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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니어 마스크
김학찬
마스크가 우리를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사실事實이나 본심本心이 부직포 따위에 가려질 리 없습니다. 잠깐, 혹시 방역지침을 반대하느냐구요? 아니요, 저는 어떤 사안에 대해 찬성할 용기도, 반대할 지식도 없습니다. 세계는 늘 종말 같지만 사실 굴러갈 수 있을 만큼은 합리적인 상태라고 믿습니다. 덕분에 적당히 한발 물러나서 구경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랬는데, 굳건한 믿음이 있었는데, 마스크를 계속 쓰다 보니까…… 불안합니다. 한 겹 덧대는 걸로 퉁 쳐도 될까…… 고작해야 일이 년이면 끝인 줄 알았는데. 새해가 되어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1월 1일이 오면, 해돋이를 보며 살 뺄 결심이라도 다져야 할 것 같은데, 뭐라도 좋으니 계획과 변화가 필요한데, 또 뭘 해야 할까. 할 수는 있을까. 하지 말까. 하지 말아야 할까…….
어쨌든 벌써 2022년입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첫 문장부터 힘이 들어갔습니다. 좋은 버릇은 지키기 힘들고 나쁜 버릇은 버리지 못하는군요. 마스크는 그저 비말飛沫을 막는 용도일 뿐인데, 쓸 줄도 모르는 한자를 덧붙이고 시답잖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냥 날아오르는 물거품인 줄도 모르고.
마스크가 우리를 가깝게 만든 김에, 먼저 감사부터 표하겠습니다. 가까워질 기회와 만남이 통 어려운 시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는 은혜를 오래 기억하고 원한은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원한…… 특별히 선량한 시민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원한을 품으면 확연하게 티가 나는 정직한 얼굴이거든요. 대신, 거짓말과 속임수 대신 배운 방법이 있습니다.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본 것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됩니다. 어제까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년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지원 덕분에 쓸 수 있었습니다. 2021년 10월 8일 「시니어 마스크」라는 제목으로 사업지원신청서를 냈고, 기획 의도를 썼고, 주요 내용을 썼고, 기존 작품활동을 증빙하는 내용도 첨부했습니다. 파급효과 및 기대효과를 쓸 때는 난감했습니다. 기록이나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데-새삼 이제 와서 또 문학은 무용하기 때문에 유용하다고 써도 될까요. 기존에 추진된 사업과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라는데, 이때까지 내가 써왔던 글은 다 그게 그건데-기존에 추진한 사업도 없는데……. 소재 발굴계획은 뭐라고 할까, 지금이라도 곡괭이 하나 들어야 하나……. 성과 제출(예정)을 지키지 못하면 지원금을 뱉어야 하나, 한 번 내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뱉기는 억울한데…….
아하, 사업지원신청서를 준비했던 과정에 대한 기록 그 자체도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증빙하면 어떨까요. 왜, 지금 하고 있는 작업 말입니다.
진작 이렇게 쓸걸.
먼저 이 사업을 선발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안목에 경의를 표합니다. 서류 작업에 미숙한 예술가들에 대한 배려가 역력한, 복잡하지 않은 사업지원신청서 양식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지원과 아카이빙을 맡을 뿐이며, 지원받은 작품을 다른 곳에 발표할 수 있다는 규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일타쌍피一打雙皮니까요.
사실 쌍피에 어울리는 기관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대한민국예술원입니다. 갑자기 제목을 쌍피로 바꾸고 싶어지지만, 제목까지 바꾸면 행정적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 바로 포기하겠습니다. 그건 또 뭐냐구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대한민국예술원, 그게 그거 아니냐구요?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터넷 도메인 주소에서 or이 들어가면 비영리기관이고 go가 포함되면 정부기관입니다.
