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번 내린 눈이 채 녹기도 前에
또 얇고, 싸늘한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면
형틀목수, 철근, 공구리(콘크리트 타설공), 비계(건물 외부 안전시설 인부) 등
<골조공사 팀>을 끌고
대전 인근 노쇠한 동네를 찾아서
<돼지>를 잡아먹던 일들이 회상됩니다.
매년
이맘때 쯤은
<동절기>라 해서
아주 급한 공사가 아니면
가급적 <작업을 지연하는 게 통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쉬는 날(대마찌)이 많았습니다.
2.
그렇게 일이 없어서 쉬는 날
일꾼들(노가다꾼들)은 하루종일 술집에 틀어박혀서
<점100 고스톱>을 치면서
술을 퍼 마시고,
서로 괜한 쌈질을 하거나.....
집구석에 가서
마누라와 애들을 줘 패는 일이 다반사 였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노름판을 기웃거리는 바람에
뼈꼴 빠지게 번 돈을 어만데
탕진하기도 하고,
<기집질(매/춘소비),
외간 여자와의 연애질>을 해서
망신을 자초하는 짓으로
허전해진 시간을 메꿨죠.
3.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맘때 쯤에
비교적 자주 모여서 뭘 잡아 먹거나
누가 사냥해온 먹을 것들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일꾼 관리(골조팀 조직관리)>의 필요,
다음 작업에 대한 논의와 설명 등도
그런 모임을 장만하는 이유에 포함 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낯간지러운 핑계도
별로
비중이 높지는 않죠.
아마
정확한 이유는
<그냥 심심해서>일 겁니다.
3.
그날(2001년 이맘때 / 12월 말경)도
오늘처럼 가는 눈발이
날렸던 것 같습니다.
<금산군 복수면 다복2리>가
그 마을의 지명이었을 겁니다.
개갈나는 또랑물이
오줌처럼 촐싹거리면서 흐르는 긴 골짜기를 중심으로
30여채 남짓 집들이 있었지만
빈집이 태반이고
집에 혹 사람이 들었다고 해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늙은 것들>이 고작 이었죠.
그 마을은
형틀목수인 권씨의 고향이고,
그가 사냥, 가축 도살, 요리 등에 일가견이 있어서
또 그런 행사를 주관하는 것을 좋아해서
가급적이면
그런 종류의 행사를 그곳에서
치루었던 탓에
그날도 그곳에서
<돼지 잡아 먹는 날>을 잡았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4.
돼지를 잡는다니까,
집에 틀어 박혀서
아무도 오지않는 대문쪽과 테레비 재방송이나
홀낏거리던
마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는 바람에
권씨네 넓은 마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한 마리 갖고 누구 코에 바르냐?>는 원성 때문에
돼지막에 전화해서
<새끼 안 깐 거 암놈으로
게다가
엉덩이가 실한 거 한 마리 더>주문해야 했습니다.
돼지를 잡아서
애기보(자/궁)와 갈매기 살, 간 등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부위로 안주를 만들기 전에 벌써
술자리부터 벌어졌습니다.
5.
한 쪽에서는
밖에다 건 가마솥들에 물을 끓이고
돼지 피를 받아낼 양동이,
내장 등을 담아낼 다라,
털을 밀을 삽, 쑤세미 등을 준비하느라 법석이고...
한 쪽에서는
되지도 않는 <통성명>을 나누거나
허풍이 태반인 자기자랑에 지랄들이었습니다.
트럭에 실려서
추가 주문한 돼지가 도착하고
힘 좀 쓰는 일꾼들 댓명이 트럭에서 돼지를 끌어내린 다음에
가는 철사로 다리 네 개를 함께 틀어 묶어서
먼저 온 돼지 옆 바닥에 굴려놓았습니다.
버둥거리는(먼저온)돼지의 머리에
돌을 고이고
권씨가 목줄을 이제 막 새로 간 부엌칼로 땄습니다.
<피 흘리지 않게 잘 받아,
순대 맛있게 먹을려면>....
양동이를
터진 돼지 모가지 밑에 밀어 넣는 와중에 권씨의 <장끼인> 그 놈의 잔소리가 또
기승을 부렸습니다.
6.
피를 다 쏟고 먼저 온 돼지가
절명을 할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추가 주문에 따라서 실려온 돼지는
바닥에 누워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죠.
목이 뚫려서 숨을 깔딱거리는 돼지와
그 순서를 기다리는 돼지의 표정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한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를
다른 손에는 누가 들러준
소주 사발이 들려 있는 상태로였습니다.
그러다가
<두 년 중 마지막에 어떤 년이 웃으까?>하고
옆에 붙어서
<얼릉 한 사발 드셔.
김치쪼가리 여 있응께>하고
재촉하는
비계오야지(비계팀장)와 이죽 거렸습니다.
