바귀 심심할까 봐 노랑 민들레 덤으로 피었다
-시가 뭐 있간디? 이런 게 다 시제~ 오늘 시 많이 캤다잉?
시 한 소쿠리 담아 오는 길
앞서가는 뒷집 언니 엉덩이에 봄바람 살랑거리고
대문 앞 시멘트 틈 사이로 제비꽃 활짝 웃는다
하마터면 방구석에 처박혀 봄을 통째로 날릴 뻔했다
----박용숙 외, 애지사화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 ; ‘벚꽃 튀밥’ 외 1편
이름 : 백지
약력 : 2023 애지 신인문학상 등단, 애지 문학회 회원, 다락헌 동인.
이메일 : baekji23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