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는 얘기가 나왔던 독일 축구의 전설 '카이저'(황제) 프란츠 베켄바워가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8일(현지시간) dpa통신을 통해 “고인이 전날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1945년 뮌헨 출신으로 1964년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7년까지 이 팀에서 중앙 수비수이자 리베로로 맹활약, 무려 582경기에 출전해 74골 75도움을 올리며 바이에른 뮌헨을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3연패, 분데스리가 5회 우승 등에 이바지했다. 수비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팀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기도 했다.
분데스리가 뿐만 아니라 서독 국가대표로 1965년부터 1977년까지 활약한 베켄바워는 103경기에 출전해 14골을 기록,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과 70년 멕시코 월드컵 3위, 유로 72 우승, 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로서 들 수 있는 트로피는 모두 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와 쌍벽을 이뤘으나 번번이 맞대결의 승자는 베켄바워였다. 1972년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 모국 독일에서 여러 훈장을 받아 축구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함부르크와 뉴욕 코스모스를 거쳐 1983년 현역 선수 생활을 정리한 베켄바워는 1984년 서독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0년까지 서독을 이끌어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지난 5일 타계한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트로피를 든 두 번째 감독으로 이름을 새겼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든 이는 프랑스의 디디에 디샹까지 세 사람 뿐이다.
그 뒤 올랭피크 마르세유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거쳐 1994년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 직에 오르며 본격적인 행정가 생활을 시작한 베켄바워는 2000-01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팀의 중흥기를 이끌며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로 모두 성공한 축구인이 됐다. 2002년부터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베켄바워는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뒤로도 독일 축구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
카이저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못했다. 최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두 번의 심장 수술과 골반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등 힘겹게 싸우다 스러지고 말았다. 바이에른 뮌헨 구단은 "FC 바이에른의 세상은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갑자기 어두워졌고, 조용해졌으며, 가난해졌다"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