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대첩 지와 제승당 기행
홍 재 석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가장 훌륭하신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다. 화폐에도 그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은 우리나라 대표적 위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경남 통영의 한산도에 있는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지와 제승당 (制勝堂)은 선조25년(1592.8.14 음7.8)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께서 한산도 앞바다에서 적은 병력으로 왜적을 무참하게 무찌르고 대승을 이룩한 전승지다.
전쟁의 전과(戰果)는 왜군의 주력선단 73척을 유인하여 그중 59척을 대파시키고 왜병 8,600여명을 한산도 앞바다에 수장시킨 쾌거의 전쟁터가 아닌가. 이 해전으로 충무공께서는 삼도 (경상, 전라, 충청)의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하였다. 또한 왜군의 전력을 상실시킴으로서 위급한 국란을 극복하게 한 우국진충(憂國盡忠)의 충신이 된 것이다.
장군께서는 늘 노심초사 군사작전과 우국에 골몰하신 흔적의 한시가 있다. (水國秋光暮 驚寒雅陣高 憂心轉轉夜 殘月照弓刀) 바다가 저무는 가을날에 쌀쌀한 하늘에 기르기는 높이 날아 진을 첫 도다, 나는 근심에 잠 못 이루는 밤에 새벽달만 활과 칼에 비치는 구나.
시문에 능할 만큼 유학을 배우다가 무언가 남다른 깊은 생각을 한바가 있었을 것이다. 후에 천추의 여명을 다짐하면서 무예를 닦게 된 것이 아닐까. 누구나 성공하려면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목적에만 집념을 가지고 노력함으로 영광의 빛을 보는 것이 아니던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4) 일본국의 수령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가 육해군 15만 대군으로 조선을 공격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재침(1597)까지 합하여 7년간이나 끌다가 왜군이 물러간 싸움 이였다. 악몽 같은 난리로 7년 동안에 인명과 재산피해는 얼마인가. 백성들의 고충과 원성은 어떠했을까. 소중한 국보와 문화제의 강탈 등으로 얼마나 많은 손실을 당했는가.
우리나라는 그 피해의 수량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니던가. 오죽하면 함경도 까지 피난을 가서 숨어있는 왕자 2명을 일부 주민이 붙잡아 꽁꽁 묶어서 적장에게 넘겨준 처사는 있을 수 없는 불충의 사건도 이러 났다고 한다.
당시 선조(宣祖) 임금은 통치자로서 방탕한 실정을 하였기에 신의주까지 몽진을 가신 수모는 씻을 수 없는 국치가 아닌가.
충무공 이순신장군(忠武公李舜臣將軍) 은 임진왜란 중 장군께서 거북선을 앞세우고 14차례의 해전을 모두 승리를 한 것이다. 이 싸움의 전과는 세계 해전사상 유래가 없는 전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4대 해전의 하나라고 한다.
장군께서는 세계 최초로(1592) 거북이 모양의 철갑선을 만들었기에 조선(造船)의 장군 이기도 하다. 설계까지 하셨다니 정말 대단 하시다.
아마도 그 후광을 받아 우리나라 조선술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이 아닐까.
공은 노량진 해전(1598,음11.19)에서 전사하면서도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그 얼마나 숭고한 호국단충(護國丹忠) 이므로 우리들은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공은 군술(軍術)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문장력도 띠어난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장군이다. 난중일기, 서간 첩과 많은 시문을 남기고 송나라 역사까지 공부한 특출한 지휘관 이였다. 중국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 모공 편에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白戰百勝)’을 직시하고 실천한 명장 이였다.
공의 군인정신은 공과 사를 구분하며 늘 창조적으로 유비무환을 실천 하였기에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 있지 않는가. 당시 우리나라를 도우기 위해 온 명(明)나라 수군도사 ‘진린’도 공의 탁월한 전술과 학식을 높이 칭찬한 시문(有經天緯地之才 補天俗日之功)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공의 생애를 보면 본관은 덕수(德水) 이고 아버지 이정(李貞) 어머니 초계변씨(草溪卞氏)의 3남으로 지금의 충무로 4가에서 (1548,음3.8)태여 났다.
가난하여 외가댁이 있는 아산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다. 32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 로서 54세에 애석하게도 전사 하시였다. 묘(墓 )는 충남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 에 있고 위패는 아산 현충사에 있으므로 많은 참배객이 이여지고 있지 않는가. 공은 상주 방씨(尙州方氏)를 정실로 3남 1녀를 두었고 적 서자 모두 8남매를 두시여 다복한 가정적인 면모도 보여 진다.
