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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책이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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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소설가만 가져옴
신경숙 ㅣ 소설가
데뷔 : 1985년 문예중앙 소설 <겨울우화>
수상 : 2006년 14회 오영수 문학상 등
작품 :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슬픔>, <외딴 방>, <엄마를 부탁해> 등
소설가 신경숙의 서재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tv.naver.com
20대부터 자연스럽게 제 방은 나를 위한 방이라기보다 책을 위한 방이었습니다. 서재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거기서 책과 함께 자고 먹고 놀고 다했죠. 그래서 어떤 공간을 보면 먼저 책을 둘 장소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 내부는 텅 빈 채 골조만 올라가 있는 상태였어요. 천정이 높다는 이유로 덜컥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천장이 높으면 책을 많이 넣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지요. 제가 외부에 작업실을 두고 작품을 쓰는 체질도 아니고 우리 식구는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기에 집안에 서재가 두 개는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냥 집 자체를 서재화, 작업실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어놓고 외출해도 걱정이 없을 정도에요. 책 말고는 가져갈 게 없으니까요(웃음). 하지만 이러한 서재를 만들기 위해 일상적인 것들을 많이 포기했고 그것이 나중에 저를 많이 불편하게 하더군요. 책꽂이를 하나 더 만들기 위해 2층 화장실을 포기하는 등 오로지 책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생활적인 면에서는 많이 불편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책들을 보며 '이것을 내가 가지고 있구나'. '너무나 많은 것을 내가 누리고 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빈 책꽂이가 많아서 앞으로도 상당기간 마음 놓고 책을 꽂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3개월 동안 읽었던 삼성출판사의 한국문학 전집 60권은 저의 자양분이었어요. 낮에도 창에다 검은 도화지를 붙여 방을 어둡게 하고 불을 켜고 읽었죠. 겨울에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봄이 왔고 뭔가 다른 힘이 생긴 듯이 든든해졌죠.
문학을 하다 보니 여전히 문학신간 위주의 독서가 주가 되긴 하지만 작품을 쓰다 보면 필요에 의해 하게 되는 독서도 상당수 있어요. 이를테면 낚시꾼을 묘사하기 위해서 낚시입문 서적을, 토끼를 등장시키기 위해 토끼 기르는 법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합니다.
30대 지나면서는 저절로 심리학, 정신분석 ,역사, 철학, 미술 ,신화 쪽으로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도스토옙스키는 다 읽기가 벅차서 악령 빼고는 나중에 나이 들면 읽어야지 하고 미뤄놓기도 하고 이방인 같은 작품은 매년 한 번씩 다시 읽어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전기나 자서전 ,평전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스콧니어링 자서전이나 로렌 아이슬리 자서전 ,로맹 가리 전기를 보면서 저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 영역이 얼마나 광활한지를 실감하죠.
그때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싹트기도 합니다.
서재는 제 보금자리이자 둥지여서 따로 분리가 안 되요. 그냥 함께 사는 것이지요. 책도 그래요. 한 권의 책은 곧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한 사람과 깊이 소통하는 일과 같습니다. 모르고 있던 해박한 지식이나 세상의 수많은 낯선 이야기들을 알 수 있으니 사실 나로서는 득만 보는 소통이 되겠네요. 그들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에 대한 교감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에게 책은 곧 사람이고 저 자신이기도 합니다.
햇볕이 잘 드는 한낮에 블라인드를 다 올려놓고 책장을 올려다 보며 서재 바닥에 누워볼 때가 있어요. 바닥이 타일이라 차가워요. 그래도 마치 마당에 누워 있는 것처럼 아늑하답니다. 제겐 조카들이 많은데 그들이 몰려와서 서재에서 이 책 저 책 들춰보며 뒹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래서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처럼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서재를 만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오래된 수도원을 구해서 집으로 여기고 사는데 항상 문을 열어두어 온 동네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논다고 해요. 투르니에가 없을 때도 말이죠.
