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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김건희 심판 범국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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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 스크랩 개나리꽃 필때면 생각나는 이름...노수석
쎅쒸레오 추천 0 조회 86 11.03.30 09: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제는 고 노수석 열사의 15주기 날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잠시 묵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전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한 청년이 일방적 대학당국의 등록금인상에 반대해 교육재정 확보를 외치며 투쟁하다 가두시위중에 숨을 거두게 된다.

 

민주열사분들은 여러분 계시지만그 노수석 열사의 이름이 내게 주는 의미는 조금 남다르다. 그이가 꽃다운 나이로 진 그 때, 나는 전경으로 한참 군복무하고 있었다. 당시는 수경(전경의 계급체계상 가장 높은 계급. 육군의 병장에 해당) 달고 제대를 고작 두세달 앞둔 때라 세월아 네월아, 그야말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황금기를 즐기려던 그때였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데 그날은 휴일이었다. 그날은 축제지원(근잡근무라 한다)가는날 후임이 챙겨다 준 스포츠신문을 뒤적이며 2층 침상에서

 

 "막내야~오늘 메뉴 뭐냐?"

 

"닭곰탕입니다."

 

"에잉...또 어디서 양계장 집단 폐사라도 터졌나 

이번 달은 어찌 내내 삼계탕 아니믄 닭곰탕이냐 제길.."

 

 

하는 식의 한담이나 주고받던 어느 휴일이었다. 그 때 찢어지는 싸이렌 소리와 함께 "기습이다!!!" 라는 소리가 온 부대를 울렸다. 상의 방범복 하의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헬멧에 방패만 들고 냅따 뛰었다. 욕지기를 뱉어대며 정문 앞에 세워진 짐마(소위 닭장차라고 불리는 전경버스)가 아주 활활, 용용하게도 불타고 있는게다. 그래, 누가 에프(화염병)를 박은거다. 


난 그때 인간이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는걸 글이 아닌 눈으로 배웠다. 우리가 멍 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어디선가 나타난 차량반장(보통 경장이나 순경)이 불이 붙은 곳을 향해 대뜸 몸을 날리더니 그 높은 버스 지붕위를 한번에 슝~하고 오르는게다. 한손으로 창쪽 어딘가 잡더니 몸이 그냥 붕~떠서 지붕으로 올라가는게 액션 영화 한장면을 방불케 했다. 그리곤 발로 화염병을 차더니...다시 내려와선 차안에 어떤 스위치를 누르니 버스 밑에서 부터 소화액이 슈~~약~하면서 바퀴 밑에서부터 올라와 금새 불이 다 꺼지더라.

 
이 모든게 근 10초도 안된 사이 벌이진 일이었다. 아마 차가 전소되면 관리자인 차량반장이 책임져야 하니까 그렇게 비호처럼 날았겠지. 아무튼 상황이 일단락되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불을 낸 방화범(?)들을 찾아 열심히 달리기시작했다.


 당시엔 날랜 내몸이라 얼마 안가 학생들 꽁무니가 보이더만. 그러나,그것이 몇달동안 이어질 고난의 행군의 시작에 불과하단걸 그때는 미처 몰랐으니....그 담날부터 시내를 누비는 대추격전에 진짜 액션영화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내 악몽(?)같은 제대말년 스토리의 서막은 그렇게 올라갔다. 전방으로 착출되어 전남경찰청 산하로 배속 될 때부터 어느정도 예견되었던 고난이다.

 

자대배치 받은 첫날밤 부터 부대 창 너머로 넘실거리던 꽹과리 소리
"**오빠를 석방하라~~~"는 금속성의 날카로운 함성을 자장가로 들으며 시작한 자대생활.  그 유명한 우루과이 라운드 때 였다. 자대가서 보통은 신병은 아직 데모집앞에 직접 투입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배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난 바로 사흘째 되던 날 방패를 잡았다...어쩔수없었다. 부대 담벼락으로 바로 "짱돌" 과 "에프" 가 날아오는디 별 수가 있나.
 급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게 된다고 배치받고 1주일도 안지난 솜털 보송한 막내가 곧바로 장비 나르고 방패 쥐고 나가야 했다.

 

곁가지지만 당시 일화를 하나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점호를 위해 전부 각잡고 대기중인 주말 저녁이었다. '서울의 달'이란 주말 드라마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자 내무정리를 끝내고 점호대형으로 각잡고 앉아 있었지. 그때였어 정확히 드라마가 끝나고 출연진 자막 이 올라갈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무반 입구에 들이 닥치더니 에프하나를 때려 투다닥 사라지더라....

한 5초간 이어진 정적. 다들 멍~한 상태로 이게 뭐지? 곁눈질로 눈치만 살피던 상황. 점오 전이라 부동자세이기도 했고 하두 황당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기도 했던거야.

