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도와주기는 쉽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쉬운 일일지라도 함께하면 더 좋다는 뜻입니다. 저는 십시일반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본당에 청년 성가대가 결성되었습니다. 작년에 부주임 신부님이 오면서 청년들 모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한주는 성경 공부, 한주는 친교를 하면서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청년 성가대가 출범했습니다. 청년 성가대에서 ‘단복’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마침 본당에서는 한국에 성가책 300권을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택배를 부치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말처럼 택배비용이 성가책 구매비용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10 미사 성가 단장이 한 가지 제안했습니다. 올여름에 성가대원들 중에 한국 가는 단원들이 있는데 미국 오는 길에 한 박스씩 가져오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택배비용을 줄이고, 그 비용으로 청년 성가대 단복을 사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10박스면 부피도 크고, 무게도 150킬로로 부담되지만, 1박스는 큰 부담 없이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청년 성가대를 아껴주는 어른 성가대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기꺼이 맡아 주시는 성가대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멀리 한국에서 일을 도와주시는 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복음서에서도 ‘십시일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풍 병자는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싣고 예수님께 갔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지붕을 들어내고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풍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십시일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사람이 많아서 어렵겠다고 하였습니다. 돈도 많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먹을 것이 없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중물의 위력을 알고 있습니다. 펌프에 물 한 바가지를 넣고 힘껏 펌프를 움직이면 한 바가지의 물로 5천 바가지의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하에는 많은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바치신 다음, 보리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십시일반과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만나니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전에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행동의 문제였습니다. 천국은 아주 긴 수저가 있는데 그 수저로 자기의 입에 음식을 넣지 않고, 이웃에게 음식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흘리지 않고,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옥은 아주 긴 수저가 있는데 그 수저로 자기의 입에 음식을 넣으려 하니 아주 불편하였습니다. 음식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곳이 지옥이었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백지장도 서로 맞드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 천국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애벌레는 땅 위를 기어 다닙니다. 그것에 대해서 불만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나비와 애벌레는 본질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나비는 더 이상 땅 위를 기어 다니지 않습니다. 나비는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한 마리의 애벌레가 하나의 천사가 되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 우리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망과 탐욕의 삶으로 죽음이라는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 날개 잃어버린 천사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십시일반의 삶으로 죽음이라는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천사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