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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를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신 14:29
오늘도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풍성하게 내려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같이 은혜 받읍시다. 라고 옆 사람과 잠간 인사 나누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구원을 반드시 받아야 하기에 믿어야 할 뿐 아니라 믿고 난 뒤에는 경건생활에 힘써야 하나님께서 더 귀하고 상급 받는 자들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야 장성한 성도가 되고 휴거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까지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경건생활이란 것은 1)혀 언어생활을 통제 할 수 있어야만 하고 2)약한 자 어려운 자를 돌보는 인자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3)자신을 타락되어 가고 있는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세 가지 것 중에서 저는 지금까지 첫 번째 것 혀, 언어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면서 혀를 제갈 물리고 통제하려면 먼저 생각을 통제하는 훈련부터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유는 혀는 길들여 지지 않기 때문에 혀를 길들이는 대신 생각을 길들이는 훈련을 하면 자연히 혀도 제갈 물릴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제하는 훈련부터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맞추고 살겠다는 의지를 주님께 늘 고백 드리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묻고 사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습관화 체질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생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경건생활을 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두 번째 인자, 혹 인애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참 된 경건생활이란 혀를 제갈 물릴 줄 아며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에서 돌아보는 것이며 자신을 세속에 물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야고보 1장 2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서는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입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 부양할 아버지가 없는 고아, 남편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 없는 과부는 대표적인 약자들이였습니다. 그런 약자들이 환난까지를 만나면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경건한 생활을 한다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인자 혹은 인애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이 어려운 자를 돌보라고 율법에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째로 중요한 계명이라고 첫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들끼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혼자만 자기만 잘 되고 평안하기를 원치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 가운데는 항상 어려운 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경 잠언 22:2에 <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19장 17절 <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힘들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네가 힘 있을 때 돌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대표적인 약자인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자를 우리가 다 도울 수는 없습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은 어떤 사회가 되었던지 간에 항상 가난한 자, 약자들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오늘 우리가 읽은 14장 29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신약시대에 들어서는 구약시대와 같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객에 대해 구제하고 섬길 것을 말씀하되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어떤 사람들에게?)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하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340페이지를 펴 봅시다. 3-4절 읽겠습니다.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구약시대는 3년마다 십일조를 모아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 했는데 지금은 나라에서 모든 세금과 물건을 살 때 부과 세라고 아예 1/10을 더 붙쳐서 사도록 해서 그걸 가지고 생활이 어려운 자들을 기초생활 수급자라고 해서 돕고 있지요.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라가 교회를 대신해서 세금을 거두어 가기에 교회는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가지고 교회 안에 어려운 자를 돕고 자녀들에게 교육시켜야 하고 선교사를 보내야 데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경 마태복음 25장 신약 43페이지 보겠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복음 전파자 선교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31절.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인자되신 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으로 올 때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34절 읽읍시다.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고 하신다는 겁니다.
37절 <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 반대로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여기 왼편에 있는 자들이나 오른편에 있는 자들 역시도 자기들이 예수님께 주릴 때, 목마를 때 직접 대접을 하지 않았기에 오른쪽에 있는 자들은 감격해서 놀라고 왼쪽에 있는 자들은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들은 감사하다고 말하고 교회에다 헌금할 수는 있어도 직접 주님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의 이름으로 주의 종이라고 해서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라고 주님께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제가 말로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전도하라고 제자들을 보내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40절 이하인데요. <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보낸 제자들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보낸 하나님아버지를 영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활동하는 것을 보고 선지자를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고 예수님께 속한 자라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를 주님께서 상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를 구약성경 엘리야 선지자들 대접했던 사렙다 고부이야기에서, 엘리사 선지자를 대접했던 수넴 여인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엘리사 선지자는 두 분 다 하나님께 부름 받고 선지자사역을 감당할 때 엘리야 선지자는 흉년 때에 활동했고 엘리사 선지자는 왕궁과 사마리아를 비롯하여 지방을 순회하면서 활동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럴 때 사렙다 과부는 자기가 먹을 양식을 음식으로 엘리야를 대접했고,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해서 작은 다락방을 만들어 편하게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라고 대접했던 두 여자를 하나는 흉년을 면하게 해 주었고 하나는 아들이 없는 데 아들을 낳게 해주셨고 나중에 아이가 죽게 되었을 때도 살려주셨던 이야기가 열왕기 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이라고 인정된 자들이 힘들어 할 때, 주위에 주님께 속한 자들이 힘들어 할 때 도와주는 자를 주님께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선교지에 나가서 한국에서보다 잘 살면서 선교 비를 잘 챙기는 거짓 선교사 엉터리 선교사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다 사진을 보낼 때 여러 곳에 다니며 사진을 찍어 보내며 이렇게 선교한다고 합니다.
저도 한 번 속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 동포 선교를 한다며 자기들은 십자가에 죽은 사람들이라 하여 이름을 가조선교사라고 하며 멀리서 망원렌즈 달린 카메라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화물자동차를 찍고서는 자기들이 보낸 물품을 실고 들어간다고 하기에 속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주의 일하려고 하면서 힘들어 하는 분들 선교사들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주님을 이용해서 교회를 옮겨 다니며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 말고 진짜로 예수님을 잘 믿으려는데 힘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컵 대접하는 인애한 마음, 인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경건생활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고 부르신 자들이 자기만을 알고, 자기 욕망 때문에 뭔가를 일궈내려고 하나님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자를 원치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의 마음 곧 선한 마음, 누구 앞에서 당당한 정의롭게 살려는 마음, 그러면서도 약하고 힘든 사람이라면 도와주려는 인자한 마음을 가지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자들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기를 심지어 제사, 예배드리는 것 이상으로 추구하기를 원한다고 호세아 6장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번제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을 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가서 6장 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고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저 세상은 악한 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길 원치 않고 계십니다. 힘 있다고 머리에 든 것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행세하는 세상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도리어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높은 자리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낮은 자리까지 그런 사람들이 통치하는 세상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싸우고 다투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아픔도 육신의 고통도 더 이상 존재하는 나라가 아닌 나랍니다. 그곳은 예수님을 머리로 여기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운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갈 사람을 뽑고 그 가운데서 더 주님을 닮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사람을 관할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자는 성도의 수준이 되기를 원하고 계시고 성도들에게는 이기는 자들이 되어 주님과 함께 작은 왕이 되어 하늘나라의 기둥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경건생활을 하고 있느냐? 다른 말로 하면 언어생활을 얼마나 절제할 줄 알고 살리는 말과 화평케 하는 말을 하고, 어려운 자를 돌보는 인자한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자기를 세상 문화에 물들이지 않고 주님을 닮아 빛이 되고 향기가 되는 사람이 되느냐? 바로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게 기독교에서 전하는 복음이요 진리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내가 과연 말부터 제어할 줄 아는 경건생활, 어려운 자를 돌아보는 인애를 행하라고 하는 말씀을 따르고 있는 지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