못 먹어도 갈 수 있는 go, 대한민국예술원은 종신직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번 입회한 회원들은 죽을 때까지 월 1,800,000원을 받아갑니다. 예술창작에 현저한 공적, 대한민국의 예술을 위한 투신, 종신…….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면 좋겠다고 누가 그랬는데, 지금이라도 후학들에게 시 한 편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실 마음은 없으실까요. 금전적 기회는 자라나는 새싹이나, 분갈이가 필요한 담쟁이들에게 양보하시면 어떨까요. 한 번 선先 잡았다고 혼자만 계속 먹으면 판이 깨집니다. 기존 회원의 찬성으로만 입장 허가가 나는 ‘대한민국예술원 종신직 회원’ 명패로는 충분히 자랑스러우시기 힘드실까요. 혹시 타인의 찬성을 얻어 입장한다는 사실이 민망하지만, 노년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좀 더 배운 뒤 섬세하게 발언하는 게 마땅합니다. 휴, 다행히 대부분의 종신직 회원들은 교수로 정년까지 하신 분들이고, 1,800,000원의 두 배쯤 되는 연금을 받고 있겠지요. 교육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오독과 비틀림의 가치에 따라 후학의 착각을 혜량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독오독, 비틀비틀, 소리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나저나 저에게도 쌍피를 나눠줄 천사는 없을까요? 기관, 기업, 종교계, 학교, 사회단체의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
“이 정도면, 나, 나쁘지는, 않을 걸세.”
최 교수가 피 한 장을 나눠줘서 피박을 면했습니다.
강사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대학 강의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재계약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재계약이라는 제도조차 없었으니까, 채용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당연합니다. 2011년에 개정안이 추진된 강사법은 네 차례에 걸쳐 유예되었다가, 마침내 2019년 2학기부터 시행되었고, 대학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겉으로는 무사안일로 보이지만 대학들도 나름 부지런합니다. 최소한 강사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대학들은 준비를 마쳤습니다. 무늬만 교수인 강의전담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등을 대폭 늘리고 대형강의를 신설했습니다.
오독과 비틀림 하나를 더 보태고자 합니다.
강사법의 취지는 선량했습니다. 강사에게도 교원의 자격을 부여하고, 계약 기간을 학기 단위에서 1년 단위로 개선하고, 최대 3년까지 재계약 기회를 주고, 수업 준비와 채점에도 보수를 지급하고, 방학 동안에도 최소한의 임금을 주고, 맥도널드가 아르바이트생에게도 가입시키는 4대 보험도 들어주고. 1년 단위로 계약하면 퇴직금도.
드디어 교원의 지위를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시간강사’에서 ‘강사’로 변경되었습니다. 교원이 되었으므로 출석부를 제출하기 위해 대학에 갈 때 주차비를 사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강사법 이전에는 종강과 동시에 외부인이 되었는데, 1년 동안은 당당하게, 교원이니까, 도서관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나아진 건…… 강사법의 발효농축엑기스였던 건강보험이 재정 부족을 이유로 빠졌습니다. 신분은 교원이지만 수당이나 상여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교통비나 식대가 지원되는 것도 아닙니다. 퇴직금? 강사법 시행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소송 중입니다. 적극적으로 해석된 최근 판례에 따르면 “1년 이상, 그리고 한 학기에 5학점 이상 강의한 경우”에 한하여 퇴직금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만, 대학들은 판례가 나오기도 전에 한 학기 강의 시수를 5학점 미만으로 줄였습니다. 강사법에서는 계약을 1년 단위로 하라고 했지, 1년 동안 강의를 주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1년에 한 번, 2학점짜리 강의 하나만 배정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다음 학기에 무슨 수업을 얼마나 할지 모르는 건 여전합니다. 강사를, 아니 강의를 합법적으로 줄이거나 쪼갤 수 있습니다. 강의가 없으면, 월급도 없고, 그러나 교원 신분이기는 합니다. 신용카드를 만들 때 당당하게 ‘교원’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또, 수업 준비와 채점에 대한 보수, 방학 중 임금을 모두 합해 2주 치 강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류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강사법은 공개채용을 전제로 하며, 그만큼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이력서, 학부 성적증명서, 석사 성적증명서, 박사 성적증명서, 학부 졸업증명서, 석사 졸업증명서, 박사 졸업증명서, 석사학위논문, 박사학위논문, 최종학위요약본, 연구실적 별쇄본, 연구실적 요약본, 이전 강의경력증명서-강의사실증명서와 강의경력증명서가 다른 대학들도 있고-강의계획서, 자기소개서, 교육철학 기술서, 전업확인서, 각종 자격증 사본, 성범죄 경력 동의서, 학위 지도교수 및 민법 제777조 친인척명단, 저서에 대한 증빙 서류(표지, 초판 부수 증명서 첨부 요망), 모든 서류는 온라인으로 입력 후 출력해서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병적증명서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요구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강사를 채용하는 대학은 선량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객원교수, 겸임교수는 강사법 적용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직함에 교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강사법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강사료의 80%만 지급해도 되고, 방학 중 임금이나 퇴직금도 피해갈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강사보다 싸게 먹힙니다. 부지런히 제도를 정비해 강사를 단 1명만 남겨둔 대학도 전설처럼 존재합니다.
