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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가복음 1:16-20
사람들은 누구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지 알지 못하고 인생의 허무를 느끼며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또 현실에 얽매여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아무 열매 없이 허무하게 인생을 마칩니다. 우리 인생은 고귀합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고귀한 인생을 무가치하게 허송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의 메시지는 죄로 인해 고통하는 인생들에게 구원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는 단순하지만 생명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론이나 논쟁이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후 하나님 나라를 건국할 일꾼들을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먹고 살아야 하다 보니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물고기를 많이 잡아 많은 돈을 버는 것이였습니다. 그들은 그 돈으로 더 큰 배도 사고 아파트를 한 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갈릴리 수협 조합장이 되는 것이 꿈이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7). 지금까지는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잘 잡는 선배들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고기잡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고기잡는 법에 대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으며 유능한 어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따르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모델로 삼고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버지를 따릅니다. 어떤 분은 인상이 좋았던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고 따릅니다. 또 주위의 가까운 친척이나 인기연예인을 따르기도 합니다. 그들의 경험담이나 철학을 들으며 그들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자기 욕심을 따라 삽니다. 저는 과거 홍콩 배우 이소룡을 많이 따랐습니다. 아마 저가 계속 그를 따랐다면 겉멋과 허세에 들려 쌍절곤만 돌리고 다녔을 것입니다. 대학시절에는 현대 단전호흡의 원조인 우학도인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격과 사랑을 갖춘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때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면 어떤 사람이 되게 하십니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먹고 살기위하여 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 낚는 어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라 합니다. 괴로움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삶 자체가 고생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각종 죄악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먹고 마시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낚는 어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복음의 그물로 낚아 살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소유를 위한 삶과 존재를 위한 삶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목적인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 소유하고자 합니다. 사랑, 돈, 명예, 땅, 권력, 지식 등 닥치는대로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해 지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소유의 량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으로 많이 소유할지라도 채우면 채울수록 목말라질 뿐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이란 존재를 위한 삶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소유욕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영혼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삶입니다.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의 삶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의 삶은 이 땅에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이 보장된 삶입니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요, 글로벌 리더로 키우시고자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현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현재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꾀죄죄합니다. 베드로나 안드레가 장차 위대한 스승이 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지 모릅니다. 이들은 멸시받던 갈릴리 촌사람들이요 무식한 어부들입니다. 이들은 심한 갈릴리 사투리를 썼습니다. 또 이들은 바리새대학을 나온 것도 아닙니다. 군벌이나 재벌 출신도 아닙니다. 신학을 한 사람들도 더더욱 아닙니다. 신앙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리더쉽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땀흘려 일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였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위대한 소망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현재는 부족하지만 장차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고 믿음의 스승들이 될 것을 믿고 크신 뜻을 두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고전1:27) 이 소망의 주님께서 어부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예수님의 일시적인 기분이나 감정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즉흥적으로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부 베드로에게 이 주님의 부르심이 없었더라면 그는 일생 썩을 양식만을 위해 살다가 의미 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실 때 먼저 "나를 따라 오라"(Come, follow me)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즉 자기를 중심한 삶에서 예수님을 중심한 삶에로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이 때까지 갈릴리 바다라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성실히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순전히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때 행복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면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삶은 근본적으로 죄악된 삶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중심한 삶에서 예수님을 중심한 삶으로 삶의 중심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한 삶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제자로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잠깐 와서 은혜 받고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일생 동안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 제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 의 삶은 생활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 공부하는 시간이나 교회에 나와서 예배보는 시간만 제자 생활이 아니라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나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나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이나 나의 생활 전부가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제자 생활인 것입니다. 또한 제자 생활은 인생의 한 부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생애를 두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학창시절에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열심히 제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학창 시절 동안 어느 정도 성장을 하자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졸업과 동시에 제자 생활도 졸업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자 생활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제자 생활은 일생 동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일생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는 말씀은 죄악된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하도록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헛된 일에 마음을 쓰지 말고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역사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초청의 말씀으로서 그들에게 임한 큰 은총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대통령이 장관으로 부르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거룩한 부르심이요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다. 세상에서는 쓸모 있는 자를 불러 쓰다가 쓸모없으면 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은 아무 쓸모없는 자를 불러서 쓸모 있는 자로 키워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시는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은 그 자체가 큰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물거품과 같이 허무하게 사라질 아무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의 삶 때문에 권태로운 삶을 영위하며 살아갑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커는 현대인들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삶의 일상적인 삶으로 인해 권태롭고 무의미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사람이 삶의 의미와 목적도 모른 채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며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미치도록 괴로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마약을 피우고 죄를 짓습니다. 사람들은 허무와 절망의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며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 낚는 어부는 이와는 다릅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죄와 사망의 바다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살립니다.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죄로 병든 내면을 치료하고 하나님의 쓰실 만한 사람으로 양육하여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 받도록 합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고귀합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사망으로 끌려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가장 의미있고 가치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고기 낚는 어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생활인의 삶이지만, 사람 낚는 어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인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분명한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이 있습니다. 인생의 열매가 있고 사람을 살리는 참된 영적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삶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삶입니다 (단1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큰 소망을 두셨습니다. 현재는 그들이 고기 낚는 어부로서 소망이 없지만 장차 사람 낚는 어부로서 위대한 사명인이 될 비전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두신 뜻은 원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실 때에 현재의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장차 변화될 모습을 보시고 큰 소망을 두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큰 소망을 두시고 소망 가운데서 양육하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 가운데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키우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지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꾸준히 배워 나갈 때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키워 주십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 낚는 어부는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사명인은 양육되어집니다.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순수하게 예수님을 배워 나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도자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8절을 보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부르시니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또 손익을 계산하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실리적이여서 무엇을 하든지 유익을 따집니다. 진리를 따르는 것도 유익인가 아닌가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용기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명인이 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있는 자만이 사명인으로 성장할 수 있고 이 시대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최고의 우선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위해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빌3:7,8)
갈릴리 어부들은 부자도 아니었고 높은 사회 계층에 속하거나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인도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을 지닌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기초가 부족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소망을 두시고 키우셨습니다. 그들의 약점을 담당해 주시고 그들에게 숨은 가능성을 살려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양육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사도행전의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시간 예수님은 허무와 절망의 바다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람을 낚는 위대한 사명인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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