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금요일
2열왕기 11,1-4.9-18.20 마태오 6,19-23
2024. 6. 21. 알로이시오 곤자가
주제 : 신앙과 정치의 관계
오늘은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는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1500년대 말 유럽과 이탈리아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나이가 어린 사람으로서 예수회에 들어갔고,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다가 그 병으로 선종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성인을 보면서 하는 생각일 수는 있지만, 세상에서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일수록 세상의 삶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래 살아야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흑사병이라는 병을 만났으면서도 돕는 일에 사람이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은 어떻게 얻겠습니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한 판단을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라 살았던 사람이기에 알로이시오 곤자가를 우리가 성인으로 공경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독서에서 들은 내용은 종교와 신앙이 세상의 정치가를 도운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정치가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도록, 오늘 독서는 여호야다 사제가 세상의 정치가인 왕의 목숨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이야기의 주제는 정치와 신앙이 서로 돕자는 이야기는 아니겠습니다만, 세상의 정치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려고 애썼던 사제의 활동을 보면, 서로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는 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신앙에 관한 것도 소홀하게 여기지 말고 살자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안타까운 일의 하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보다는 세상의 일을 중요하게 여겨서 신앙에 관한 것이나 하느님에 관한 것은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드러내는 자세가 하느님을 떠났는데,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사람에게 끊임없이 베푸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모습입니다. 이론이겠습니다만, 사람이 세상에서 세상의 삶에서 얻을 결과를 얻는 좋은 방법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애쓰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보물을 쌓으려고 애씁니다만, 그렇게 쌓은 보물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세상에 쌓은 그 보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일인데, 그렇게 잘 살 보장은 우리가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드러내는 삶의 모양은 어떠한지. 잠시 돌이킬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