나중에는 소중한 책을 낸 저자들도 초대해서 낭독회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동의도 구해야 하는 일이니 정말 먼 훗날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마을이라 읽을거리가 풍성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책을 본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소리 내어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간판이며 과수원의 배나 포도를 싼 신문지까지도요. 저는 형제가 여럿인데 오빠가 책 읽기를 좋아해서 그가 빌려오는 책들을 제가 먼저 읽기 시작 했고 그것이 독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난독이어서 뭘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 읽었던 무수하고 잡다한 책들이 모두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었어요. 난쟁이 일가족의 삶을 통해 참다운 문학작품의 품격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소외된 사람들이 그의 문학 안에서는 오히려 중심이었고 이 작품은 저에게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필사를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간결한 문체인데도 울림이 크고 견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작품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 문장들이 그런 아름다움을 유지하길 하는 바람입니다.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
작년에 그림과 눈물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라는 첫 문장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어요. 또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와 제임스 엘킨스의 독특한 이력에도 매력을 느꼈고요. 이 책은 설문을 토대로 쓰여진 글이라서 읽고 있는 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 쑥스러워하죠. 감동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눈물조차도 타인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데서 오는 억압도 한 몫 한다고 봐요.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무의식적인 억압이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마크 로스코의 텍사스 예배당에 걸린 그림 앞에서 울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나도 당장 그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검고 어두운 색깔 때문에 울었다는 사람들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와요. 눈물은 슬플 때만 흘리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될 때도 눈물을 흘리죠. 결국 이 책은 부제처럼 그림 앞에서 울어본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읽다 보면 내 안에 흐르다가 멈춰버린 감동의 눈물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울어 본지가 굉장히 오래되셨다거나 내 마음이 메말랐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에게 특별히 권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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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ㅣ 소설가
데뷔 : 1995년 단편소설 '이중주'로 등단
수상 : 동인문학상(2007), 이산문학상(2006) 등
저서 : <소년을 위로해줘>, <그것은 꿈이었을까>,
<비밀과 거짓말>, <아내의 상자>, <새의 선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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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자유로운 장소
저한테 서재는 먼 나라의 공항 같은 곳이에요.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그냥 내가 볼 수 있는 건 나 뿐이고, 내가 의식하는 건 나 자신이에요. 그래서 조금 자유롭고요. 그리고 궁금하긴 한데, 편안하지는 않아요. 내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괜찮은데,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긴장도 있어요. 그래서 저한테 서재는 폐쇄된 공간이면서도, 열려있어요. 마치 나는 볼 수 있고, 밖에서는 나를 볼 수 없는 그런 창으로 둘러싼 유리방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책을 보고, 지식을 쌓는 곳이라는 느낌보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못 보겠지, 여기서 나는 뭐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나는 순정한 처녀림 같은 데에 막 도착한 프런티어 같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느낌이에요. 자유롭고, 또 내가 약간 방치된 느낌도 있고, 낯선 것에 대한 긴장도 좀 있는, 그래서 먼 나라의 공항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직접 서재를 보여드리지는 못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서재에는 물론 너무나 많은 책이 있어요. 그래서 특별히 무얼 기준으로 정리해 놓거나 하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물론 정리를 하는데 결국에는 다 무너지니까. 제 서재가 다른 사람하고 다른 점은 편하게 해놓지는 않아요. 그리고 의자도 제 책상에 앉아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편한 의자를 사용하냐고, 너무 불편하다고 하는데요. 저는 불편한 의자를 일부러 사요. 푹신하지 않고, 좀 딱딱한 의자, 그게 저한테는 편해요.
책을 볼 때는 한 권에만 집중해서 읽는다
저는 제 일생을 통틀어서 초등학생 때가 제일 독서광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모든 궁금한 것이 책에 다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제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을 대답해 줄 어른이 안 계셨어요. 친구들도 그렇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때는 옛날이고, 또 작은 읍이어서 책이 많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도서관에도 서가가 몇 개 없었는데요. 그 서가에 기대서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학교가 막 시끄럽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조용하거든요. 그 때 책을 읽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서 집에 가야겠다고 했던 그런 때의 기분을 지금도 책 읽을 때 아주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을 해요.
