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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짜맞춘 시, 시로 보이기 위해 안달하는 시, 쓰는 사람 스스로도 재미 없을 그런 시를 읽는 일은 피곤하다. 해묵은 사회적 낭비. 기성 양복을 입은 듯한 말씨만 번잡스럽다. 이즈음 평균 취향이 그렇다며 넘기고 말기에는 씁쓸할 따름. 신춘문예 당선을 겨냥한 신인이라면 자기 목소리를 갖고자 고심한 흔적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마지막까지 남은 세 편을 두고 뽑는 이는 그 점을 먼저 살폈다. |
(수필심사평)
경향 각지에서 응모된 수백 편의 작품 가운데, 수필 ‘빗’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화자에 있어서 빗은 단순히 머리를 빗는 도구라기보다 마음을 가다듬는 삶의 지팡이가 된다. 머리를 빗는다는 것, 즉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나침반이 된다. 그래서 빗은 화자에 있어서 ‘삶의 궤적과 사랑의 세월을 들여다보는 거울과 같은 것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즉 만병통치와 같은 요술방망이가 된다. 빗에 대한 비유영역을 보면 추억과 회한과 그리움을 빚어내는 조그만 현악기, 시대 양식의 상징, 세상 풍진을 밀어내는 도구, 생의 헛간에 던져 놓은 풀리지 않는 실마리, 여인의 품위를 다듬는 도구, 어머니의 생채기를 따뜻이 어루만져 주는 도구 등 다양하다.
화자는 빗질을 하는 것이, 곧 마음을 다듬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신의 혼을 일깨우는 행위가 되는 동시에 삶의 의지, 그 궁극적 영혼을 부르는 의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화자가 ‘빗’이라는 작은 사물 하나를 두고 이처럼 깊은 상상력을 동원한 실례를 보기 드문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문학작품에 있어서 비유는 바로 창작상의 가장 으뜸 가는 기교인 까닭에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설명할 나위도 없는 일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화자에게는 이 빗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 풍진을 다 밀어낼 뿐 아니라, 불안과 쓰라림을 오뇌처럼 벗어버리게 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생채기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뿐 아니라, 영혼까지 정돈해주니, 화자에 있어서 빗은 요술방망이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삼손과 델릴라’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삼손이 가진 괴력에 가까운 힘이 바로 그의 머리칼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빗은 머리의 정돈 즉 정신을 가다듬는 수순이 된다. 그 일은 곧 인간적 삶의 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 수필은 비유와 상징을 통한 인간의 본질적 생명력의 환기, 그 본질을 우리들에게 환기시켜주고 있는 수작이다.
<심사위원 하길남·장성진>
(동화심사평)
응모해 온 많은 작품들 중 우선 여섯 편(‘아라 백련의 꿈’ ‘코코와 눈길’ ‘내 친구는 왕따’ ‘아빠의 똥’ ‘빨간 리본이 달린 모자‘ ‘아빠의 본두’)의 동화를 예심의 자리에 올려놓고 작품이 지닌 저마다의 좋은 점들을 찾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여섯 편의 작품은 저마다 동화의 특질을 알고 동화가 지녀야 할 사람의 체온을 마디마디에 잘 연결해 낸 점을 높이 칭찬했다. 거듭 숙의하고, 숙의한 끝에 ‘코코와 눈길’,‘아빠의 본두’ 두 편을 뽑아 놓고 작품의 진가를 평균율로 잡기 시작했다.
‘코코와 눈길’은 저학년 동화로 너구리와 여우를 대립시켜 반전과 갈등을 이어 눈 오는 날의 산속 풍경을 맛깔나게 그려 한 편의 그림동화로 내세워도 흠은 없으나, 신춘문예 등용이라는 통과례에는 어딘가 연약하다는 느낌을 줘 안타깝게 내려놓고 말았다.
당선작 ‘아빠의 본두’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노동을 서사성과 사람이 지녀야 할 따뜻한 품성으로 거침없이 그려낸 작가적인 그 기량이 돋보였다. 우리는 명실상부 다문화 속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어느 시골, 이른 봄 볍씨를 뿌리는 작업과정에서 일손이 모자라 일손을 빌려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용역업체에 연락해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을 한다. 작업을 하면서 흘리는 땀의 색깔이나, 소금의 맛과 노동의 거친 숨소리는 같으나, 내뱉는 말은 서로의 모국어다. 주인공 성수의 아버지와 가까워진 하킴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이다. 성수 아버지는 3년 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잃는 아픔을 겪는다. 성수 아버지와 하킴이 이어내는 삶의 정경은 리얼리티이나 작가가 그려내는 서사의 한 마당, 한 마당이 묘한 환상성을 불러내는 특장을 지녔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본두’는 방글라데시 말로 친구다.