공의 행장기에 나오는 일화는 8살 때 원두막에 가서 참외를 달라고 했다. 거절당하자 참외밭으로 말을 몰아 남의 참외밭을 망가트린 일화는 어릴 적의 기백과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임진왜란의 혁혁한 공로를 인조(仁祖)께서는 ‘충무(忠武)’의 시호를 내렸다. 정조(正祖)는 ‘유명수군도독 증 선무공신 영의정“을 추서해 주시였다.
제승당(制勝堂)은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어리 에 있으며 사적 제113호로 지정 되여 있다. 한산도대첩 후 삼도수군의 작전지휘소로 사용한 운주당(運籌堂)을 충무공께서 건립 하였으나 ,왜군의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렸다.
그 후 142년 뒤에 영조(英祖)15년(1739)에 통제사 조경(趙儆)장군이 복원하고 명명한 것이 제승당이 된 것이다.
운주당은 이리저리 꾀를 내는 작전을 하는 곳이란 의미이고, 제승당은 적을 억제하고 승리를 이루는 곳이라는 뜻이 아닌가.
박정희대통령께서(1975) 충무공의 살신성인(殺身成人)과 구국 정신의 높은 뜻을 후대에 전하고자 제승당을 확장 보수 한 것이 오늘의 한산도대첩 지와 제승당이다.
한산섬 안에 있는 제승당의 위치는 앞에는 한산바다요 뒤에는 만산이며 우측은 고동산 좌측은 미륵산을 배경으로 되어 있다.
천혜의 지형지물을 연결하여 봉화와 고동 등으로 적의 동태를 파악하였던 군사적 요충지가 아니던가.
경내에는 공의 영당인 충무사(忠武祠)와 유허비 송덕비 가 있다.
적군의 움직임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수루(戍樓)는 1976년에 고증을 거처 복원한 것이란다. 그 위용이 당당하며 높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금방이라도 장군의 지휘명령이 우렁차게 들일 것 같은 느낌이 던다.
주위는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늠름한 해송들이 그날을 지켜 주는 듯 에워싸고 있었다. 입구의 조경도 격전지답게 화살나무, 꽃댕강나무, 팔소리나무 등으로 전쟁의 품성을 나타내는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이곳 길목마다 수목들은 처음 찾아온 나를 반겨 주는듯하여 그 운치에 사료 잡히고 대첩문(大捷門)을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나라사랑의 마음이 자리를 잡는다.
어느 시대이고 선구자와 위인들은 바다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고 이를 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나보다. 충무공께서도 임진왜란 때 국운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켜 내신 것도 우리나라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이용하여 다스릴 줄 알았기에 승전(勝戰)의 영웅이 되신 것이 아닌가.
만약 임진왜란 때 충무공께서 승전이 없었다면 국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문득 이런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이곳 한산대첩 지와 제승당은 영세불망으로 영원히 조국수호의 정신이 살아 있고 꺼지지 않는 횃불은 햇살과 같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 주고 있을 것이다.
2010,10,28 한산도 제승당 문학기행에서
첫댓글 "국운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켜 내신 것도 3면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이용하여 다스릴 줄 알았기에 승전(勝戰)의 영웅이 되신 것이 아닌가. 만약 임진왜란 때 충무공께서 승전이 없었다면 국운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문득 이런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선생님의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한산섬 풍경에 감탄을 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요.^^
" 공은 노량진 해전(1598,음11.19)에서 전사하면서도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은 그 얼마나 숭고한 호국단충(護國丹忠) 이므로 우리들은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지 않는가.
공은 군술(軍術)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문장력도 띠어난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장군이다. 난중일기, 서간 첩과 많은 시문을 남기고 송나라 역사까지 공부한 특출한 지휘관 이였다. 중국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 모공 편에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白戰百勝)’을 직시하고 실천한 명장 이였다. "
임진 왜란의 역사, 이순신 장군의 보국충정이 환하게 들어내신 글 잘 읽었습니다.
역사공부 할 수 있는 좋은 글 감상 하였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문학 기행을 하시고 탄생한 글...축하 드립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선생님 늘 건강 하소서!
바쁘신 중에도 한 편의 작품을 낳으셧네요 그 열정 존경스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한 편의 역사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잊혀져 가는 우리의 정신을 후세에 남겨 주시는 것 같아 머리가 숙여집니다...감사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의 역사 잘 보았습니다.
문학기행을 다녀오시고 이렇게 꼼꼼하게 기록하신 역사서 같이 귀한 글이군요,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