물론 이제 시작입니다. 강사들의 환경을 차차 개선해야 합니다. 하는데, 코로나19가 등장해서 모든 문제를 꿀꺽 삼켰습니다. 비대면수업, 학생들의 이탈, 인구감소로 인한 대학 종말론이 등장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에는 돈이 들어가고, 학생들이 이탈하면 돈이 줄어들고, 대학이 비상시국인데, 겨우 강사법이라구요……? 기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엉망인 강사법을 개선해야 한다>
<사학들은 죄다 도둑놈들이다>
<작은 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다, 모두 대학가를 필요 없다>
<석사 박사도 너무 많다, 학위 장사는 대학 배 불리기다>
<10개 정도 대학만 남기고 문 닫아라!>
아차, 최 교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
2020년 3월 말, 최 교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 불안했습니다. 최 교수의 기침을 따라 하며 사람들을 웃겼던 적이 있거든요. 핵심은 기침과 기침 사이에, 적절하게 죽어가는 듯한, 가느다란 목소리의 떨림에 있었습니다. 신나게 교수들 성대모사를 하다가 어느 술자리였던가, 모 선배의 시선을 느끼고 그만뒀습니다. 눈빛만 움직이는 포커페이스. 다들 자지러지는데 오직 그 선배만,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이, 어디서 가져온 에이스 비스킷을 묵묵히 씹으며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비스킷이 부서질 때마다 날카로운 과자 조각이 불특정한 다수에게 날아갔습니다.
다행히 그저 콜록거리는, 최 교수의 말을 있는 콜록콜록,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쉼표 때문에 읽기 불편할 테니, 친절하게 정리하여 기록하겠습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해라, 어차피 코로나19가 아니라도 사라질 수업이었다. 네 잘못은 아니다, 물론 강의평가가 더 좋았으면 또 모르지만. 물론 강사법 의도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나도 그만한 생각은 있는 교육자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 나왔으니 할 말을 하면, 강사들 입장에서도 꼭 좋은 법인지 잘 모르겠다. 박사들이, 교육자가, 어디 돈 보고 강의하는 그런 사람들도 아닌데. 여하튼 안타깝지만 강의 수가 많이 줄었다. 강좌만 줄이면 학생들이 반발하니까, 이런저런 핑계로 졸업학점도 줄이고, 현실적으로 취업도 어려운데 졸업학점만 많다고 능사는 아니니까. 학생들 취업 준비할 시간도 줘야지. 수업을 줄였으니까 교수도 비례해서 줄이게 되고, 잔인하게 있던 교수를 자를 수는 없으니까 새 교수를 뽑지 않는 쪽으로 가고, 새로 교수를 뽑지 않았으니까 있던 사람들이 수업을 더 해야 한다. 나도 죽을 지경이다. 내일모레면 정년퇴임인데. 선량한 성 교수가 자진해서 내 수업을 맡아줬기에 망정이지. 자네 수업도 성 교수가 자원했던 거, 아, 몰랐나? 그래서 말인데, 코로나 방역 아르바이트는 어떤가? 내가, 어디 가서 아는 척은 안 할 테니. 앉아서 소설도 쓰고. 허허.”
*
최 교수가 던져준 피 한 장 덕분에 피박을 면했습니다. 어차피 이길 수는 없는 판이고, 피박을 면하는 데 필요한 피는 딱 한 장이니까요. 방역요원1이 되어 다시 대학에 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비접촉체온계를 써봤습니다. 36.5℃, 이상적인 체온이 나와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체온이 제 무결함을 증빙해주는 것 같더군요. 하긴, 체온이라도 깔끔하게 나와야 합니다. 쓸데없이 체온이 높게 나오면 시작도 하기 전에 잘릴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평소 기초체온이 높은, 늘 따끈따뜻한 사람이라고 주장해도 씨알이 먹힐 상황이 아닙니다. 국가비상사태니까요.
