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인견 윤핵관 정치… ‘당원 혁명’ 임계점 닿았다
여당 모두가 친윤이고 정치적 資産인데
윤핵관들, 공천권 장악 장애물로 여겨지면
다 敵으로 몰아 공격… 이제 당원들이 나서
분열과 숙청 행각 거듭하는 세력 심판해야
돌이켜보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좋은 여건에서 출발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당내에 친이 친박 같은 적대적인 계파도 없었고, 미래 권력이라고 할 만한 덩치 큰 경쟁자도 없었다. 탄핵과 총선 참패를 겪은 의원들은 군기 바짝 든 신병들처럼 새 정부 성공에 열정을 바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여당 전체가 대통령의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고 우군이었으며, 총선승리라는 목표에 생존이 걸린 운명공동체였다.
그런데 대선 승리 1년도 안 돼 자산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충성을 바칠 각오가 돼 있던 자산들을 하나둘 적으로 몰아 버렸다.
“저희들만이 충신입니다. 주군의 1인 체제를 더 공고히 해야 합니다.”
친위대를 자처하는 간신들이 멀쩡한 장군들을 숙청해버리는 장면이 삼국지에는 많이 등장한다. 세상이 비난하면 “우리를 간신배라 욕하는 건 우리 주군을 꼭두각시라 모독하는 것”이라며 입을 막으려 든다. 그런 논리가 가능하다면 이완용도 “나를 매국노라 비난하는 건 나를 발탁해준 고종 황제를 매국노라 욕하는 것”이라고 억지 부렸을 것이다.
윤핵관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통령의 이익으로 각색했다. 대통령의 입장에선 누가 당 대표가 되든 당의 협력을 받는 데는 아무 차이가 없다. 당 대표로 선출돼 지휘한 총선에서 실패하면 차기 대권도전은 커녕 정치생명이 끝장나는데 대통령에게 적극 협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부의 정책 성공 없이는 여당의 총선 승리가 불가능한데 정부 지원에 전력을 다하지 않을 당 대표가 누가 있을까.
반면 윤핵관들로선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개인적 정치 자산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특정인을 제거하고 밀어주는 술수를 펴면서 마치 대통령을 위한 일인 것처럼 각색해 뺄셈정치의 길로 이끌었다.
이전투구라는 표현도 옳지 않다. 서로 싸운 게 아니라 윤핵관이 자신들의 이익관철에 방해가 될 표적들을 하나하나 찍어서 공격한 것이 본질이다. 진흙탕으로 쓰러뜨리니까 일어나려고 발버둥 쳐 뒤엉켜 싸우는 것처럼 보일 뿐, 본질은 한쪽의 일방적 가해다. 문재인 정권 시절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석열 총장 공격 당시 언론들이 ‘추-윤 갈등’이라 표현했지만 본질은 추미애의 일방적 가해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윤핵관들은 프레임 조작에 능하다.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니까 느닷없이 ‘당정일치’론을 들고나오며 “노무현도 당정분리를 후회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얄팍한 술수다.
완전한 당정분리는 대통령이 탈당해 여당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노 전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후회한다고 말한 것은 2007년 6월로서 바닥을 기는 지지율 때문에 4개월 전 쫓겨나다시피 탈당한 상태였고, 열린우리당은 연쇄 탈당으로 의석이 3분의 1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지금 여당 누구도 그런 당정분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겸임하며 공천권 자금·인사권을 다 장악하는 체제를 1, 대통령이 탈당한 상태를 10이라 할 때 현재 여당 후보들의 스펙트럼은 2~3 사이에 있을 것이다.
즉 당정일치냐 분리냐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인데 이를 꺼낸 것은 ‘김기현이 되면 당정일치, 다른 후보가 되면 당정분리’라는 프레임을 걸고 싶은 것이다. 오매불망 윤석열 정부의 성공만을 바라는 지지자들에겐 당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은 악몽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당정일치의 기원은 정부 정책 방향을 의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당이 대통령과 일심동체가 되고 싶어도 소수당이라면 별 도움이 못 된다. 지금 상황에서 진정한 당정일치는 총선에서 이겨 의석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친윤 비윤 반윤’ 구분도 부적절한 프레임이다. 지방선거 직후까지만 해도 여당은 전체가 친윤이었다. 원래 트집 잡기 성향인 유승민과 강제로 내쫓기는 바람에 반윤 외엔 선택지가 없어진 이준석 정도만이 예외일 것이다. 국민이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이룬 정권교체인데 여당 내의 누가 대통령을 돕지 않고, 누가 발목을 잡으려 하겠는가. 윤핵관들이 울타리를 세운 뒤 여기 들어오면 친윤, 안 들어오면 비윤·반윤이라고 구획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민노총 엄정 대응, 좌파 적폐청산, 한미동맹 강화, 안보태세 재정립 등 과단성 있게 나라의 방향을 바로잡았고 지지율도 상승 추세였으나 최근 꺾였다. 당장의 지지율 하락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윤석열식 정치’에서 드러나는 부정적 특질들의 조짐이다. ①자신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②헤어지는 방법이 거칠고 잔혹하다 ③과거 자신이 받은 도움을 쉽게 잊는다 ④감정의 직설적 표출이 보수 진영 전체에 미칠 상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전당대회는 정적도, 이견도 다 감싸서 용광로에 넣는 기회이며 축제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엄정중립을 재확인하고, 누가 되든 축제 분위기 속에서 당정 협력의 새 페이지를 펼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세상만사는 지나치면 반작용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질적 변화의 촉발점이 된다. 윤핵관의 작태도 티핑포인트에 도달했다. 대동단결해서 총선 승리·정권 재창출, 국가 재도약을 위한 원대한 비전을 설계해 나가야 하는데 자꾸 그 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온건 보수층의 우려도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국힘은 한국 보수정당의 적자(嫡子)다. 건국의 주역인 한민당에서 시작해서 산업화를 이끌었으며, 민주화 진영의 양대 축 중 하나인 YS세력을 중심으로 거듭 태어난 자유민주주의 정당의 적통이다.
백년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당원들이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특정인들이 당을 장악해 이용해 먹고 튀는 먹튀 정당을 허용할 것인가. 친박하다 망하고 친이하다 망하고, 당협위원장이 시키는 대로 하다 망한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한국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목불인견인 윤핵관식 행태가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당원 혁명’의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기홍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