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 완(玩)과 감상할 상(賞)이 더해진 완상(玩賞)이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즐겨 구경하다'라고 풀이 되었다.
이런 완상의 대상은 왠지 봄이 아니면 안될 것 같고 봄으로 한정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추해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는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라고 닳도록 외우다 보니, 상춘賞春에 익숙해져서 일 게다.
언제 왔다가 갔는 지도 모를만큼 빠르게 지나가는 봄이라 완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올 겨울은 늦게 찾아온 추위가 유난히도 길다 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제대로 실감한다.
하지만, 춥다고 해서 봄이 더디 오지 않는다. 매년 설이 지나고부터, 날씨와 무관하게, 마음이 먼저 봄을 감지하고서는 설레이기 시작한다.
완상을 가자고 말초신경이 꿈틀댄다.(심心,감感)
올해라도 다를게 없다. 이미 마음이 봄을 감지하고는, 봄을 찾아 나서자고 안달이 난다.
우수가 막 지난 참에, 자칭 '사진쟁이'라는 친구가 잔설 속의 복수초(얼음새꽃) 사진을 밴드에 올려 놓았다.
덩달아 마음이 바빠져 봄나들이 계획을 앞당겨 잡았다.
아뿔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계획한 날 하루전 전국적으로 눈이 내렸다. 그만두기도 뭐해서 겨울꽃(*설화, 설빙, 상고대)이나 볼까하고 민주지산을 찾았다.
도마령에서 시작한 눈길 산행, 혹시나 했던 상고대의 장관을 만나고는 감탄이 이어진다.
햇빛이 들자 상고대의 장관은 눈 녹듯 아니, 신기루 처럼 사라진다.
삼도봉에서부터 지리한 하산길이 시작된다.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중턱쯤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다,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계곡 물에서 뜻 밖의 봄과 조우를 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音, 廳)
삼일절 아내와 완상 길을 나섰다. 자장매라는 이름을 가진 통도사 홍매도 보고, 울산 쪽 바닷가에 들러 지난 해 찾아낸 맛집을 아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홍매는 섣달에 핀다고 납매화요,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라 한다지만 아직은 일렀다.
지난해 2/20일 갔을 때만 해도 활짝 폈었는 데,
올해는 대부분 꽃 봉오리만 맺은 상태다.
다행스럽게 영각 앞 자장매 만큼은 다른 나무와 달리 개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빨간 봉우리에서 팝콘 튀 듯, 하나 둘 핀 매화꽃과 배경이 되는 문살의 조화에 눈이 호사한다. (미美, 시視).
'한 평생을 춥게 살지만, 향기만은 팔지 않는다'는 매화라서 그런가, 나 같은 속물에게는 향을 내어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만개했을 땐, 내게도 그 은은한 향을 조금은 내어 주리라 위안해 본다.(향香, 취嗅)
통도사를 나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울주 나사리 해변으로 간다.
설을 전후한 시기에만 나온다는 앙장구(말똥성게) 비빔밥에 봄 음식의 대명사 도다리쑥국을 곁들여 먹었다.
봄의 향과 식감을 코와 입으로 느낀다.(미味, 식食)
계절을 거슬러 경칩이 지나고서 올 겨울 대구에 함박눈이 처음 내렸다.
다가오던 봄꽃들이 추위에 얼어 버리거나 눈을 닫아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더라도 이제 곧 매화는 만개할터고, 이어서 복사꽃, 벚꽃, 산수유, 살구꽃, 배꽃이 차례로 필 것이다.
옥정호에 이어지는 매화 가득한 섬진강을 찾아, 진메마을에서 시작해 구담마을을 지나 장구목까지 걸으며, 옹기종기 핀 야생화와 강물에 깃든 반짝거리는봄볕을 보고 싶다.
장구목 앞 농가식당 '장구목가든'의 산야초밥상도 봄 나들이에 빼놓을 수 없다.
자동차로 달려보는 31번 국도나 부산행 경부선 기찻길에서 차창밖으로 보여지는 낙동강변 봄꽃들 향연도 눈에 선하다.
그러다 만개했던 꽃들이 떨어질 때면, 빗(花雨) 길을 걷다, 빰을 스쳐 떨어지는 꽃잎 하나 집어 만지작 거려도 보고 싶다. (질質, 촉觸)
이렇듯, 오감에 더해 마음까지 봄을 완상하다가 '즐겨 구경하다'는 국어사전 풀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떨어져 쳐다본다는 구경이 아니라, '(온 몸으로) 즐겨 보며 (느끼다)'라고 풀이 해야 하지 않을까?
노랑나비 한마리, 팔랑거리며 저만치 날아가다 돌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따라 오라며 희롱을 한다.
봄은 이미 마음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이봄이 다가기 전 봄의 정취를 하나라도 더보고 느끼고 싶어 마음이 분주하다.
첫댓글 겨우 숙제해서 올립니다. ---평행선
선생님 미안합니다. 제가 글을 옮겼습니다. --푸른숲
여기에 올린다는 게...ㅋㅋㅋ
상록수필에 올린 건 내렸습니다.
봄을 완상한다. 처음들어보는 얘기입니다만 글을 읽다보니 깊은 뜻을 알게됩니다. 봄을 완상하려면 한가지 사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감의 눈을 열고 사방천지를 내다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 많이 했습니다. 고매한 선비가 봄을 희롱하는 듯한 글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춘의 봄이아닌 완상의 봄나들이가 그림처럼 전개되는 봄처럼 아늑하고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여러곳의 봄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완상? 즐겨구경하다. 처음듣는 단어입니다.삼일절날 완상의 길을 나섰다고하시니 일찍 봄맞이 나셨네요. 며칠전 눈길을 조심조심 걸었기에 겨울에 끝자락인 줄만 알았더니 문우님들 글속에서 봄맞이했습니다. 글을 읽고 우리밭에도 매화꽃이 피었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피었다고 합니다. 저도 밭에가서 봄을 완상하겠습니다.
봄을 완상하고 오신 글, 봄 같이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석염님, 눈밭님, choess님, 보릿길님, 죽암님 졸필 읽어 주시고 댓글 주셔 감사합니다.
격려의 말씀 힘입어 많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