“티비에서 보셨으니까 어떻게 하는지는 잘 아시죠? 인수인계는 따로 없어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방송만 보는데……. 자리에 앉아 마스크를 눈 가까이 끌어올렸습니다. 아직 쌀쌀했습니다. 금방 안경이 흐려지더군요. 마스크를 벗으려다가 혹시라도 누가 알아볼까 싶어 참았습니다. 흰 방역복은 불편했습니다. 시큼한 냄새도 나고, 바이러스를 막아주기보다 접근 자체를 하지 말라는 표시 같기도 해서. 몰래 밥 주던 고양이마저 호다닥 도망가더군요. 이름을 망덕背恩忘德으로 바꿔야겠습니다.
대학은 폐쇄 카드를 꺼냈습니다. 단과대학 건물별로 다른 문은 모두 닫고, 오직 출입구 하나만 남겼습니다. 오가는 사람의 체온을 측정하고, 기록해서, 유일무이한 출입구를 지키는 게 제게 떨어진 임무입니다. 아침 아홉 시까지 인문관 정문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했습니다. 문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문이 곧 근무지라니 어색하긴 했지만, 경계에 놓여있다는 점도 어쩐지 매력적이고, 직주근접職住近接, 그만큼 출퇴근 시간이 효율화되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물건이 하나씩 늘었습니다. 강사일 때는 고정된 공간이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살림 늘리는 재미가 이런 걸까요. 처음에는 강당에서 쓰는 갈색 접는 의자를, 다음 날은 빈 강의실에서 작은 책상을 두 개를 더 가져와 손소독제를 비치했습니다. USB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5V짜리 자동손소독제분사기도 설치했습니다. 충전기 중국산 보조배터리 십 년째 쓰고 있는 노트북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머그컵 세 개 어디서 빌려 신은 슬리퍼 분홍색 휴대용 선풍기 무엇보다 중요한 하리보 젤리를 챙겼습니다. 누가 강의실에 버리고 간 도넛 모양의 치질 방석도 주워오고 낮은 책상을 보완하기 위한 쿠션도 두 개 챙겼습니다. 강당 의자를 강의실 의자로 슬쩍 바꿔치기하니 살만했습니다. 이미 책상을 가져와서 의자가 빠진 표가 안 나더군요. 방역수칙이 적힌 팻말이 하나 서고, 여름이 지나갈 때가 되니 비접촉체온계 대신 자동얼굴인식체온계가 생겼습니다. 자동얼굴인식체온계는 편하지만,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을 잡아내질 않나, 분명히 마스크를 썼는데도 단호하게 “마스크를 정상 착용해 주십시오”라고 명령하질 않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자동얼굴인식체온계가 있는데 굳이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하겠어? 라는 의문이 들면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아직까지 검정색 마스크를 쓰면 인식률이 떨어집니다.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의 검은 속이 들킨 게 아니라, 마스크 색깔 하나 구분 못 하는 인공지능의 한계 탓이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도 있으니 아침에 한 번 체온을 측정하면 하루 종일 통과할 수 있는 스티커 패스 제도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스티커를 직접 배부하다가 나중에는 책상 위에 올려두면 알아서 가져가게 바뀌었습니다. 비대면이 중요하니까요. 코로나19 대유행이 지나가고, 또 유행이 오고, 추워지고, 청소 아주머님이 어디서 전열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최 교수는 약속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 날, 지나가다 물끄러미 제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총무과에 전화를 하더군요. 곧 작은 천막 하나가 생겼습니다. 최 교수는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도 학교에는 꼬박꼬박 KF99 마스크를 쓰고 나왔습니다. 저러다 코로나19가 아니라 호흡곤란으로 먼저 돌아가실 것 같았지만, 천막을 구해주었으니까 앞으로 성대모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진심입니다.