“아버지의 본두(친구)”하고 입에 올리면 비온 뒤 산과 산을 이어주는 무지개처럼 야릇한 친근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동화의 본성에는 아니, 문학의 본성에는 순연한 휴머니티가 내재되어야 한다면, 당선작 ‘아빠의 본두’는 땀 흘리며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의 올곧은 정신이 오늘에서 미래에까지 밝음을 유열성으로 시사하고 있다. 작품 전면에 도도하게 흐르는 이야기의 살과 뼈대가 강건하여, 앞으로 좋은 동화를 생산할 수 있는 그 가능성과 그 역량이 얼비친다. 문운이 장구하기를….
<심사위원 임신행·배익천>
(소설심사평)
예심을 거쳐온 열 편의 작품 중에서 ‘프리 스페이스’와 ‘바다엔 쿠로마구로가 산다’ 두 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프리 스페이스’는 포르말린 용액에 담갔다가 꺼낸 듯 비정한 문체로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도시생활자의 고독과 구원받을 수 없는 개인의 권태를 빙고게임으로 치밀하게 기호화한 소설이다. 인간이 기계가 되는 첫 단계가 도시직장인이라는 경고가 떠오르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플롯의 동력 역시 인물의 내면 변화나 외부 요인이 아니라 게임과의 기계적 일치와 동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성의 부족과 부자연성은 이 소설의 필연적이고 의도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다엔…’은 평생 참치를 따라 원양어선을 타고 나섰던 아버지가 사라진 뒤, 부재하는 아버지를 축으로 할머니를 비롯한 여인 3대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적, 우화적 기법으로 그려냈다. 쿠로마구로라는 하나의 단어로써 아버지와, 엄마와 할머니가 노동하는 수레와, 바다와 현실의 삶을 꿰뚫어 얽어 연결한 솜씨가 만만치 않고 또 감상에 빠지지 않게 이끄는 유려한 문장과 맹렬하게 살아가는 세 여인의 건강한 태도가 아름답다. 그러나 우화적 소설기법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문학에서 트렌드가 된 탓에 화법 자체가 이미 식상한 점이 아쉬웠다. 현실을 의도적으로 비켜나는 시적, 우화적인 소설일수록 과녁이 분명해야 하는데 환상과 상상으로 소설의 대부분이 채워지면서 전체가 낭만적으로 흘러버린 것도 흠이다.
서로 다른 성향의 소설을 놓고 숙고를 한 뒤 ‘프리 스페이스’를 뽑았다. ‘바다엔…’의 낙천성보다는 현실적 문제성과 긴장을 선택한 셈이다. 또 다른 하나는 ‘프리 스페이스’의 신선함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였다.
당선자는 앞으로도 바로 우리의 일상을 현재형으로 더욱 치열하게 그려내어 개성적인 리얼리티를 구축하고, 독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명형대·전경린>
(시조심사평)
임진년 새해를 맞아 또 한 사람의 촉망되는 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 우린 신중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치열한 습작과정을 통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자연서정과 영탄, 설익은 관조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아 군계일학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결심에서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인재의 ‘그 동전, 은유의 무게’, 구애영의 ‘유빙(流氷)을 바라보며’, 최승관의 ‘바다, 그 두려운 갈망’, 유선철의 ‘바람의 뼈’ 등 4편이었다.
‘그 동전, 은유의 무게’는 첫째 둘째 수에선 형식 속에서 담담히 서정을 풀어가는 솜씨에 눈길이 갔는데, 셋째 넷째 수에 오면서 절제를 잃고 감정과잉을 낳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함께한 응모작들 역시 그런 약점을 드러내는데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좋은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유빙(流氷)을 바라보며’는 적절한 비유를 차용해 와 결빙의 퍼즐처럼 뻗어나가는 심상들에 근접시키려 했으나 시조 특유의 축약과 가락을 잃고 있어 이 또한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맨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으로는 ‘바다, 그 두려운 갈망’과 ‘바람의 뼈’였다. 앞의 작품은 보내온 작품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보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아는 장점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적확한 이미지를 얻지 못함으로써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는 데 실패하고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바람의 뼈’는 시조가 필연적으로 가져야 하는 함축과 가락을 안으로 잘 갈무리하고 있어 안정적으로 정형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용 작품이 아닌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어 신뢰를 갖게 한다. 이런 안정감은 반대로 날선 시대를 향한 시대정신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당부를 빌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민다. 한국 시조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대성하기를 바라며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하순희·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