 

말년 고참 한명의 "야~이 새끼들아 언능 불 안꺼!!!!!!!" 라는 사자후를 터뜨리자 그제서 다들 여우에 홀렸다가 깬듯...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불을 껐지. 에프가 터진 자리는 내가 전역 할때까지도 그 상태 장판 시커멓게 탄 자국 그대로 남겨져 있었고. 생각해보면 오싹한게, 그 자리가 당시 우리 분대가 자던 자린데 입구쪽 전령 옆이라 내가 자던 자리 근처였다는 거. 만약 점호 끝나고 침상에 누워있는디 그게 떨어졌다고 생각해봐,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 나도 수경을달고 좀 늘어져볼 찰나, 그러니까 바로 15년전 이맘 때쯤. 노수석 열사 사건이 터졌던거지. 내 기억으론 그 당시 노수석 열사 투쟁 당시 뒤에 연달아 3명인가 더 분신하던 그런 정국이었어. 아마 90년대 들어선 91년 열사정국 이후론 대학가가 가장 열사투쟁으로 달아오른때였을거야. 그러니 전경의 생활은 어쨌겠어? 물론 당시 거리에서 열사투쟁 하던 이들의 입장에서야 배부른 소리 한다고 되려 꾸짖을지 모르지만 막상 그걸 막아야 했던 입장에 서니까 미묘해지더라구.

 



고로 당시 제대 말년6월전까지 3월말부터~5월투쟁까지 연이어 이어지는 바람에 한동안 '생똥' 싸듯이 생활했지. 밤마다 기습에 날 밝으면 도심마비 될 정도로 격렬한 시위에 시달려 거의 잠을 못잤지.

 

하루종일 밥알 구경을 못하고 컵라면 하나에 초코파이 몇개로 버틴 날도 많았어. '밥차'가 데모대열을 뚫고 우리한테 밥을 못가져 오는 상황이었던게지 그 때 이후로 난 지금까지도 초코파이를 입에 대지 않아. 군바리가 그렇게 좋아한다던 그 초코파이...하루에 밥대신 먹어봐라 좋아한다는 맛있다는 소리가 나오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절 당시엔 '제기랄 X나게 꼬였네 어떻게 좀 풀리려나 싶더니 난 이럴까?' 뭐 이런 생각외엔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 아무리 그전에 짱돌 던지다 군대 왔어도 군생활 2년 정도에 머릿속까지 푹~절여진 무~가 되었던거야. 환경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더라. 그렇게 말년에 비비꼬인 전경 생활을 마치고 전역 후...망월동 5.18묘지를 가게 되었지

 
당시엔 방문하면 통상 윤상원열사 묘 앞에서 시작하지.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묵념하고 그리고 선배들의 일장 연설과 함께 구묘역을 순회하는 게 이른바 정석코스. 그런데 새로 생긴 묘가 하나 있더라고. 바로 노수석 열사의 묘였어. 기분이 참 거시기하더라. 불과 몇달 아니 몇일 전까지 `이름 모를 대학생 하나 죽어서 이게 왠 고생이람`이런 생각하던 '쩔은 군바리'였던 내가 오늘은 그 앞에 헌화하러 서 있으니 그 기분이란 게 참......

 
노수석 이란 이름을 보니 왠지 내가 죄를 짓고 내가 잘못한거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거야. 비석을 읽어봤어. 또 하필 광주사람이야. 대동고출신..95학번이면 나보다 2살 아래 동생이겠구만. 갑자기 울컥 뭔가 올라오더라. 그래서 옆에 점빵가서 소주 한병 사서 들이부으면서 디스 한대 뽑아다 비석 위에 올려줬어. "네가 나보다 어린데 벌써 이렇게 가버렸구나, 열사라니.. 스물하나에  열사라니...."

 
훗날 사인을 놓고도 법정소송에서 패소해서 끝내 심장마비로 결론이 났다고하지. 내가 드라마 '싸인' 에 나오는 국과수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똑같은 시기에 에프로 만든 불바다와 칙칙이로 만든 안개를 뚫고 다녔던 전경으로서 말해본다. 믿음/소망/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지? 그럼 사과탄/지랄탄/칙칙이 그중에 제일은 칙칙이니라!

 

사진 상단에 보이는게 바로 칙칙이임

 

 

 

얼굴에 최루가스를 쐬면 그 누구든 그자리에서 에일리언 돼. 입을 반쯤 벌리고 침을 겔겔 흘리는 에일리언 말이야. 최루탄도 흉기나 마찬가지야. 눈 막히고 코 막힌 상태에서 심장이 터질때까지 뛰다 쓰러져 죽은 젊은이의 죽음도 일종의 공권력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해. 난 노수석이라는 젊은이의 심장이 그냥 툭 하고 멈춘건 아니잖아.

 
비슷한 사건이 바로 그 다음해에도 벌어지지 조선대의 류재을 열사. 역시 시위 중 최루탄 연기에 질식사하는 사건이 벌어져.이 경우 최루탄이 살인의 원흉이 아니면 공기가 범인이되겠어?