<그람 못쓰요,
이자 저건 산짐승이 아니고
먹는 음식잉께>
<그려도
젯상에 올릴 돼지머리 고를땐
웃는 돼지대가리 찾잖내벼?>
<아이고
설마니
뒈지면서
웃으까?>
<왜 음식이래메?>
<거야
우리식으로다가만 생각항께 그라지
뒈지면서
설마니
웃음이 나겄쏘?>
<하긴 그려.
그려도 궁금하네
두 년 중 최소한 한 년은 웃었으면
좋겠는데 말여>
7.
그러다가
문득
민족사회주의 대 자본제국주의간 전쟁이 개시되었을 때의 풍경,
조선반도내 민족주의 대 반민족주의간 충돌이 발생 했을 때의 풍경..을
연상해 봤습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된
<두 개의 전쟁>에서
자본제국주의, 반민족주의 진영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양상은
상상할 필요가 없죠.
20c 내내, 21c 초반 그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숨쉴 틈도 없이 자행된 때문입니다.
그들에 의한 도살은
<자동화, 기계화된 공정>이 특징입니다.
일종의
<인간도살의 산업화>죠.
때문에
이후 양진영의 충돌에서
그들이 그려낼 풍경은 뻔 합니다.
그러나
20c 내내
21c 초반 <그들의 도살산업에 동원되고, 사용된 재료>였던
그들의 반대진영이
<212c 두 가지 충돌>을 통해서 연출하는 화면(풍경)은
<돼지 잡아 먹는 날>과 매우 유사할 것 같습니다.
8.
<해천양천(養天主說, 向我設位, 三敬說, 以天食天說의 조합)>은 최시형(崔時亨)이 <인내천>의 보완책으로 제시한 방침입니다. <세상 만물이 한울의 기운으로 생긴 것이니. 사람이 다른 물건을 먹는 것은 곧 한울이 한울을 먹는 것(以天食天說)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20c3238a>이라는 게 골자?죠. 그러나 그가 제시한 <害天養天>의 도덕적 품위는 아직 거론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의 본연적 좌표와 동성동본인지?>도 확인키 어려운 지경입니다.
<먹을 꺼의 도살>이 아닌,
<도살의 미학적 풍경>의 단위에서
제국자본주의와 반민족주의(사대주의)의 반대편인
<민족사회주의, 조선민족주의>가 그려낼
풍경은
<害天養天(돼지 잡는 날)>로
간소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게
다 먼 소리까?>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 나도 모릅니다.
그냥 심심해서
해보는 소리기 때문입니다.
9.
인간도살, 인간지배, 착취의 산업화에 성공했고....
이제 그러한 산업적 성공의 풍요로운 댓가에
흠뻑 젖어 있는
자본제국주의와 조선사대주의(반민족주의)자들은
더 늦기 전에
상대진영을 초토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죠.
안 그러면
<북방계(대륙계)의 근성이 아직 살아 있는
상대진영에 의한 돼지 잡는 날>이
불현듯 개시될 수 있습니다.
모든
승리한 것들은
<안심하는 순간
도태되는게>아닙니다.
<도태되는 순간
안심하도록 되어>있죠.
지금
자본제국주의와 조선사대주의자들은
아마도
<막 안심하고 있는 중>일 겁니다.
그래서
기억으로는
이맘때쯤
<돼지 잡는 날>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추신 /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정월~ 초봄 시기에 잡는 돼지를 날것으로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막 잡은 돼지 살에 기름장을 찍어서 먹는 것인데... 몇 번 따라 먹어 봤지만 비위가 안 맞더군요. 골조공사를 한답시고 전국을 돌아댕기다 보니까 지역마다 어떤 특이한 <습관?>이란게 그렇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경상도지역에 공사가 있어서 머물게 되면 가장 난처한 것이 <먹을 꺼>입니다. 경상도 음식은 <일본 음식>처럼 다른 지역 사람들의 입맛에 잘 안 맞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굶는 게 낫다>싶어서 굶거나, 반찬을 공수받아서 견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경상도와 쪽빠리들은 외관만 닮은 게 아니라, 미각까지 같은게 아니냐?는 생각을 치우기 어렵습니다. <음식은 소통의 기저고, 응축이다>그럽니다. 그런면에서 경상도 음식의 특징은 <소통불가 또는 유전적 소통능력 부실의 단면>이겠더군요. 그리고 뭐한 얘기지만 <음식과 성>도 연관이 있습니다. <음식(맛)에 예민하면 성적으로 예민하고, 음식을 잘 하면 성적인 기술도 좋다>는 식으로 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 여담입니다.
시절이 좀 더
수상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돼지 잡는 날을 잡았으면 좋겠다>이런
생각이 다시 불끈해집니다.
이런 기다림이
<소심한 놈의
쓰잘때기 없는 희망사항>에 그치는 게 아니죠.
어쩌면
조선반도 불가촉천민들 공동의
기다림
마지막 절차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겨울이었으면 좋겠고,
그런 겨울 다음엔
<모두가 거름자리로 들어가서
거름으로 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어떠까?>
싶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들
좋은 하루
그러나
가슴을 쥐어 뜯으면서 후회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