*
방역 요원을 교대로 두는 건 사치입니다. 방역 요원을 두는 것도 다 돈이라고 대학원 조교나 계약직 직원들을 동원하는 단과대도 있었습니다. 여기 앉아서도 노트북으로 기본적인 행정은 볼 수 있다나요. 그나마 인문관에 방역 아르바이트생을 따로 채용한 건 단과대 회의에서, 최 교수가 인문관의 안전을 사수해야 한다고 결사적으로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방역 요원을 볼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강단, 아니 강당에 모일 때면 마스크를 눈까지 끌어 썼습니다. 서술자의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하니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습니다. 2020년 1학기는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되어서 하루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습니다. 비대면 개강도 가까스로 3월 말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부스, 엠티, 축제, 주점은 사라졌습니다. 갑작스럽게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학교 행정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덕분에 방역 요원에게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2학기는 재빠르게 비대면 수업으로 개강하는 것만으로도 대학들은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순식간에 일 년이 지나갔습니다.
슬쩍 마스크를 내리고 앉아있는 시간도 늘어나고, 처음에는 작정하고 책이라도 좀 읽었는데, 일 년 동안 뭘 했느냐면, 방역을 철두철미하게 완수하기 위하여…….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바꿨습니다. 구형 스마트폰으로는 시간 보내기가 힘들더군요. 스마트폰이 느린 만큼 시간도 더디게 갔습니다. 방역 요원은 학교 와이파이망에 접속할 권한이 없어서 전산실에 문의했습니다. 누구냐고 묻더니 한숨을 쉬면서 그런 걸로는 사람 귀찮게 하지 말라더군요. 어쩔 수 없이 와이파이를 포기하고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으로 바꿨습니다.
“전작? 실례합니다, 전 선생 아니야? 아니지, 전 작가가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는데,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응, 아니세요? 에이, 설마, 설마가 맞네. 랜만이다 우리, 그치?”
방역 모자까지 눌러썼는데도 알아보는군요. 성 선배는 코로나19와 함께 성 교수로 진화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학과 교수 다섯 명이 퇴직할 동안 한 명도 충원이 없었는데, 그 깜깜한 구멍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저 멀리 인간승리가 까딱까딱 손짓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습니다. 따라오라는 신호 같은데,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고 먼저 올라갔으니 확신할 순 없습니다. 어쩐지 성 교수 성대모사를 하고 싶어집니다. 최 교수처럼 무분별한 성대모사는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냐구요? 괜찮습니다. 성 교수는 다른 자리에서 “걔는 도통 생각이란 게 없잖아.”라고 했거든요. 증거요? 증인이 있습니다. 방역 요원 일을 시작할 때, 존경하는 최 교수님이 “자, 자네 혹시 성, 성 교수한테 호호혹시 뭐 미, 밉보인 거 있나? 조, 조심해.” 라고 덧붙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요. 성 교수는 믹스커피와 에이스를 내왔습니다. 성 교수의 주머니를 털어보면 에이스 한 개쯤은 나올 겁니다. 에이스만 먹고사는 연구자라. 일종의 상징이나 메타포, 그런 걸까요.
“최 교수님께 들었어. 그래, 할 만해?”
“형, 아니 선배님, 아니 교수님은 요즘 좀 어떠세요, 많이 바쁘시죠?”
“갑자기 왜 이래, 학교 밖에서는 편하게 하던 대로 형이라고 불러. 우리 사이에 교수님은 무슨 또 교수님이야. 그래도 교내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부를 줄도 알고, 역시 전 선생이 감각이, 감각이 있어. 하긴, 우리 전작이 또 관찰력 하나는 끝내주잖아. 그치?”
“그, 그렇죠. 늘 열심히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말도 마, 일이란 일은 다 나한테 몰린다. 더러워서 진짜. 게다가 다섯 과목 하느라 죽을 지경이다. 한류문화읽기, 4차문학혁명세미나, 창업콘텐츠입문, 융합콘텐츠심화, 장편소설창작론까지 하잖아. 참, 장편소설창작론 네가 하던 거지?”
“그, 그랬죠. 저저저저저저번 학기까지는…….”
“인마, 적당하게 하지, 뭘 그렇게 길게 했어? 너 눈높이 맞추는 것도 다 교육이다? 어릴 때 눈높이교육 안 받아봤구나? 그러니까 평가가 안 나오는 거야. 너한테만 해주는 말인데, 학생들 반응만 좀 더 나왔으면 말야, 형이 너 생각해서, 최 교수님께 말 좀 잘해보려다가, 응, 장편소설이나 4차 문학혁명은 너한테 줄 수도 있었는데. 중요한 건 데이터야. 증거가, 증거가 있어야 실적으로 쳐줄 거 아냐.”