 
두 케이스 다 백골단의 직접적인 구타로 사망한 故강경대 열사나 전경의 방패에 찍힌 故김귀정 열사 처럼 공권력에 의한 직접살인은 아니야. 그러나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법원의 판단을 보면 역시 그들은 법을 글로 깨우쳤을 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에서 짱돌을 던지고 백골들에게 쫓겨본 판사라면 도저히 그런 결론을 내릴수가 없을거야.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그들은 진짜 양심을 팔아넘긴 죄인이고

 

 

다시 돌아와 15년전 난 노제가 치뤄지던 그 거리에 서 있었어, 반대쪽 깃발 아래서말야..노제를 진압하러 전남 도청(지금은 구 도청자리가 된)근처 광주 동부경찰서 앞에 서있을때 불과 10여미터 앞에서 달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바라보았지 그 속에 내 모교의 깃발...눈에 익은 선배와 동기놈들의 모습..제길,오늘 내가 저 인간들 대갈통을 까러나가야 하는겨?정말 더러운 기분이었지..직접 처해보지 않음 참 공감하기 어려운 기분일거야.

 

 

 다행히 그날은 처음엔 좀 막아주고 적당히 터주는 식으로 윗선에서 지시를 해 넘어갔지만 이련 뒤, 류재을 열사 노제는 결국 도청에서 치루지 못하게 되었지. 왜 그랬을까? 다른거 없었어. 한쪽의 힘이 쎄고 여론이나 물리적인 힘(시위 참가자수)이 월등하면 결국 정권과 그 하수인인 경찰은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거나 수세에서 유화책을 들고 나오지. 그러나 여론이 분열되었거나 숫적 열세라면? 처절한 무시와 가혹한 탄압이 뒤따르는거야.

 
길게 돌려말했지만..요는 이런거야 `개나리 투쟁`이란 말이 있었어.대학마다 등투(등록금 투쟁)를 할때쯤은 개나리가 필 봄이 올때쯤이니 등투는 곧 봄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던 시절이었지.수석 열사는 개나리 필때 같이 피고 졌던거야. 대학 당국의 무리한 등록금인상에 반대하고 교육재정 5프로 인상이란 구체적 요구안을 들고 거리에 섰던 젊은이가 공권력의 물리력 스러진거다.그전에도 그리고 그 후로도 많은 젊은이들이 교육개혁을 외치며 스러져갔다.


 2011년 오늘날 대학을 보자. 여전히 치솟는 대학등록금 특히 어떻게 쓰여지는지,여전히 당최 알수없는 그 숱한 기성회비들은 어디로 새는지. 노수석 열사 15주기 오늘. 그닥 변한게 없는, 아니 이 정도 밖에 바꾸지 못한 우리 지난 날 싸움이 왠지 송구스러워진다. 대학생들이 분신하던 그때와 카드빚과 생활고에 자살하는 대학생들이 나오는 2011년 사이의 차이는 없다. 소름끼칠만큼 똑같아. 그때 거리에 서서 짱돌 쥐고 에프 던지다 총장실도 점거해보고 삭발도 해보고 단식도 해보고 하다 하다..안되서 마지막에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겨야만 했던 그 젊은이들의 절망이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학자금 융자에 카드빚 알바에 막노동까지 이것저것 다 해봐도 치이고 치여 절망 끝에 아파트 옥상 위에 서야만 했던 이 시대 젊은이의 모습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결국 이것은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각자 알아서 취업해야한다눈 각자도생의 방식으론 절대 풀수없다.이 시간에도 등록금에 생활고에 신음하는 전국 대학생들이 얼마나 많을까? 머리를 맞대고 힘과 지혜를 모아 벽을 깨야한다 현실의 벽이 강고해 보여 절대 바늘 틈도 없어 보이겠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고민을 토로하고 아픔을 공유하며 이 탐욕스런 대학당국과 무책임하게 대학생들을 방기하는 정권에 대해 당당히 요구하고 외쳐야 그래야만 한다.

 
지난 날의 패배와 실수 속에 얻은 한가지 확신이 있다면 다름아닌 '사람은 자기가 투쟁하고 싸워 얻어낸 딱 그만큼이 정당한 자기 몫이란 게다'.

 

나리 필때마다 떠오르는 노수석 열사와 여전히 개나리 피는 이 아름다운 봄에 꽃잎처럼 떨어져 나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고 싶기에 중언부언 해봤다.

 
다시한번 고 노수석 열사의 15주기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2011년 청년 노수석의 눈빛을 간직한 또다른 청춘들의 건투를 빈다.


청춘이여! 쫄지마라!

 

 

 
노수석 열사 추모곡 「그대하늘길」  


하늘 어디쯤 있을까 푸른 봄날에 떠난 벗이여
꽃이 피기도 전에 그대는 스러져갔지만
해마다 봄이 찾아오면 가슴에 별하나 띄우리
그대 넋으로 피어난 붉은 진달래꽃처럼
저 깃발 높이 바람에 날리는 눈물고인 함성
다시는 열사 그이름을 하나도 내주리 않으리
그대 하늘길에 끝없는 깃발 물결되어가네
살아오는 길 우리 참세상 그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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