내 소설은 내가 살아온 인생이다
소설이라는 게 소설가가 살아온 인생이에요. 그 때 내가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소설이 나오는 거고, 또 더 크게 보면 사회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 사회에 살았던 어떤 사람이 그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또 소설이니까요. 어떤 소설이든지 저의 현재, 제가 살았던 삶이 담겨있어요. 그래서 어떤 소설을 보면, '맞아, 내가 이걸 쓸 무렵에 어떤 식으로 고민을 하고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다들 다른 식으로 기억하겠지만, 저는 '그 일? 내가 그 소설 쓸 때였지' 이런 식으로 기억하거든요. 내가 그 소설을 쓸 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 그거 할 때 나는 무슨 소설을 쓰고 있었어, 이렇게 매치를 해요. 어쨌든 제 인생이었기 때문에, 어느 시기의 인생은 행복했고, 어느 시기의 인생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다 제 것이고요.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써야지 더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다면 '왜' 쓰고 싶은지 생각해라
저는 늦게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한테 '진짜 소설을 쓰고 싶어?'라고 얘기하곤 해요. 왜 쓰고 싶은지 스스로한테 질문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문학소녀 시절을 보냈고, 국문학과에 갔고, 거기서도 많은 글도 쓰고 했지만, 그때는 왜 소설가가 못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저는 세상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세상에 대해서 질문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예요.
저는 그 때만 해도 정답을 맞히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뭐가 주어졌으면 그걸 맞히려고만 했지, 내 식대로 무엇을 보고, 내 식대로 새로 해석해 보고, 내 방식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나만의 시각이나 관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할 얘기가 없죠. 물론 글 솜씨를 가지고 뭔가를 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남의 흉내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허영심의 발로였을 뿐이지, 내가 진정 하고 싶고, 궁금하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늦게라도, 혹은 지금이라도 (소설을) 쓰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는 왜 쓰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고, 그러면 뭘 쓰고 싶은지도 생각이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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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ㅣ 소설가
소속 :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학력 : 연세대학교 국문학 학사
데뷔 : 1994년 서울신문 '붉은 닻' 등단
수상 : 2010년 제13회 동리문학상,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대상
저서 : <소년이 온다>, <여수의 사랑>,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등 다수
소설가 한강의 서재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tv.naver.com
행복했던 유년의 책 읽기
어릴 때 집에 책이 많았어요. 책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죠. 사교육이 없는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세상에 널려있는 것은 책과 시간, 그런 느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글자가 안 보이는 거예요. '왜 안 보이지?'하고 얼굴을 들어보니까 해가 진 거죠. 그래서 일어나서 불 켜고 또 책 읽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책 속에 파묻혀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행운이 어디 있나 싶어요.
더 좋았던 것은,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께서 책을 좋아하셔서 집에 많은 책을 들여놓으셨는데 책을 장서로 잘 보관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무 데나 쌓아놓고 방치하고 가져다 읽고 흔적을 함부로 남기고, 이런 독서법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도 책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어려운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순수한 오락거리로 저의 즐거운 유희로써 아무렇게나 쉽게 읽고, 있던 자리에 꽂지도 않고 그냥 놔두고. 그렇게 어떤 억압도 없이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데 도움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도요.
기억에 남는 책
어릴 때 권정생, 마해송, 이원수, 이런 동화 작가 책들도 읽고요. 그리고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는 분이셨기 때문에 집에 굴러다니는 어른들 책도 많이 주워서 읽었어요. 그래서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도 읽고.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부터는 문예지도 읽고요. 뜻도 모르면서 작가들 사진 보는 게 재미있어서 읽다가 시도 찾아 읽고 소설도 읽고. 그런 기억이 참 좋네요.
어릴 때 읽었던 책들 다 기억에 남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죄와 벌>을 읽었어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지만 충격을 받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고요. 그 세계가 굉장히 어두운 세계잖아요. 그런데 그 어두운 세계에서 이상하게 손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읽어 가면서 뭔가 저의 존재가 이 책 때문에 굉장히 흔들리고 있다는 그런 무거운 충격을 받았어요.
