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
원제 : Random Harvest
1942년 미국영화
감독 : 머빈 르로이
원작 : 제임스 힐튼
출연: 로널드 콜맨, 그리어 가슨, 필립 돈,
수잔 피터스, 헨리 트래버스, 레지날드 오웬
리스 윌리암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들을 보면 '불륜' '출생의 비밀' '불치병' '교통사고'
'우연히 엿듣기' '악덕회장' 뭐 이런것들입니다. 그것만큼이나 꽤나 자주 다루는 소재가
바로 '기억상실' 입니다. 이 기억상실이 '로맨스'와 결합할 경우 아주 애틋한 내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인데 기억을 잃어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했던 기억조차 없다면?
많은 우리나라 드라마가 과거 헐리웃의 '통속 영화'에서 유래된 것이 많은데 적어도
'기억상실'과 '로맨스'를 엮은 내용으로 대표적인 '원조격 영화'가 바로 '마음의 행로'
입니다. 이런 내용에 대한 최초의 이야기가 '마음의 행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팬들에게 처음 이런 내용으로 감명을 준 영화가 '마음의 행로'인 것은
분명합니다. '마음의 행로'는 우리나라에 6.25 전인 1949년에 개봉했고 이후
53년, 58년, 65년 등 꽤 여러번이나 개봉하여 큰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추억의 고전
멜러영화' 입니다. 극장에서 수차례 개봉, TV에서 수차례 방영하면서 그때마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코끗을 찡하게 만든 감성영화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찾아주려는 헌신적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명세빈이 복귀한 드라마
'다시 첫 사랑'이라는 이야기도 기억을 잃은 첫 사랑 여성을 다시 만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기억상실'과 '로맨스'의 결합은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1918년 1차 대전 막바지의 영국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전쟁의 상처로 인하여
모든 기억을 잃고 자기 이름조차 모르는 한 남자(로널드 콜맨), 그는 답답한 마음에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방황하다가 폴라(그리어 가슨)라는 이름의 여성의 눈에 띄어
도움을 받게 됩니다. 유랑극단에서 일하는 폴라는 동정심반 이끌림반으로 그를
도와주고 '스미시'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폴라는 정신병원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스미시를 위해 유랑극단생활까지 그만두고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스미시를
돌봅니다. 스미시는 작가로 재기하기 위해서 신문사에 글을 보내서 당선되고
첫 수표가 도착한날 폴라에게 청혼하여 결혼합니다. 예쁜 아들까지 얻은 스미시,
드디어 신문사에 고정 취업제안을 받고 면접을 보러 리버풀로 떠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헌신적인 여성을 만나 다시 행복을 찾게
되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뭐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도 한 편의 영화로
무난히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미시와 폴라가 아주 행복하게 살던
이 시기에 갑작스런 사건으로 이야기는 급 전환됩니다.
리버풀에서 스미시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깨어나는데 그 순간 그는 폴라와 지낸
3년간의 기억은 사라지고, 찰스 레이니어라는 부자집 가문의 도련님으로의
원래 기억이 돌아옵니다. 자신이 왜 리버풀에 있었고, 군복이 아닌 낡은 코트를
입고 쓰러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레이니어,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는 거액의 상속자가 됩니다. 물론 잃어버린 3년간의 기억때문에
답답한 상황이지만, 그리고 그의 곁에는 조카뻘되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그를 끔찍히 좋아하는 키티라는 예쁜 처녀도 있지요.
폴라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상황입니다. 헌실적으로 돌봐주었고
사랑까지 해서 결혼한 남편이 모처럼 성공의 기회를 잡고 떠났는데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그 충격으로 몸져 누웠고, 그 와중에 아이까지 잃었으니.