“그러셨군요. 교수님, 저는 또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아니다, 내가 말을 함부로 했네, 함부로 했어. 우리 전 작가, 또 글 하나는 좋은데, 강의 그거 한두 개 맡아봐야 손에 얼마나 쥔다고. 강사료보다 지금 아르바이트가 두세 배는 더 떨어질걸? 그치? 가만히 앉아있으니까 글쓰기도 좋고, 혹시 알아, 소재라도 하나 건질지. 우리 전 작가가 소재 잡아가는 감각은 또 있으니까. 성훈아, 내가 네 작품 기대하는 거 알지? 파이팅!”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연구실 문을 나가는데, 성 교수는 글 쓰면서 먹으라고 에이스 두 개를 던져줬습니다.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게 바스락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애초에 성 선배는 달랐습니다. 모교 출신, 남자, 학부 4학년 때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까지. 게다가, 결정적으로, 영리하고 부지런했습니다. 평론은 박사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만 쓰고 그 뒤로는 논문만 팠습니다. 둘 다 욕심내면 망한다나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평론은 일 년에 한두 편만 발표할 뿐, 모든 역량을 교수 임용에 필요한 소논문 게재와 학회 활동에만 집중했습니다. 집에서 낮잠을 잘 때도 머리를 모교 방향으로만 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성 선배를 좋아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정확하고 다정하게 글을 쓴다고. 글에 대한 태도가 남다르다고. 맞습니다. 성 선배는 태도가 남다릅니다. 성 선배는 선생님들이 있는 술자리에 꼬박꼬박 참석했고, 부담스럽지 않게 알아서 계산을 마쳤고, 재빠르게 택시를 잡았습니다. 성 선배 입장에서는 무릇 모든 선생님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예술원처럼, 교수 임용은 학과 교수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니까요. 성 선배는 동의나 재청과 무관한 사람들, 그러니까 후배들과는 술자리 자체를 갖지 않았고, 커피를 마셔도 정확하게 1/N을 했고,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하는 후배에게 신입생이냐고 물었고, 제 이름은 전성훈이 아니라 한성운인데, 정말 한성운인데, 어디서부터 착각하는 걸까, 아닌데, 교과목명을 제대로 말하는 걸 봐서 착각이 아닌데, 설마…….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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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시설이 망가졌습니다. 교내 서점은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했습니다. 당장 대면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교재는 인터넷 서점에서 사야 합니다. 인쇄소들도 도미노처럼 우르르 망했습니다. 비대면 수업에서 유인물이 어디 있고 자료집이 왜 필요하고 대자보는 누가 쓰고 광고전단지를 누가 붙이겠습니까. 덩달아 목소리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교내 식당 두 개가 계약 기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편의점 세 군데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자판기도 사라졌습니다. 방역지침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고 최소한의 전기세와 설비값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라는 말도 돌았습니다. 정수기도 의심스러웠습니다. 한 번도 관리하는 광경을 보질 못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필터를 갈고 가는 것일까요. 그 상상은 더 슬프고 무섭습니다. 살짝 녹색 빛이 도는 정수기 물을 버리고 정문에서 다시 십 분은 걸어가서 생수와 고양이 사료를 사왔습니다. 학교 근처 편의점도 차차 문을 닫았거든요. 나중에는 건물 입구로 생수 한 박스를 주문했습니다. 학교를 담당하던 택배 아저씨의 얼굴도 상해 있었습니다.
자퇴하는 1, 2학년 학생들이 급속하게 늘었습니다.
