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나의 페테르부르그/ 죄와 벌 ( 10 )
24 11 16
공간, 시간, 주제의 일치를 얘기할 때
평론가들은 죄와 벌을 거론하곤 한다.
무덥고 후덥찌근 한
농촌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채 정비되지 못한 채
이전까진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 문제들이
뒤엉키고 부딪히고
저마다의 정체성 혼란이 교차하는 곳,
혁명의 와중에서 무너지는 계급질서와
사회 변혁의 다양한 물줄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갈등하는 곳.
전통적 슬라브주의
세련된 서구화
민중 유토피아를 설파하는 설익은 혁명론
로마시대 축출된 이단 그리스도 정교
도덕적 니힐리즘이라고 딱지 붙인 방황
그런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라스꼬리니코프가 부지런히 거닐던
센나야 광장에,
색 바랜 벽지가 나풀거리는 서민들의
주거지에는,
소냐가 가족들을 봉양했던 뒷골목 홍등가에도
여러 죽음을 묵묵히 바라 봤던 포석이 깔린 광장에, 거리에, 주막들에ㆍㆍㆍ
나의 페테르부르그에!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강물 위로
주인공의 번민을 실어 나르던 다리도
낙심과 절망으로 자살을 고민하며
하염없이ㅈ내려다 보던 무심한 강물도
중2때 읽고
2013년에 다시 보고
11년 만에 보게 되었다.
처음엔 죄, 도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저자에 대해 놀랐고,
나이 들어 읽으면서는 사상사에 관점을 두고 읽었던 것 같다.
노인이 된 후의 감상은
삶에 대한 안쓰러움이라고나 할까?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함으로
페테르부르그를 안고 싶었다.
마치
사형대 위에 앉아 바라보는 세상이나
결말을 기다리는 도박자의 한 순간처럼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장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너무 소중해서
차마 놓아 버릴 수 없는
발작 같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페테르부르그!
사람이 살아 간다는 건
소중하고 고귀한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후덥지근하고
보잘 것 없이 천하게 보여도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롭게 보여도
터무니 없어 보여도
재수 없어 보여도
나와 무관해 보여도ㆍㆍㆍㆍㆍㆍㆍ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오래 걸렸다.
도중에 심한 두통이 찾아 왔다.
이마저도 소중하다.
고마울 뿐이고.
라스꼬리니코프군!
우린 언제 또 만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