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옆에 위치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에 가봐야 할 또 하나의 명소이다. 국내 최고의 미술품 컬렉터로 꼽히는 (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이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는 뮤지엄 프로젝트로 버려진 건물을 활용해 전시관을 만든 점이 눈길을 끈다. 전시 작품들 또한 수준급이다. 세계적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을 비롯해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 탑동에 들어선 아라리오뮤지엄
아라리오 컬렉션이 펼쳐지는 곳, 탑동시네마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은 탑동시네마, 동문모텔Ⅰ, 동문모텔 Ⅱ 3개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언뜻 듣기에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름들이다. 여기엔 ‘보존’과 ‘창조’라는 아라리오뮤지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옛 건물이 간직한 역사 위에 예술이라는 창조적인 옷을 입혀 서로 공존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개발에 밀려 쇠퇴한 원도심을 문화예술을 통해 되살려보자는 희망찬 꿈이 녹아 있다.
예전 건물에 붙은 타일을 떼지 않고 그대로 살려 두었다
아라리오뮤지엄의 주전시관 격인 탑동시네마는 2005년 폐관된 시네마극장 건물을 활용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영화’라는 과거의 추억과 또 다른 예술 형태인 ‘미술’을 담은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칙칙한 외관은 컬러풀한 색감으로 갈아입고 내부는 전시 관람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보수만을 진행했다. 덕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특한 전시관이 만들어졌다. 건물 곳곳에 남아 있는 옛 영화관의 흔적마저 시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
마치 작품처럼 보이는 옛 건물의 흔적들
탑동시네마에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김창일 회장이 오랜 시간 수집해온 개인 컬렉션이다. 35년간 수집한 3,700여 점의 현대미술 작품들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소개할 계획이다. 탑동시네마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는 전시관으로, 5층은 카페와 뮤지엄숍으로 꾸며졌다.
탑동시네마 5층은 카페와 뮤지엄숍으로 꾸며졌다
탑동시네마에 들어서면 정면에 전시되어 있는 코헤이 나와의 <사슴가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언뜻 보기엔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털 작품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안에 굴절되어 보이는 사슴털을 발견할 수 있다. 박제된 사슴 표면에 투명한 크리스털 구슬을 덮어 실재하는 존재가 디지털 픽셀처럼 보인다.
코헤이 나와의 <사슴가족>
중국 작가인 장환의 <영웅 No.2>는 규모에서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의 작품은 거인이 앉아 있는 형상이다. 소가죽을 기워 만들어 기이해 보이는 한편,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소가죽을 소재로 한 장환의 <영웅 No.2>
이곳에는 한국 작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새하얀 얼굴 형태에 작가의 의식을 입힌 김인배 작가의 <델러 혼 데이니>는 보면 볼수록 묘한 궁금증이 일며 작품에서 발견되는 의외성에 배시시 웃음마저 난다.
김인배 작가의 <델러 혼 데이니>
김병호 작가의 <방사형 분출>은 전자기판에서 끊임없이 퍼져 나오는 주파수 소리가 지하 1층이라는 공간의 이미지와 어우러지며 신비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김병호 작가의 <방사형 분출>
CI Kim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김창일 회장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제주 바다에 버려진 사물로 만든 자화상을 비롯해 의외의 장소에서 그의 소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창일 회장이 직접 만든 작품들
독일 현대미술계의 거장 지그마르 폴케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지그마르 폴케의 거대한 회화 작품들
여기가 미술관이야? 동문모텔Ⅰ
동문모텔Ⅰ은 동문재래시장과 멀지 않은 산지천 맞은편 골목에 있다. 탑동시네마에서 차로 5분,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처음 방문하면 누구나 “여기가 미술관이야?”라고 되물을 정도로 위치도 건물도 다소 뜬금없다. “제대로 찾아온 걸까” 하는 불안감에 허름한 골목 안에 들어선 이 공간을 다시 찬찬히 올려다본다. 순간, 문화와 예술은 늘 멋지고 좋은 곳에 걸려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통렬히 깨진다. 어떻게 보면 동문모텔Ⅰ 관람은 자신의 내면에 뿌리내린 갖가지 통념을 떨쳐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기존 모텔 건물을 활용한 전시관 내부
한때 병원이었고 또 여관이었던 건물은 그 어떤 전시관보다 특색 있고 개성적이다. 객실 공간을 그대로 살려 그 안에 다채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특히 모텔이었을 당시 건물이 품고 있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만든 아오노 후미아키의 <동문모텔에서 꾼 꿈>이 꽤나 인상 깊다.
제이크 &디노스 채프만 형제의 작품
한 층씩 차례로 관람을 마치면 어느새 탁 트인 옥외 공간에 이른다. 제주 구시가지가 보이는 카페는 작품 감상의 여운을 누리기에 좋다. 좀더 깊이 있는 작품 관람을 원한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된다. 탑동시네마의 경우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큐레이터 전시 투어를 진행한다.
2층에 운영 중인 탑동왕돈까스
아라리오뮤지엄은 전시관과 더불어 예쁜 기념품이 가득한 뮤지엄숍과 베이커리, 카페, 수제 맥주집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 하루 여행 코스로 잡아도 부족함이 없다.
여행정보
제주 아라리오뮤지엄(www.arariomuseum.org) 탑동시네마 : 제주 제주시 탑동로 14 / 064-720-8201 동문모텔 : 제주 제주시 산지로 37-5 / 064-720-8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