자퇴를 줄이기 위해 2021년 1학기에는 부분적으로나마 대면 수업이 실시되었습니다. 40명 미만 과목에 한해서, 거리두기가 가능한 강의실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붙잡기 위한 학교의 의지는 강력했습니다. 명문대학교들은 학교 상징이나 교훈이 들어간 기념물을 나눠줬습니다. 자부심을 갖고 부디 재수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마음일 겁니다. 등록한 신입생 전원에게 아이폰과 에어팟을 나눠주는 대학도 나왔습니다. 모교가 그랬습니다. 공고 밑에는 작은 글씨로 제세공과금은 개별 납부이고, 1학기를 마치지 않을 경우 기기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2학기를 등록하는 신입생에 한해 추첨을 통해 맥북을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장기등록자에 한해 등록금의 일부를 캐시백해줄지도 모릅니다. 휴대전화 같이 약정 제도가 생길지도 모르고요. 고객님, 지금 이 (할인된) 등록금은 어디까지나 8학기를 등록할 경우에 해당하고요, 중도해지할 경우 할인받은 금액을 토해내셔야 합니다. 혹시 추천인은 없으신가요? 가족이 함께 등록하시면 할인요금제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형제는 물론, 부모님도 가능합니다. 할아버지도 환영합니다.
3, 4학년들은 흐지부지 방치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지속될 줄 알았다면 3학년들도 다시 입시를 치르거나 다른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2020년에는, 백신만 나오면 어떻게 될 줄 알았으니까요. 3학년들은 곧 졸업반이니까 어쩔 수 없었고, 얼결에 졸업사진도 못 찍고 졸업하게 된 4학년들은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잡은 물고기에게 떡밥을 왜 나눠줍니까. 약정 중인 고객에게 추가 할인을 먼저 제안하는 통신사를 본 적 있습니까? 급한 건, 중요한 사업은 망설이는 물고기들을 자리에 앉혀 화투판을 돌리고, 자릿값을 받고, 박카스를 파는 겁니다. 야반도주도 잽싸야 할 수 있습니다.
참, 아버지는 여전히 제가 출강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고 수입이 늘어나니 예전보다 더 많은 수업을 맡았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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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학생들이 내 수업을 가져간, 빼앗아 간, 맡은 성 교수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이야기해라, 얼마든지 기록해주겠다. 성 교수에 대한 악평을 부풀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이 많아진 성 교수는 반드시 실수할 겁니다. 성 교수가 그랬듯이, 버티는 사람이 최후에 웃을 수 있습니다. 기다리면 기회는 옵니다. 학생들은 수업 내내 꾹 참았던 말들을 건물을 나서면서 토로할 것이고, 그들에게 방역 요원 1은 보이지 않는 사람일 테니까요. 마스크가 말을 없애는 건 아니니까요. 여과 없는 기록을, 검열 없는 진실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어…….
남길 게 없었습니다.
투명하게 아무 말도 없더군요. 한 학기 동안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마치 성 교수도, 수업도 없었던 것처럼 지냈습니다. 엉망만 아니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던 겁니다. 2021년 2학기가 끝날 무렵에야 눈치챘습니다. 경계는 면面이 아니라 선線입니다. 경계 그 자체에 놓이면 경계를 읽을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하긴, 저는 늘 조금씩 늦으니까요.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 K가 체온계를 빠르게 지나갑니다. 마스크를 써도 알아볼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측정이 되는데, 불러 세워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K가 생각에 골몰한 표정이라 차마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과제로 발표한 작품이 너무 좋아서, 4년 정도 더 시만 쓰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더니 한숨을 쉬더니 선생님, 취직은요? 했던 K입니다.
진심이었는데…….
지금이라도 시를 더 써보라고 응원해줘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뒤따라 나갔습니다. 좀 더 진실하게 다시 알려주면 계속 시를 쓸지도 모르니까요. K는 보이지 않고 귀퉁이에서 화가 난 최 교수가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본능적으로 기둥 뒤로 숨었습니다. 역시, 콜록콜록 최 교수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면 불편하니, 한 번 필터를 거치겠습니다.
“교수 주차장에 고양이 밥 주는 놈 잡히기만 해봐, 일부러 그런다니까, 뭐? 성 교수는 비정년트랙이야. 그래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뭐? 괘씸하게 자네 대학에 원서를 냈다고? 그 말 많은 놈이 나한테는 상의도 없이? 안돼, 고얀 놈, 내가 교수시켜줬더니, 다 내가 만들어준 자리인데, 쓸데없는 일이나 하고, 이건 배신이야. 어떻게 하냐고? 왜 이래, 잘 알면서. 마땅한 사람 있으면 하나 골라서 추천해줘. 응, 나도 준비를 해야지. 퇴임하고 자리 하나 마련하려면, 그래그래.”