스미시가 부유한 가문의 레이니어로 복귀해 부와 명예와 사랑을 누리고 사는
동안 폴라의 인생은 정말 참담하게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제임스 힐튼의 돔영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과
'브룩휠드의 종(굿바이 미스터 칩스)'의 작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두 편 모두
'마음의 행로'보다 먼저 영화화되어 고전명작으로 자리잡았는데 '마음의 행로'
역시 이 두 작품을 뛰어넘는 명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연기한 로널드 콜맨이 주인공 스미시/레이니어를 연기했는데 이 역할을 연기
하기엔 너무 늙은 나이였습니다. 이미 50대에 접어들었으니, 극중 1918년의
스미시는 대략 30대 중반쯤 되는 설정이었던것 같은데, 물론 영화가 1930년대
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후반부에서는 좀 어울리긴 하지만 막내조카뻘되는 여자와
연애하고 그런는 내용은 좀 보기 불편하더군요. (실제 나이차이가 30세)
그렇지만 기억을 잃은 동정심가는 신사에서 영국의 귀족으로 변신한 연기는
잘 어울렸습니다. 나이만 한 10살 젊었다면 더없는 적역이었을 것입니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에서는 레이니어의 비서로 취직한 마가렛이라는 여자가
사실은 '폴라'였다는 것이 일종의 반전처럼 쓰인 내용이었는데 얼굴이 보이는
영화에서는 그런 반전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과 영화의 어쩔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애초에 폴라가 마가렛이라는 비서와 동일인물
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데, 대신 스미시가 레이니어로 변신한 후에 한동안
폴라의 소식과 행방을 알려주지 않아서 관객을 궁금하게 하고 비서인 마가렛도
이름만 먼저 몇 번 등장하고 얼굴이 첫 등장하는 장면은 일부러 관객에게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레이니어의 비서로 갑자기 등장하는
그리어 가슨을 보고 관객들은 놀라면서 그 장면부터 폴라의 감정으로 이입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폴라의
심정. 그리고 그 수년간의 세월동안 폴라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고 있습니다.
면접소식에 기뻐하며 도시로 떠난 남편, 실종, 아이의 죽음, 혹시나 남편을
찾을 걸 대비하여 악착같이 일을 배우며 살아온 나날들, 수년이 지나
신문에 기체높은 인물이 되어 등장한 남편, 어렵게 그의 비서자리를 따내어
들어오니 남편은 자길 전혀 몰라보고 곁에는 젊고 아리따운 약혼녀가 있고.....
1918년에 시작해서 1930년데 후반쯤에 끝나는 내용이며 무려 십수년간이나
잃어버린 남편의 기억과 사랑을 찾으려한 한 여인의 헌신과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만화같은 이야기인데, 이 통속적이며 감성적인
이야기는 이후 우리나라 많은 드라마에서 기억상실과 로맨스의 이야기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부유한 사업가겸 졍치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삶보다
가난하고 소박했지만 진정 서로를 사랑하던 기억을 되찾고 싶은 애틋한
심정을 담고 있는 만큼 참사랑의 의미를 훈훈하게 잘 전달하고 공감시키는
내용으로, 이런 애틋한 내용 때문에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품위있는 분위기의 연기파배우 그리어 가슨은 1942년
일생의 대표작 2편을 남기는데 그게 윌리암 와일러 감독의 '미니버 부인'과
머빈 르로이 감독의 '마음의 행로'입니다. 두 편 모두 2차대전이 한창인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힐링 영화입니다. 머빈
르로이 감독은 '애수'라는 영화로 통속 멜러물의 대표작 반열에 올렸지만 2년뒤
만들어진 '마음의 행로'는 '애수'와는 달리 포근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10년이상 비밀을 지키며 남편의 기억을 찾기주기 위하여 기다리는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폴라와 지낸 스미시로서의 기억을 찾는 엔딩씬은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마음의 행로'는 그렇게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을 받은
고전 영화였습니다.
ps1 : 사랑을 되찾지만 잃어버린 세월과 죽은 아기에 대한 폴라의 아픔은 어떻게
보상받을까요. 더 이상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테고.
스미시가 폴라에게 정말 평생 두고두고 잘해야 되겠죠.
ps2 : 유랑극단의 가수겸 무용수였던 대기업 사장의 비서로 채용되고, 능숙하게
기업총수겸 정치인의 아내로 처신할 수 있는 설정이 통속극다운 만화같은
설정이긴 합니다. 1930년대라서 가능했을수도 있을런지요. 이런 설정은
최근 명세빈 주연의 '다시 첫사랑'이라는 드라마도 비슷하게 활용되지요.
도시락 장사를 하던 기억상실증의 중년 여주인공이 과거 사랑해던 남자의
회사에 취업해서 중요한 직책을 척척 수행하니까요.
ps3 : '첫 키스만 50번째' '서약'등 21세기에 만들어진 영화중에서도 이렇게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레이첼 맥아담스
주연의 '서약'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내용이라죠. '남자'가 아닌
'여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것이지만.
ps4 : 이것도 칼라버전으로 작업한 버전이 있는 영화입니다. 히치콕의 '의혹'
'카사블랑카' '말타의 매' '빅슬립' '쾌걸조로' '필라델피아 이야기' 등 유독
40년대 영화들이 컴퓨터로 칼라작업한 영화들이 많네요.
ps5 : 이 영화의 내용과는 좀 다를 수 있어도 아기때 아주 예뻐해주었던 조카나
사촌이 어른이 되어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좀 서운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ps6 : 무려 아카데미 7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을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리어 가슨의 다른 출연작인 '미니버 부인'에게 밀린
것이지요.
[출처]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 42년) 잃어버린 기억의 사랑 찾기|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