책 읽기에서 글쓰기로
어릴 때부터 늘 인간이 궁금했어요. 인간이라는 게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잖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을 학살하기도 하고 또 지하철 선로에 아이가 떨어지면 가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분도 있잖아요. 인간이라는 것이 그토록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는 게 어릴 때부터 신비하고 무섭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 알수록 두렵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도 늘 질문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소설도 쓰게 된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질문,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써 계속 글쓰기를 붙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해하지 않으며 한 걸음씩
글을 쓸 때 어둡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어둡게 쓰는 건 아니고요. 제가 섣불리 화해하거나 치유하는 건 잘 못 해요. 화해하지도 않고, 치유하지도 않고. 제가 믿을 수 있는 만큼만, 걸음이 느리더라도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만큼만, 그만큼만 나아가고 싶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계속 세계를 서서히 잃어가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희랍어 시간>을 쓸 때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이야기를 쓰면서 이건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떨어질 데를 향해서 빠르게 또는 느리게 날아가는 그런 존재들이라고요. 그런 유한성을 잊지 않는 게 또 글쓰기의 방식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
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소설 속에 어떤 내적인 투쟁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그런 의문과 의심과 회의 속에서 언제나 글쓰기를 통해서 그걸 뚫고 나가보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인간을 껴안고 싶고,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되고, 그렇지만 더 나아가고 싶고.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는데 <희랍어 시간>이란 소설을 쓸 때 제가 인간을 껴안는 일에 근접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거기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소통하기 위해서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대화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대목을 쓸 때,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장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을 끝마치고 나서는 아주 따뜻한, 인간의 아주 환한 지점을 더듬는 그런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쓰려고 노력을 했는데 의외로 잘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왜 안 되는가를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80년 5월, 제가 어린 나이에 간접 체험했던 광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당시 제가 느낀 것은 신군부에 대한 분노라든지 증오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한 존재인 것인가, 그런데 그런 죽음을 무릅쓴다는 건 또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이 깊이 새겨졌던 사건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계속 묻어두고 긴 시간을 지냈던 거고요.
그런데 내적인 탐색의 과정에서 '왜 내가 인간을 껴안기가 이토록 어려운가?'라는 질문의 끝에 80년 5월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글쓰기로 뚫고 나가지 않으면 저는 이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됐고요.
34년을 건너온 소년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룬다는 점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어요. 지금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계시기 때문에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리고 당시의 참혹한 이야기들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했던 그런 야만의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늘 그만 쓰고 싶었지만, 또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제가 알았기 때문에 더 써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진 거죠. 정말 그걸 겪은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니까 잘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힘드니까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과 그러니까 더 잘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계속 부딪히면서 어떻게 끝까지 쓰게 됐어요.
그리고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처럼 소년이 34년을 건너서 우리에게 한발 한발 걸어오는 그런 이야기였으면 했고요. 저의 개인사도 거기 파편처럼 넣어서 이것이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광주라는 게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얼굴을 바꿔서 우리에게 계속 돌아오고 있고 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광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소년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그런 느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요. 정말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간, 그리고 존엄성
인간이라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위태롭고 깨지기 쉬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간의 존엄함은 무척 연약한 것이고요. 유리가 거기 있는지도 몰랐지만 깨지고 나면 유리가 깨졌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요. 되돌릴 수 없는 거라서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있는 것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그런 거란 생각을 요새 하고 있어요.
요즘 저의 고민이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각으로 많이 나가고 있는데요. 특히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인간의 참혹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들여다보게 됐고요. 그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소설을 썼어요. 생각해보면 이전 소설들에서도 주인공들이 육식을 밀어내면서 또는 언어를 밀어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잠깐 이 세계로부터 감추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엄을 확보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앞으로 쓰게 될 소설도 제가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에 굉장히 간절하게 닿고 싶었던 그런 존엄에서 출발할 것 같아요. 인간의 존엄을 고민한다는 게 인간을 껴안고자 하는 사랑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음 소설은 바라건대 어둡기보다는 사랑에서 출발하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해요.
일생을 잘 표류하기를
보르헤스가 만년의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백발에 주름진 얼굴로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고, 조언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은 일생을 화해하지 않고 누구에게 어떤 조언도 하지 않고 잘 표류하면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늘 해요.
첫댓글 초등학교 육학년때 죄와 벌을 읽었다고...?
진챠 멋지다 떡잎부터 다른 늑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난쏘공 읽으면 알 수 있을거야 정말로. 왜 자꾸 언급이 되는지 읽으면 느낄 수 있어..
한강 작가님 책 다 내스타일 ㅠㅠㅠㅠ 너무 좋아요
미래에서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