한결같이 도서관에서 조용히 논문만 쓰던 성 선배는 마흔아홉 살 때 마침내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되자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졌습니다. 기실 말이 많아진 건 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가리지 않았다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성 교수와 만나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습니다. 마침내 미쳤다는 주장과 임용이 되었으니 미치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냐는 학설이 대립했습니다.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대체 뭐가 변했냐는 기우뚱과 글과 사람은 응당 달라도 괜찮다는 주장과 진작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의견이 혀를 찼습니다.
변해버린 성 교수에 대한 여러 가설 중,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비정년트랙은 교수 충원율은 만족시키면서 절반의 연봉만 줘도 됩니다. 돈 안 되는 학과는, 돈 주기 싫은 학과는 대놓고 비정년트랙을 고용해도 괜찮다는 해석입니다. 교육부가 정한 최저임금 3,099만원 이상만 주면 불법은 아니까요. 연봉 인상은 거의 없지만 실적과 평가는 엄중하게 일이 년마다 이루어집니다. 재계약이라는 족쇄로 학과에서 하기 싫은 모든 일을 미뤄도 됩니다. 학과 평가에 필요한 논문, 수업, 행정 모두 맡겨도 어쩔 수 없고 두 명부터 여덟 명까지 쓰는 공동 연구실도 흔합니다. 학생이나 비정년트랙 교수나 학교 옮길 생각에 골몰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지원금을 받으면 기록해보겠습니다.
슬슬 접어야겠습니다.
사업지원신청서에는 “유머러스하게 그릴 것”이라고 썼습니다. 틀렸습니다. 유머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강사 문제를 구조적으로 포착할 것”이라고, “이제 일상이 된 ‘출입 경계’의 광경을 포착”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구조는 약하고 포착은 어설프군요. 또 실패했냐구요? 그럴 리가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감했습니다. 한두 번 잃어본 게 아니니까요. 서너 번 더 잃어도 저는 판을 떠나지 않습니다. 알짱알짱, 구경하다 슬쩍 끼어들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조망이 아니라 파편을 쓸어 모으는 것이니까요. 이럴 줄 알고 아까 어느 선생의 말을 빌렸을까요. 이건 텍스트의 본질이고 운명이라고 둘러대고 싶어서.
그렇게 읽는 건 오독이라구요?
제가 그렇지요, 뭘.
오독이면 어떻고 오뚝이면 저떻습니까.
강사가 직업인 경우가 있고, 마지못해 맡는 사례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교수가 되기 위해 잠시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노동의 가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침묵을 미덕으로 간주하는 전공이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할 말은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떠나는 사람이 있고, 한마디를 하고 싶지만 걱정이 태산 같은 사람이 있고, 열 마디를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고 자포자기한 사람이 있고, 강사 노조를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달라서, 강사의 법칙에 대해 말하는 건, 마치 창작의 원칙을 설명하는 소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강사법 시행과 동시에 학위를 받은 연구자 중에서는,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강의경력을 갖고있는 사람은 없는데, 많은 대학이 강사를 뽑을 때 기존 강의경력을 요구했으니까요. 강의도 했고, 방역 요원 1이라도 된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2022년 1학기가 지나면 강사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됩니다. 코로나19 상황은 2년 반이 되고요. 강사법도, 코로나19도,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도 여전하고, 요원합니다. 부디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이 글이 발표되는 시점에는 강사법과 코로나19와 대한민국예술원법이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전염병 종식과 무관하게, 계속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예술원 분과마다 입장이 달라서 어쩔 수 없다면, 문학 분과가 먼저 분연히 먼저 모범을 보이시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아직까지 죽지 않았어! 대학은, 그래도 교육하는 곳이야! 하면 폼 나지 않겠습니까. 다 같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여야 멀찍이 구경만 하던 사람도 한 판 낄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인싸끼리만 해 먹으면 오래 못 갑니다. 개평과 깍두기라는 미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또 뭘 해야 할까, 할 수는 있을까, 조용히 털고 일어날까.
우선 계속 써보겠습니다.
읍읍, 여전히 하지 못한 말이 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